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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Jun 02. 2020

여름, 준비- 땅!


고통에 유난히 취약한 우리 아가, 오늘 올해 첫 모기를 두 방을 물리고 "간지러 힝힝~" 징징 파티로 여름의 문을 열었다. 이제 여름이니 모기 자주 물릴 거다, 어쩔 수 없다, 그러려니 해야 한다고 말해줬지만 날짜 개념 없는 아이는 여전히 징징거리며 지금 여름 아니란다.

그래, 봄이 너무 어이없게 가버렸지.


늦겨울에 펑펑 내린 눈에 깔깔거리며 웃고 달리던 날 이후론 이따금의 바깥놀이에도, 소풍이나 캠핑에도 옅은 근심이 붙어 다닌다. 어떤 마음의 거리낌도 없이 뛰고 웃고 싶다.


좋아하는 초록 터널길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걷는 생활을 시작했다. 제법 더워진 날씨에 10분만 걸어도 마스크 밑으로 땀이 뚝뚝.

이마저도 아스팔트 바닥에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맹렬한 더위가 오면 할 수 없겠지.

바람도 미적지근해진 가운데 여름 나무들의 짙어지는 초록만이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여름.

과장을 보태자면 풀이 자라는 속도나 열매가 익고 커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계절이다. 그야말로 와글와글 왁자지껄 온갖 살아있는 것들이 떠들고 뽐내는 느낌. 서귀포에 와 두 번째 맞는 여름에 대한 소감은 여전히 작년과 같다. 왕성-하다. (형용사, 한참 성하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겨울부터 기다려온 초당옥수수를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린다. (식생활만은 계획적인 편으로, 다음 차례로는 매실 장아찌와 털복숭아 대기 중)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잠시도 기다리지 못하고 아뜨뜨 온갖 방정을 떨며 먹는다. 노란 달콤함에 영혼이라도 팔 기세로 흡입하고나니 옥수수와 곁들이려던 아이스커피만이 머쓱하게 놓여있다.


아이의 붉어진 볼과 땀에 젖은 앞머리, 모기 물려 통통 부은 작은 손가락, 초당 옥수수와 무성한 초록들.

왠지 내게는 준비- 땅! 하고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경쾌한 총성이 울린 하루.

부디 우리 일상도 이제 답답한 도돌이표 그만 떼고, 정상 궤도로 준비- 땅! 하고 달려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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