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원 새 산문 _ <2인조>를 읽고
왠지 아슬아슬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그러나 그 예민함으로 인해 아름다운 사람. 물론 대중의 입장에서 바라본 평일뿐, 전혀 근거는 없다. 내게 그런 예술가가 둘 있는데 한 명은 가수 이소라, 한 명은 밴드의 보컬이었다가 지금은 작가로 살고 있는 이석원이다.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에 대해서는 그저 듣기 편한 노래, 특유의 나른한 분위기 정도로 생각했을 뿐 별다른 관심은 없었는데 작가인 그의 글은 예전부터 한 권 한 권 챙겨 읽어왔다. 산문부터 소설까지...
그의 글은 꽤나 진솔한 편인데, 그 솔직함이 어떨 때는 파격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자기 노출을 조심스러워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솔직한 글을 쓸 수 있는지... 이 상충되는 지점에서 그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글은 사람과의 관계, 인생의 단맛과 쓴맛, 강박과 자유 등 어찌 보면 일반적인 이야기를 자기만의 담담한 목소리로 채워가는데, 그게 참 자세하고 자기 속 깊은 곳까지 훌훌 털어낸 느낌이라 강력한 친밀감을 들게도 하고, 계속 듣고 싶게 만든다. 물론 공감이 가지 않는 이야기도 많은데 그마저도 그냥 지나쳐지지가 않고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고 곰곰이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 그의 매력이다.
그의 새 산문집이 나왔다.
그도 집필하는 텀이 있고, 나도 여유가 날 때 (혹은 생각이 날 때) 찾아 읽다 보니 그가 보행의 어려움이나 심리적 불편을 느껴왔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거나 어떤 부분은 아예 모른 채로 책을 읽었다. 이번 책은 저자의 터질 것 같은 심리적 불안함, 두근거림을 맞닥뜨리며 시작한다. 책을 시작하여 끝맺는 동안 그는 꽤 많은 자기와의 사투를 벌여온 듯하다. 저자가 두려움과 고독함을 가만히 들여다본 끝에 잡은 것은 자기와의 사투, 또는 자기와의 화해다. 잠깐씩 보는 의사도, 나에 대해 뭐든 아는 것처럼 떠드는 오랜 친구도, 가족도, 자기 업을 이어가게 하는 독자들도 나를 구원할 수는 없다고. 그리하여 저자는 내 안의 나를 붙잡고 대화를 시도한다. 너 왜 이러는 거냐고. 너 잘했다고. 단단해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무조건 네 탓을 하지는 않겠다고.
쓰다 보니 요즘 에세이계의 트렌드, ##해도 괜찮아류 같지만(괜찮지 않다는 것은 어린애도 안다), 그런 나이브한 결의 책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 오히려 치열하기까지 하다. 일상을 기록해가며 지난 삶을 돌아보고 자기와의 끝없는 대화를 시도하는 저자의 글을 보다가 왠지 모르게 뭉클해졌다. 대단한 드라마적 서사 없이도 우리 삶은 대단하고 용감하다. 그것이 무르게 시작하여 조금은 단단하게 끝난 이 책을 덮은 나의 감상이다.
왠지 모르게 작가를 응원하며 글을 읽었지만, 사실 나 역시 단 일분일초 후에라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내 삶의 단단한 축이라고 생각했던 무엇(돈이나 명예, 사랑, 능력 등)이 한순간 무너질 때 우리는 휘청인다. 그렇기에 애를 쓰는 저자 따라 애를 쓰며, 진을 빼며 읽었다. 저자의 걸음도 마음도 조금 더 가벼워지기를 독자의 입장으로 소망해본다.
밑줄 긋기
정말 그렇게 스토리가 갔으면 보행 장애라는 나름의 고난을 이겨내고 마침내 행복을 되찾은 참 훈훈한 결말로 마무리가 지어질 수 있었을 텐데. 아시잖아요. 삶이라는 게 사람을 마냥 행복 극장에 놔두지는 않는다는 거. _ 32p
그치만 내가 작가로서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야말로 가장 거대하고도 무궁무진한 글거리의 바다이며 그개 가장 강렬하고 호화로운 주제이기 때문이지 내가 수수한 인간이라서는 아니다. _72p
그러니 언제 올지 모를 이별을 맞기 전에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해.
귀찮음과 싸워 이겨서, 사랑하는 게 곁에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누리라고. _ 101p
(중략) 더이상 그들이 알고 있는 나에 대해 정정해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왜.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보다는 내 청중을 분명히 선택했고, 그에 따르면 이들은 더이상 나의 관객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단 한 번도 나라는 극장에 표를 사서 들어와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밖에서 날 어찌 생각하든 신경쓸 이유는 없지 않은가. _ 142p
어릴 적의 행복이 기쁨과 설렘 재미 같은 것들이었다면 어른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주로 감사함과 안도감이 아닐는지. 걱정, 불안, 고통이 없는 상태. 너무 많은 것들을 바라지 않은 대가로 주어지는 마음의 평화 같은 것들. _ 19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