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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Jun 23. 2020

할머니에 관한 두 권의 책

<씨씨 허니컷 구하기>와 <나의 할머니에게>

우연찮게도 연달아 할머니가 나오는 책을 읽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엄마가 죽고 아빠에게도 버려진 소녀 씨씨가 이모 할머니 투티와 함께 살며 상처난 마음을 어루만지며 삶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성장소설, 베리 호프먼의 <씨씨 허니컷 구하기>

그리고 나이 든 여자 혹은 엄마의 엄마, 나의 양육자 등을 대변하는 '할머니'에 대한 한국 작가 6인의 단편소설 모음집 <나의 할머니에게> 이렇게 두 권이다. 


<씨씨 허니컷 구하기>는 표지처럼 향긋하고 보드라운 느낌의 소설. 


정신병을 앓다 죽은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와 자신을 거의 떠나다시피 한 아빠. 이웃과 친구로부터의 수근거림, 비난, 슬픔과 고독으로 얼룩진 유년기를 보낸 씨씨.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아빠는 씨씨를 떠넘기듯 이모 할머니인 투티의 집으로 보내지만 그곳에서 진정한 환대와 사랑을 받고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 책의 주인공이 꼭 투티 할머니라고 하긴 뭐하지만 씨씨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것이 할머니이므로. 내멋대로 할머니라는 소재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본다. 

그저 달달하기만한 건 좀 간지러워 꺼리는 편인데 씨씨의 아픔에 대한 날카롭고 차가운 묘사, 다친 아기새를 구조하듯 조심스러운 사람들의 배려와 다정함, 두 팔을 양껏 벌린듯한 넘치는 사랑과 아량은 조화롭고 아름다웠다. 곳곳의 문장들이 참 좋았다. 

세실리아 로즈 허니컷, 더 단단하고 유연하게 세상을 만끽하며 행복하기를. 


보이지 않는 손이 거대한 새총에 나를 끼우고, 뒤로 당겼다가 탕 놓아버린 것 같았다.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새로운 세계에 내던져졌다. _ 89p


“오, 그건 저절로 알게 된단다. 어느 날 문득 무엇을 보거나, 혹은 하게 될 거야. 아니면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지. 그럼 네 가슴속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느낌, 따뜻한 것이 반짝거리는 게 느껴질 거야.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게 무엇이든 절대로 무시하지 마라. 마음을 열고 열심히 생각을 하렴. 그 불꽃에 부채질을 해야 해. 그러면 마침내 네가 원하는 걸 찾게 될 거야.” _163p


오델 할머니는 용서를 받는 사람보다 용서를 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상처와 분노를 안고 사는 사람은 망치로 자기 머리를 때리고 나서, 다른 사람 머리가 아프길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도 하셨다. _ 220p


“우리는 이 세상에서 조심조심 살아가야 하지만, 분명한 건 세상에 나쁜 사람이 한 명 있으면 좋은 사람은 백 명이 있다는 거야.” _ 256p


“학교를 마쳤더라면 좋았겠지만, 나 자신을 불쌍히 여겨봤자 아무 소용 없는 일이야. 인생은 그런 거야.” _ 304p


“넌 네가 슬퍼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슬픔은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찾아온단다. 너를 무감각하게 만드는 슬픔도 있고, 네 세계를 반으로 동강내는 슬픔도 있어. 그리고 전혀 슬프게 느껴지지 않는 슬픔도 있단다. 그건 네 몸에 있는 줄도 모르는 아주 작은 가시와 같아. 그 가시가 아주 깊은 곳에서 곪아터져서 네 영혼밖에 들어갈 데가 없어지면, 너도 그제야 존재를 알게 되지. 난 그게 가장 힘든 슬픔이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아프다는 건 알지만, 이유를 모르니까.” _ 370p


“봐라.” 올레타는 나무와 하늘, 날아가는 새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기 인생이 있어. 움직이고 있는 게 보이니? 나뭇잎들도 움직이고 있어. 인생은 아무도 기다리지 않아. 너처럼 특별한 아이라도 기다려주지 않을 거야. 그러니 네가 큰맘먹고 인생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돼.” _ 376p





언젠가부터 중년, 혹은 노년의 여자들을 보면 그들의 젊은 시절은 어땠을까. 연애하는 모습은? 무슨 일을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곤 했다. 아니, 나와 같은 전업주부들을 마주해도 그랬다. 그저 아이 이야기를 떠나서 과거에 무슨 공부를 했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좋아하는 것이 뭔지 물었다. 역할을 떠난 그 사람 고유의 모습을 서로 알아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기전 다녔던 출판사에서 한 과장님이 그런 말을 했었다. "똑똑했던 여자 친구들 다 어디로 갔는지 뭘 하는지 궁금해. 찾기가 어려워."


