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라는 무례함>
몸은
커져가는데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어른이라고
안 아픈 게 아니었다
오히려,
더 아팠다.
아직도 어린이 같은데
주변에서 책임을 강요한다.
학교의 보호에서 벗어나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을 때
우리는 그걸 어른이라고,
그리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배워왔다.
물론, 20대가 되면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가 맞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회가
강요하는 느낌이 들었다.
노오력만 한다면
다 된다고 믿는 사회에서
그런 강요를
따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참 고맙게도
미리 어른들은 목표를 만들어냈다.
이 목표들을 이루어 나가야
‘평범한’ 어른이라고 말해준다.
하나라도 늦거나 달성하지 못하면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뒤에서 이런저런 말을 해댄다.
이런 시선과 말을 견디면서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건 정말로 힘들다.
쉬울 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걸
어른들은 고려하지 않는 걸까.
그리고 노력해도 잘 안 되는 걸
계속, 계속 닦달하면서 하라고 하면
누구라도 지쳐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게 상처를 받으면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게 된다.
상처받을 일들은 늘어나지만
사회는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다.
나 살기도 바쁜데
도와줄 여력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혼자서 버티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
은둔형 외톨이,
즉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린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가고서
더 이상은 안될 것 같다며 외친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거잖아?”
이렇게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지금 전 세계가
‘히키코모리’를
심각한 문제로 삼고 있다.
상처받고
지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과
인간으로서
살아가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
‘공동체’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각자 다르더라도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이
가득 차 버린 사람들에게
의지가 약하다고,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손가락짓을 해서는 안된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다.
2030대는 물론,
4050대도
심지어 10대도, 60대도...
모두가 될 수 있다.
한순간에 우리는
세상을 잃어버릴 수 있다.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되어가고 있는 이 문제는
이제 무시할 수 없게 된, 썩은 살점이다.
이제는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누구나
보호가 필요하다.
갓난아기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스스로가 강하다고 생각해도
결국 잃어가는 것이 생명이다.
잠깐의 빛남을 과시하며
우월감을 얻을 순 있어도,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뿐이다.
그렇기에 어른이 된다는 건
혼자서 살아갈 수 없기에
누군가에게 손을 뻗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존재가 되어가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책임을 견딜 수 있고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도, 누군가가 지켜주었기에
이어지고 또 이어지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보장해 주는 것.
우리는 책임을 지는 존재,
어른을 멀게만 바라본 게 아닐까?
어른들도
웃고, 울고, 짜증 내고, 외로워한다.
책임에서 도망칠 때도 있고
다시 한번, 나서기도 한다.
때로는
어린아이보다도
더 못할 짓을 하거나
모두가 존경하게 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사회는
그렇게 이루어졌지만
어떻게든 살아낸다.
정말 모순적이지만,
그래도 웃을 수 있는
존재들이 모여있기에
따뜻한 사회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어른을 생각해봐야 한다.
과거와는 다른 세상,
계속해서 변해갈 세상을 위해서는
마음을 배우게 할 교육이 필요하다.
그렇게 교육을 받으면서
사회가 준 목표가 아닌
자신이 만든 목표를 이루면서
스스로의 믿음을 채워나가야 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이지만
그만큼,
나아갈 수 있다는 증표가 되기 위해
어른을 위한 교육이
필요한 시대가 지금이 아닐까.
몸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꾸로 가지만,
마음은 시간을 쏟을수록 높이 갈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