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겠어 모두 내 삶의 조각들인데

by 잠전문가

"어쩌겠어. 그것도 다 네 삶의 조각들인데."

지난 연인과의 몇 년을 후회하는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서른 중반에 들어서면서 인생을 대하는 자세가 좀 달라졌다. 이를테면 Let it be 랄까... 삶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힘을 빼고 흘러가는 것이라고. 방향을 거스르려고 아등바등거린다고 원하는 곳으로 간다는 보장도 없고, 오히려 힘을 꽉 주고 파닥거리다 깊이 잠겨버릴지도 모른다. 이 악물고 열심히 사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나이브한 인간이라고 혀를 찰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게 나 인걸. 서른의 내 마음은 그런 식인걸.


초등학교 때는 교실 앞에 나가 아나운서가 장래희망이라고 말했다. 솔직히 중고등학교 때는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지 몰랐고, 당장 쉬는 시간에 빵에 초코우유 하나 때릴 수 있는 시간이 되느냐 안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장래희망에 관해서는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거나 지껄였다. 큰아버지에게는 "과학자요." (당시 수학 과학 평균 50점 이하의 청소년) 선생님한테는 "선생님이요." 엄마 아빠한테는 뭐라고 했더라. 먹고살기 바빴던 부모님에게는 하다 못해 우유라도 한 잔 앞두고 할 법한 그런 여유 있는 질문은 사치였던 것 같다.


삶 = 꿈

대다수의 어린이, 혹은 어른이들이 꿈을 찾아 한 평생을 헤매며 방황하기도, 벅찬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삶이란 꿈꾸는 것이다, 장래를 희망하고 자아를 성취하는 것이다,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다 라는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세계관에 지배당한다. 꿈이 뭘까. 꿈이 뭔데.

'삶 = 꿈'이라는 세팅은 많은 이들을 괴롭게 한다. 잘하는 게 없으면, 간절히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잘못 사는 걸까. 가치 없는 삶을 사는 걸까. 나도 오랜 시간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나는 왜 이렇다 할 재능 없이, 이렇다 할 간절함 없이 사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나를 한심하게 볼까.


하지만 서른 중반에 도달한 나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삶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유유히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삶이라고. 내가 할 일은 그렇게 흘러가며 아름다운 것들을 눈에 많이 담는 것, 많이 자주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에 정신을 차려보던 때도 있었지만 이 문장은 더 이상 내게 감흥을 주지 않는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어때서. 매일 흘러가며 멀어지는 것들을 애틋해하며 감사해하며 사는 것이 어때서.




야너두?


어제 본 영화와 책은 마치 가치관이 같은 사람들과 떠는 수다처럼 반가웠다.

The best part of living isn't chasing ambition or catching hold of a fleeting dream - It's just living

1.jpeg "바다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늙은 물고기가 답한다. "지금 자네가 있는 곳이 바다라네."

삶의 불꽃은 그런 화려한 것들이 아니야. 걷는 것, 햇빛을 느끼는 것, 이야기 나누는 것 그런 것들. 떨어지는 나뭇잎과 머리 위로 떨어지는 햇살 아름다운 영상에 벅찼던 영화 Soul. 지구 통행증을 아직 부여받기 전인 영혼 22번이 사고처럼 지구에 내려와 야금야금 모은 것들(나뭇잎, 빵조각, 귀여운 실타래와 마음을 달래준 막대사탕)을 악보 대신 올려두고 피아노를 치던 조 가드너의 모습이 뭉클했다. 우리는 그렇게 인생의 조각들을 모아 마음을 채우며 살아간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 중

"우리의 육체는 시시각각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떠보면 많은 것이 이미 사라져 버렸음을 깨닫는다. 강한 밤바람에 휩쓸려, 그것들은 ㅡ확실한 이름이 있는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것이나ㅡ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어딘가로 날아가버렸다. 뒤에 남는 것은 사소한 기억뿐이다. 아니, 기억조차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우리 몸에 그때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런 것을 누가 명확히 단언할 수 있으랴?" _24p





지나가는 순간들을 조금 더 뭉클하게 살고 싶다.

삶의 조각들을 애틋하게 어루만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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