우리 세대보다 더 사회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했을 할머니들, 당차면 당찬대로 똑똑하면 똑똑한대로 수군거림을 들었을 할머니들... 딸 혹은 엄마, 할머니라는 역할을 떠나 인간으로 바라보는 할머니들은 어떤 모습일까. 


<나의 할머니에게>는 윤성희, 백수린, 강화길, 손보미, 최은미, 손원평 작가가 써 낸 할머니에 대한 짧은 소설집이다. 윤성희 작가 글을 좋아하고 늘 찾아보는 터라 읽기 시작했는데 한 작품 한 작품 맛있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백수린의 <흑설탕 캔디>가 참 좋았다. 엄마를 여윈 손주들을 수발들러 그 먼 프랑스까지 따라가서 한 마디 말도 못하고 답답하고 단순한 일상을 살아내던 할머니가 프랑스 친구(혹은 연인)를 사귀고 그의 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삶의 생기를 느껴보는 것, 각설탕 탑을 쌓는 남자친구를 보고 웃다가 슬쩍 각설탕을 입안에 넣고 굴리는 장면은 정말 마음에 들었고 뿌듯함마저 밀려왔다. '내 것'에, '나의 행복'에 몰두하는 할머니의 모습... 생경하고 사랑스러웠다. 


손보미의 <위대한 유산>은 취침 시간을 넘기도록 몰입감이 최고였다. 무섭고 공감되고 슬픈, 영화같은 이야기였다. 


결혼식 날, 맨살에 닿았던 하얀 저고리의 감촉과 거품처럼 보이던 레이스 면사포의 흰 무늬나 식당마다 2할 이상 잡곡을 섞어 밥을 지어야 했던 오래전의 어느날 보았던 빗줄기 같은 것. 매일 똑같은 일상에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던 어느 날 아직 어린 아이들을 이웃집에 부탁하고 시내로 달려가 중부극장에서 보았던 영화는 아마도 <폼페이 최후의 날>이거나 <비 내리는 밤의 기적>이었을 것이다. 영화가 무엇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날 느꼈던 감각만은 이상하리만큼 선명했다. 극장에서 나와 홀로 거리를 걷다가 처마 밑에서 소나기가 그치길 기다리며 맡았던, 어느 가게의 생선구이 냄새. 뺨에 닿았던 습기의 감촉과 와아아 떨어지던 빗소리. 살아 있다는 감각과 동시에 찾아오던 이미 너무 늙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 아,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기억들은 어째서 이렇게나 생생할까? _백수린, <흑설탕 캔디>


그땐 모든 게 날아가듯 빨랐다. 걸음도, 호흡도, 친구의 부름에 고개를 뒤로 홱 젖히는 동작까지도. 지금의 몸동작엔 녹이 슬었다. _ 손원평, <아드리아네 정원>


언젠가 민아도 속 모르는 어른들의 말에 부들부들 떨고 분노했었다. 그들이 가졌기 때문에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 성토했었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젊음이 희미해질 무렵부터는 그런 종류의 불행이 배부른 투정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민아는 정확히 자신이 증오했던 어른의 모습이 되어갔다. 달리 말하면 늙어간다는 건 이해할 수 없던 걸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_ 손원평, <아드리아네 정원>





나를 알아보실 때까지, 내 아이를 안아주실 수 있을 때까지 할머니를 뵈러 갈 수 있을까. 

가정을 꾸리는 것, 먹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모든 게 번잡스러워질 때가 있다. 

이리와 앉으라고 채근하던, 펄펄끓는 아랫목처럼 따뜻하고 다정하던 나의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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