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럭부스럭.
눈을 뜨니 아침부터 아이는 무언가를 사부작 거리고 있다.
아침부터 뭘 그리 바쁘신가. 아이는 베개 옆 벽 쪽에 작은 메모지함을 열심히 붙이고 있다. 박스테이프로 꽁꽁, 두세 번씩 겹쳐가며. 뭐냐고 묻기도 전에 신이 나서 설명한다.
"엄마, 이거는 내가 만들 게 생각났을 때 바로바로 기억할 수 있게 붙여놓은 메모지야."
엊그제부터 만들 작품과 재료 및 방법이 떠오르면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달라고 해서 몇 번을 부르는 대로 받아 적어줬지만 어젯밤엔 "엄마 너무 졸려 내일 하자 흠냐흠냐..." 하며 잠들어버렸던 것이다. 아이는 접착이 잘 되지도 않는 난방 텐트 옆면을 꾹꾹 눌러가며 메모지함을 붙이고 약간의 그림과 함께 아이디어를 적어 놓았다.
모빌 만들기, 텐트 만들기.
아직 모르는 글자가 많아서 모빌은 써줬지만, 텐트를 쓸 때는 내가 바빴는지 급하게 'ㅌㅌ'라고 적어두고 갔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집을 치우면서 텐트 안의 메모를 발견하고 한참을 웃었다. 아이의 만들기 열정은 그야말로 진심이고, 다급한 ㅌㅌ가 그것을 입증했다.
요즘 창작욕에 몹시 불타는 아이는 하루에 자르고 붙이고 작품을 몇 점이나 완성하는지 모르겠다. 덕분에 집안의 꼴(?)은 상당히 예술적이나 정신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형상이며, 창작자의 전시 요청과 관리인의 철거 요청이 첨예하게 맞붙고 있는 상황이다. 뭘 만들겠다고 하면 그 규모가 어떨지, 혹여 그 오브제가 거실까지 장악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겁부터 나곤 한다. 그런데 오늘 아침 메모까지 붙여가며 생각을 붙들어두려는 아이를 보니 갑자기 기특하고 부러웠던 것은 왜일까.
잘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도 없고 이런저런 틀도 없는 자유로운 생각과 거침없는 손놀림. 만들고 싶으면 만들면 되고 그리고 싶으면 그리면 되는 단순함. 그 단순하고 자유로운 창작을 즐기는 아이가 부러웠다. 컴퓨터를 켜고 번쩍이는 커서를 멍하니 바라보는 나, 때론 글을 다 써놓고도 지루하게 읽힐까 청승맞아 보일까 고민하다 지워버리는 나. 매번 글을 쓰고 싶고 그로 인해 즐거움과 만족감을 얻고 싶어 하면서도 자기 검열에, '글 다운 글'이라는 틀에 갇혀버리는 나를 떠올렸다. 창작한다는 것은 어쩌면 어린아이들의 만들기와 다름없는데.
윤종신 노래를 들으며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 느낌으로, 윤종신의 가사는 아주 개인적이고 사소한 결이 있다. 대단히 힘주어 쓰거나 아름답다기보다는 일기 쓰듯 담담하고 일상적인 어조다. 하지만 이별이든, 산책이든 어떤 주제가 되었든 그 상황에 놓였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디테일이 살아있다. 바로 낚아 올린 듯한 싱싱함이랄까. 진짜 지금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생생함. 그의 노랫말은 나로 하여금 그런 기분이 들게 한다. 어쩌면 대중에게 공감과 사랑을 받는 포인트는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단한 식재료를 낚아보려는 욕심을 버리고 작은 것이라도 싱싱하게 잡아 요리해보자고, 아이의 메모지를 바라보며 다짐한다.
만들고 싶은 마음이 꽉 차 쏟아내야 하는 것, 흘러가는 생각이 아쉬워 엉성하게라도 붙잡아두는 것. 반짝이는 무언가를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 아이의 멋진 모습을 보며 그래, 창작이란 그런 거지 하며 흐뭇해한다.
두 손 두 발 자유롭게 거칠 것 없이 나래를 펼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활짝 열어본다. 굳은 의지나 대단한 포부 같은 것 내려놓고 마음속 어지러이 떠다니는 오늘만의 생각, 오늘이 아니면 다시 오지 않을 생각을 잡아 끄적이기로.
아이 앞에서는 많이 아는 척, 성숙한 척 하지만 사실 나의 위대한 선생님은 늘 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