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약국으로부터 시작된 것은

by 잠전문가


동아약국.


아이는 내가 옆에 누워서 한참 자는 척을 해야 잠에 든다. 그날도 그렇게 스멀스멀 몰려오는 잠 기운을 떨치려 온갖 공상을 하며 누워있었는데 오래전 살던 동네의 약국 이름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동아약국. 아직 거기 있을까? 생각의 시작은 동아약국부터였다. 그 길로 내 머릿속은 온 동네를 거닐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살았던 단칸방 다세대 주택. 단칸방이 이어지는 다세대 주택엔 집집마다 애들이 하도 많아 마당에서 훌라후프 대회도 열고 그랬는데. 다들 크다 못해 늙어가고 있겠구나. 다들 어디서 잘 살고 있겠지? 창문으로 제발 좀 조용히 하라 소리치던 반지하집 아저씨는 지금 생각하니 불쌍하다. 얼마나 시끄러웠을까.

초라하고 지저분한 우리 동네 보이기 싫어 졸졸 따라오던 같은 반 남자애를 째려보며 그만 가라고 소리치던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조그마한 어깨에 책가방을 메고 터벅터벅 걷고 있다.

그래, 여기는 예슬이와 다니던 용문학원. 꽤 규모가 컸었지.

좀 더 올라가면 스무 살 처음으로 아르바이트하던 치킨집. 남은 샐러드를 재활용하라는 여사장 몰래 재빨리 버리느라 긴장했던 기억. 걸리면 디지게 혼났다. 집과 오 분 거리였지만 자정 넘은 시간 매번 후다닥 뛰어가던 퇴근길. 여기서 처음 벌어본 목돈으로 나이키 운동화와 외국 브랜드의 가죽 지갑을 샀었지.

그 맞은편엔 작은 초등학교. 그 아래로 내려가 삼거리 코너엔 미용실. 늘 손님이 없어 심심해 보이던 아줌마가 계셨는데. 우측으로 이어진 길, 오래 못 사귄 첫 남자 친구가 집에 바래다주던 것이 생각난다.


어쩌면 이토록 생생할 수 있을까.

여덟 살부터 이십 대 초반까지 꽤 긴 시간을 살았으니 그럴 법도 하다.

속속들이 어찌나 자세히 기억이 나는지, 곳곳에 쌓인 추억이 얼마나 많은지 설명 못할 감정들이 몰려왔다. 생업으로, 육아와 가사로 허우적거리며 사는 어른이들에게는 지난날의 추억에 푹 젖어보는 시간도 사치일까. 정신 차려보면 한 뼘 더 자라 있는 아이의 바지를 주문하고 어느새 가득 찬 음식물 쓰레기통을 비우며 허겁지겁 살고 있던 중 불현듯 떠오른 동아약국은 그렇게 머릿속에 내비게이션을 켜더니 지난 시간들 사이를 한참 헤매게 했다.


이내 하루를 살뜰히 누린 아이의 숨이 일정해졌다. 이불을 다시 잘 덮어주고 아이방을 나와서도 어둑한 거실 소파 한편에 앉아 옛 동네를 생각했다. 하다못해 '중화동 동아약국'을 검색해 거리뷰 기능으로 온 동네를 훑었다. 사라진 것과 새로운 것들 속에서도 나는 충분히 어디가 어딘지 파악할 수 있었다. 다녔던 학원은 사라졌고, 맞은편엔 큰 병원 건물이 생겼다. 생경한 풍경 속에서도 여전히 나 여깄어, 하고 등을 툭치는 낡은 것들이 나를 놀라게 했다. 처음으로 일했던 치킨집, 삼거리의 늘 한가해 보였던 미용실, 같이 등교하던 친구 집 근처 럭키슈퍼...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기억들이 덮쳐와 혼란했음에도 브라운 필터가 덧입혀진 유년시절의 거리는 아련하고 반가웠다. 입안에 사탕을 굴리듯 조심조심 어린 나의 감각들을 깨웠다. 결국 나는 길을 따라 따라가다가 우리 옛 집을 보고야 말았다. 그 많은 신축빌라들 사이에서 마치 오늘의 나를 위해 버티고 있었다는 듯이 예전 모습 그대로 그곳에 있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초록 대문의 2층짜리 붉은 벽돌집. 그 집 1층에 우리는 세 들어 살았고, 그곳을 떠나 일산의 방 세 개짜리 아파트로 이사 가게 되었을 때 나는 친구와 빵을 먹다가 드디어 내 방이 생겼다고 말하다 울었다.

스무 살이 훌쩍 넘도록 내 방도 없던 집이었지만 반가웠다. 어린 내가 머물고 생각하고 상처 받고 꿈을 꾸던 공간. 그대로 있어준 것이 감격스러웠다. 와, 와... 말을 이을 수 없이 오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 거리뷰의 옛 집을 캡처했다. 어린 시절 같은 동네 살던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여운을 이어갔다.


엄마한테 말할까.

거리뷰를 캡처한 사진을 보면 엄마는 어떤 말을 할까.

그 옛날 그 집이 반가운 마음에 호들갑을 떨려다 가만히 휴대폰 화면을 껐다. 철 모르던 나에겐 그 모든 것이 추억이지만 지금보다 훨씬 가난하고 어렵게 가계를 꾸리던 엄마에겐 떠올리고 싶지 않은 동네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먼 강남에서 서울 구석의 동네까지 음식점 홀서빙을 하며 지친 몸으로 퇴근하던 엄마. 만원 버스 손잡이에 얼마 되지 않는 체중을 단 채 이리 휘청 저리 휘청하며 서 있었을 엄마를 떠올리니 차마 그 사진을 보낼 수가 없다.


몇 년 후면 중화동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종종거리며 살던 그 시절 엄마의 나이가 된다. 아득한 유년 시절의 기억을 자는 아이 옆에 누워 가만히 떠올리다가 슬며시 행복해지고 아주 조금 서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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