로버트 그레이니어처럼 죽고 싶다

by YeonJin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켜켜이 쌓여왔던 갈등이 터져나왔다. 수 십미터의 두꺼운 얼음장 아래 질식한 듯한 공포에서 서로가 공기구멍이라도 되는 듯, 우리는 그렇게 그 밤에 서로를 위로했다. 나는 어른이고, 어른이어야 했던 밤이었다.


2025년 12월 25일. 광화문에는 여민 옷깃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바람이 불었다. 아이들을 세종문화회관에 들여보내고, 교보문고에서 눈에 띠는 책을 한 권 사서, 시끌벅적한 스타벅스에서 단숨에 읽었다. 공연이 끝나고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며, 내내 벌목꾼 로버트 그레이니어를 생각했다. 모든 것이 허망하게 내려앉은 자리에 다시 돋는 새순을 보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자신의 삶을 생각했을 로버트 그레이니어의 묵직한 슬픔을, 그의 삶을 견뎌냄이라는 단순한 말로 압축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결국 삶이란 그런 것일까.


내 고향은 산판으로 흥했던 곳이다. 산간 오지에 일찍이 기차가 놓인 것도 그 산판 때문이었으며, 역전 여인숙이 흥했던 것도, 가끔 남루한 차림의 아이들이 전학을 오는 것도 다 산판 때문이었다. 가정환경 조사를 할 때, ‘아버지 뭐 하시니?’ ‘산판요’라고 말하는 애들의 손톱에는 시꺼먼 때가 꼈고, 머리에는 흰 쌔가리가 붙어 있었다. 기차역 한 구석에는 아름다운 원형의 밑면을 드러내고 드러누운 소나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중앙선 화물열차는 그 나무를 싣고서는 우리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빠져나갔다. 기차의 기적소리가 끝나면 시꺼만 암흑보다 더 짙은 고요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르르 문풍지가 떨리고, 별이 재빨리 움직였다. 숨죽였던 존재들이 그제서야 어둠을 빌미 삼아 제각기 소리를 내던, 침묵의 밤을 수많은 로버트 그레이니어들은 견뎠을 것이다.


로버트 그레이니어처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기차의 꿈>, 데니스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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