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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Jun 17. 2021

엄마들이 하기 좋은 일?


"##마을 10시~1시 (3시간) / 시간당 8,720 / 여자만 / 월~금 주중 알바 구해요"

어제 맘카페에 구인 글이 하나 올라왔다.

유기농 식품을 판매하는 초록색 가게로, 집에서 3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오전 10시부터 1시까지 단시간 근무. 가게도 아담하다. 용돈이나 벌어볼까. 오전엔 잠깐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이 하원 전까지는 글을 쓰거나 독서, 약간의 살림(늘 약간만 하는 것이 포인트)을 하면 되겠다 싶어 연락을 했다.


분명 글에는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고 짧고 굵게 일하고 하원 전까지 개인 시간 보낼 수 있는 여유까지 있어 너무 좋아요."라고 쓰여있었으나 사장은 가끔씩 주말에도 근무가 가능한지, 평일 6시까지 봐줘야 하는 날도 있는데 괜찮은지 물었고 나는 괜찮지 않다고 대답했다.

위의 '어린이집 보내고'라거나 '하원 전까지', '여유까지 있어' 같은 말은 도대체 왜 써놓은 걸까? 마치 엄마들의 사정을 잘 아는 것처럼 써놓았지만, 실제로 요구하는 조건은 어린이집 보내는 미취학 아동의 엄마들이 대체로 소화 가능한 범위가 아니었다. 부업이 아닌 주업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묻는 질문마다 어렵다, 괜찮지 않다고 대답하는 나와 "아 저희가 시간을 좀 유동적으로 쓸 수 있는 분을 구하고 있어서요."라는 사장은 그렇게 서로의 거절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며 통화를 끝냈다. 신입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우리는 경력 같은 신입을 구한다"는 답을 받은 느낌이랄까. 아르바이트 자리를 애타게 찾다가 겪은 일도 아닌데 통화 뒤로 씁쓸한 뒷맛이 올라온다.


아이가 네 살 때 아이 어린이집 바로 옆 사무실에서 몇 개월 일 한 적이 있다. 제조 유통업을 하는 작은 회사였고, 나는 출산 전 경력을 바탕으로 마케팅 기획서 작성, 판매 페이지 제작 등의 일을 맡게 되었다. 바로 집 앞이자, 아이 어린이집 옆이었으므로 기회가 잘 맞았다. 그중 제일 좋았던 조건은 10시-4시의 근무 시간이었다.

대표는 애초에 가성비를 생각하며 주부 계약직을 고용했던 것 같다. 하지만 네 시 땡 하면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를 마뜩잖아했고, 주말이고 저녁이고 할 것 없이 업무 연락을 해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이 회사에서 '주부 사원'에게 편의를 봐주는 것이 얼마나 아량 넓은 일인지에 대해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이야기했다. 그 행위는 마치 '내 인덕을 보아라' 하는 퍼포먼스처럼 느껴졌는데, 대표는 정직원 고용이 부담스러워 파트타임의 계약직을 쓰면서도 내게 감지덕지의 자세를 갖기를 원했다.


아직도 종종 그런 공고들을 본다.

왜 아이 엄마를 고용하면서 '아이를 케어할 수 있는 단시간의 근무' 라거나 '부담 없는 일'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걸까. 그저 근무 시간과 하는 일이면 깔끔한 구인정보가 완성되는데. 단시간의 근무는 딱 그 시간만큼의 근무자가 필요하거나 그만큼의 페이를 지급할 수 있어서인데, 왜 거기에 부담이 있고 없고 주부가 하기에 좋다는 말을 붙이는 것인지 의아하다. 주부 사원은 페이가 적거나 대우가 좋지 않아도 시간만 맞으면 고맙습니다 하고 일 할 것 같은 환상이 있나? '경력단절'이라는 말에 눌려 납작해진 여자들을 고용한다는 일종의 우쭐함이라도 작용하는 것일까? 전업 주부가 파트타임을 구하며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분위기에 분개하는 동안 일하는 엄마들은 또 어떤 비상식적인 상황들에 맞서고 있는지 두려운 궁금증이 인다.


나는 한 달에 치킨 두 번 사 먹을 만큼의 돈을 번다.

지역 공기관의 독서 독려 사업인 시민 서평단으로 활동하며 매 달 2회 서평을 내고 받는 돈이다. 꼬박꼬박 열심히 쓴다. 한 편만 써도 되지만 두 편 쓰면 고료를 더 받기 때문에 두 편 쓴다. 시작은 독서라는 취미의 연장선이었지만, 지금은 시간 상관없이 아이 방학에도, 아이가 불시에 아픈 상황에도 가능한 최선의 아르바이트이기도 하다. 이런 최선의 아르바이트들이 더 확장되기를 바랄 뿐이다. 언제까지고 의아한 채용 대신 치킨 두 마리로 만족하는 생활은 아니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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