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라는 무례함>
우리가 남이가?
네, 진짜로 남입니다.
왜 남이고?
아니, 당연한 소리를 왜 하십니까?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기쁨보다는 스트레스만 쌓인다.
"취업은 언제 할거니?”
"결혼은 언제 할거니?"
“모아둔 돈은 있니?”
“살이 좀 찐 것 같네?”
이게 관심일까
...
아니면 면접일까
명절이 아니어도
각종 행사나 만날 때마다
이런 말을 하시니...
약도
많이 먹으면
속이 아프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무례한 말들을 쏟아낸 뒤,
그걸 관심이라고 포장한다.
그러다 표정이 굳어지면
“왜 인상이 그래?” 하고
또 말씀을 해주신다.
채점을 받는 것처럼
시험지의 점수를 체크하며
부족하다 싶으면
이제, “조언” 이라는 것을 해주신다.
물론 좋은 말씀이니까
듣는 척은 하지만
예...
하하 참...
속이 아프다 못해
뒤집어질 것 같다.
대한민국은 참 신기하다
남에게 관심이 많은 건지
도와주는 모습에 취한 건지...
나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면
나이나 도덕성 등을 앞세워서
남을 마음대로 평가한다.
"나 때는 말이야..."
"어린 놈이 무슨 말이 많아"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어"
으음... 학교나 사회에서
남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배우시지 않았나요?
다 아는데도
그런 말을 하신다는 건... 참
왜 이런 사회가 되었을까?
나는 참으로 궁금했다.
농업사회의 잔재?
DNA에 있는 유교 문화?
집단주의와 권위주의,
혹은 비교와 서열?
같은 어려운 단어보다도
무엇이 이런 분위기를 만든걸까?
이 생각의
시작점은 군대였다.
군대는 특이하다.
서로에 대한 관심이 너무 많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다음날이면 모든 생활관에
소문이 돌아버린다.
그리고 그 소문은
팝콘처럼 튀겨지면서
'좋은 이야깃거리'가 된다.
이걸,
관심이라고 불러야 할까...?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나는 관계를 맺는 것이 싫어지게 되었다.
행동 하나하나에
하이에나들이 달려들다 보니
혼자가 간절해졌다.
때로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까지 와서
군병원에서 수면제를 처방 받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정말로 이상하다.
‘나’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아도
‘너’에 대한 말은 다 해야 하는 사회이다.
뉴스와 유튜브에서
‘평가 가능한’ 컨텐츠가
메인을 차지한 뒤에 사람들이 평가를 한다.
연예인이나 정치인,
그리고 일반인 까지도
행동 하나하나에 과대해석을 한다.
잘못한 사람은 그렇더라도
사소한 실수 하나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평가를 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가면 뒤에
칼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세상은,
정말 피곤하면서도 무섭게 느껴진다.
그래서 AI와 대화를
선택한 걸지도 모른다.
'판단하지도, 평가하지도 않는다'
'내 말을 들어주고서 공감을 해준다'
그렇게 지친 나를
잠시나마 안아준다.
나도 AI와 대화하면서
가끔 찡한 느낌을 받았다.
나를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게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니까.
반면에 사람들은
관심이라는 무례함으로
생각이나 가치를 판단하고
CCTV로 돌려보는 것처럼
행동 하나하나를 평가한다
우와,
이거 <쏘우>인가요?
관심 과잉 국가
도덕성 중시 국가
같이라는 가치가
이토록 무거운 국가.
이런 사회는
주변의 도움으로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먼저 가족에게 상처를 받아버린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멀어지고 싶은 사람으로 변해
마음을 계속 괴롭히며
가족은 허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 역시도 가족들의 말로 인해서
새벽 4시까지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도무지 오지 않을 아침을 기다리며
벗어나고 싶다고 발버둥을 쳤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길을 걸어가다가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사회에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그 분위기에 순응하지 않으면
수많은 눈초리를 받는 게 사회이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가
모르고 선을 넘었을 수도 있다.
실수는 누구나 하는 것인데,
가족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법도 없다.
그리고 왜 그렇게 말했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하려는 시도도 없이
평가부터 내리는 건,
결국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 아닐까?
그렇기에 무작정 미워하는 건
잘못된 방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실수를 서로가 공감하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하니까.
물론,
그럴 낌새가 없는 사람은
상대할 필요도 없다.
좋은 사람은 많으니까.
사람은 결국,
사회적인 동물이다.
좋든 싫든 이어져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
그러니 상처를 기억하지 말고
종이비행기에 담아 날려보내면 된다.
순응보다는 적응,
불만보다는 불응.
우리가 사회를 선택하지는 못해도
행동에 대한 자유는 있으니까.
이제는, 가족부터 선을 지켜야 한다.
취업, 결혼, 돈, 외모 같은
민감한 주제 대신에
사소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여나가자.
“요즘 요리를 취미로 하고 있는데…”
“요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재밌게 봤는데…”
‘남의 이야기’ 대신
‘나의 이야기’를 건네보자
공감을 주고받기 위해
우리는 대화를 하는 것이니까.
가족은 소중하다는 말이
허무한 외침이 되어가는 사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판단, 평가 같은 차가운 말 대신
공감, 사랑 같은 따뜻한 말이 필요하다.
평가는 빠르지만 상처를 입히고
이해는 느리지만 사랑을 얻는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가족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