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라는 무례함>
이젠,
사람 대신 스마트폰이
유일한 친구가 되어가는 사회다.
혼자도 편하다고
여기저기서 말하지만...
그 이면은, 정말 괜찮을까?
스터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장 많이 본 책은 수능 교재였다.
이른 아침,
청소를 하기 위해서 둘러볼 때
수많은 포스트잇에 적힌 필기,
쌓인 노트와 지우개 가루를 볼 때면
말없이 박수를 치게 된다.
그 노력은
보이지 않는 별이니까.
그 별들 덕분에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렇게 빗자루를 들어
조용한 독서실을 청소할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토록 치열하게 공부하는 아이들,
과연 친구들과 마음껏 웃을 틈은 있을까?
대학교에서 노는 건 물론 즐겁다
친구와 술 마시면서 놀다 보면
어른이라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초중고 시절,
같은 반에서 웃고 떠들던 그 순간은
이상하게 오래도록 남는다.
고등학생 시절,
치킨을 시킨 뒤
반으로 가져와 나눠 먹던 추억.
여름의 밤,
친구.
이유 없이
행복한 순간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웃을 수 있게 해준다.
어른이 되어서도
친구와의 경험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준다.
중학생 때 사귄 친구와
일본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첫 해외여행이라
공항에 3시간 전에 도착해
허둥지둥 수속을 마치고
일본에 도착해서는
호텔까지 캐리어를 끌고 걷느라
엄청 힘들기도 했다.
다음날,
오사카 성에 찾아가며
길을 헤매고
지하철을 잘못 타면서
마음이 꺾일 뻔했지만
마침내 도착했을 때,
드디어 ‘왔다!!!’며 같이 환호했다.
호텔에 돌아왔을 때,
만보기 앱에는
3만보가 찍혀있었지만,,,
우리는 편의점에서
맥주와 안주를 사 와
하루를 즐겁게 마무리했다.
그날의 추억은
지금도 나를 즐겁게 해준다.
같은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존재,
친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서로 생각이 다르더라도
결국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기에
고독사가
늘어나는 이 사회에서,
진짜 문제는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착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괜찮은 척하며,
스마트폰을 유일한 친구로 삼아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스마트폰은
확실히 편리한 물건이다.
손가락 하나로
언제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이런 편리함 덕분에
우리는 친구와의 만남 대신
‘가성비’가 좋은 스마트폰을 선택하게 되었다.
친구와의 만남은 줄어들고
SNS나 인터넷에 의존하며
‘혼자서도 잘 사는 법’
같은 글들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런 말들은
위로가 되지만
동시에
‘혼자여도 괜찮다’라는
생각을 깊숙하게 심어버린다.
그러다 보면
친구의 가치를
점차 잊게 된다.
친구란,
즐거움만
주는 존재가 아니다.
다투고,
울고,
웃고,
화해하면서
감정을 나누고
같이 성장하게 해주는
‘사람’ 답게 만들어주는 존재다.
혼자가
나쁘다는 게 전혀 아니다.
자유를 찾거나
삶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환영해야 할 일이다.
나 역시
가끔은 혼자가
되고 싶을 때도 있어서
주말이면
아무도 만나지 않고
누워서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이렇게 혼자를
즐기는 건 좋지만...
혼자가 익숙해지고,
전자기기와 보낸 시간이
계속 늘어난다면
마음속에는
‘시간’이 남지 않는다.
어느 순간
유튜브나 TV로
웃긴 동영상을 보면서도
웃지만,
웃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친구 없이도 괜찮다며
쎈 척하는 우리는
어쩌면 울보였을 수도 있다.
혼자는 강한 게 아니었다.
잠시동안 혼자는 괜찮지만,
오랫동안 혼자는... 괴로울 뿐이다.
이제 우리들은
‘혼자’가 아닌 ‘같이’를 선택해야 한다.
학교에서
국영수만 가르치지 말고
사회에 나가면
쓰지 않는 지식을 강요하지 말자
지식은 배울 수 있어도,
지혜는 깨달아야 한다.
철학을,
관계를,
삶을,
그리고 나 자신을 가르쳐야 할 때다.
우리는 경쟁이 아닌
협동으로 살아남는
사회를 배울 때가 왔다.
더는 학생들에게서
‘친구’를 빼앗지 말자.
옆에 앉은 친구는
경쟁 상대가 아니라
함께 걸어갈 인연이다.
혼자여서 행복한 게 아니라,
혼자라도 행복한 사회를 위해서
우리는 이제,
교육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비이성적인 입시 경쟁을
끝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6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