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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Jul 18. 2022

It Just Happened

아이 팔이 부러졌다.

방문에 철봉을 달아두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영상 통화 중 솜씨를 보여준다고 철봉에서 돌다가 그만 개구리 자세로 수직 낙하했다. 흡사 유도의 낙법 같았으나 손과 발을 안정적으로 디디며 중력을 받아내기엔 힘과 경황이 없는 어린이였다. 철봉 밑에 매트도 깔아두었지만 어쩌다 보니 매트 저 바깥에서 착지했다.


철렁.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졌다. 아이의 울음이 터지는 동시에 우리는 달려가 얼굴과 팔다리를 살폈다. 코뼈는 괜찮나? 이는? 다리는? 안도와 두려움 속에서 몸 곳곳을 체크했다. 거의 바닥과 정면으로 떨어졌지만, 다행히 얼굴과 다리는 괜찮았다. 다만 손목이 조금씩 붓기 시작했다. 얼음찜질을 해주고 타박상 연고를 발라주자 아이는 엉엉 울다 지쳐 잠들었다.


오른 팔 부분 골절. 바닥을 잘못 짚은 모양이다. 의사는 성장판은 다치지 않았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아이는 팔꿈치 위, 어깨 아래까지 깁스를 해야 했다. 아찔했다. 불볕더위는 이제 막 시작되었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데 솜을 대고 칭칭 감은 깁스를 6주씩이나 해야 한다니? 물놀이는커녕 샤워도 조심해야 하는 생활을? 더구나 3주 후에는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데 불편한 학교생활을 보름만 더 하면 되니 다행인 건지, 꿀 같은 방학을 깁스한 채로 자중하며 지내야 하니 불행인 건지 알 수 없는 짬짜면 같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누구보다 가장 속상한 건 당사자였다. 아이는 하루아침에 일어난 이 사달이 믿기지 않아 밥을 먹다가도, 티브이를 보다가도, 세수하다가도 엉엉 울며 괴로워했다. 내가 왜 철봉을 했을까. 난 이제 철봉은 안 할 거야. 너무 속상해.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그런 모습 보여줘서 너무 부끄러워. 이런 모습으로 학교에 가기 싫어. 아이는 어젯밤 일을 곱씹으며 울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왜 철봉을 달았을까. 철봉을 개시한 지는 며칠 되지 않았다. 집에 철봉이 있는 게 소원이라는 아이의 성화에 주문 했던 것이다. 세상을 다 가진 듯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우리는 “저렇게 좋아하는데 진작 해줄 걸 그랬다.”라며 흐뭇해하기까지 했다.

그랬던 나는 철봉을 산 것을, 더 두꺼운 매트를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위험한 자세를 미리 제지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고, 영상 통화 중에 철봉 시연을 허락함으로써 철봉 왕의 허세를 부추긴 것을 머리에 쥐가 나도록 후회했다.



그러나 병원을 다녀오고 양가 부모님과 통화를 마친 후 나는 그런 후회와 미련을 모두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어. 그뿐이야.’ 하는 마음으로. 

첫 번째는 시어머니와의 통화였다. 

“너희가 좀 조심시켰어야지. 철봉을 낮게 달았어야지. 니들이 잘못 했어.”

아들과 전화도 자주 하시는 분이 왜 이런 이야기는 굳이 내게 하시는지 알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몹시 지쳐 있던 오후, 나는 뜬금없이 들이닥치는 ‘네 탓’에 조금 화가 났고 더 지쳐버렸다.

이후 친정엄마와도 통화를 했는데 저쪽의 보호자 탓에 이어 이쪽에선 당사자 탓이 이어졌다.

“그러게, 너무 그렇게 머스마들처럼 꼭대기 올라가고 뛰어내리고 하지 말아. 조심해야지!”

아!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이가 옆에서 듣고 있어서 크게 화를 내지 못했지만, 속이 부글거렸다. 이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고, 그냥 사고라고요! 

그리고 엄마, 꼭대기는 머스마들의 영역만은 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이유를 찾고 있었다. 사건의 인과관계. 누구의 잘못인지, 왜 그런 상황일 수밖에 없었는지 이미 지나버린 일의 꽁무니를 붙잡고 해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보호자 탓과 당사자 탓의 거친 물살을 고스란히 맞고 나니 내 입에서는 이런 말이 절로 나왔다.

“It just happened!”

외국인이 인사만 건네도 배가 아프고 식은땀이 나는 내가 왜 이 사달을 영어로 표현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살면서 모국어처럼 자연스레 체득된 이 지독한 ‘탓하기 습관’을 떨쳐버리고 싶어서 우리말이 아닌 영어를 떠올렸는지도.


이미 벌어진 일에 그간 얼마나 인과관계를 따지며 상황을, 사람을 탓하며 에너지를 소진해왔나. 영리한 수학자처럼 머릿속에 큰 칠판을 세우고 수많은 도식을 그리고 가설을 세우던 나날들. 지금도 습관처럼 그렇게 과거의 일로 괴로워한다.

물론 매사에 조심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몸을 사리면서 무엇을 할 수 있나. 길을 떠나지 않고, 마음 문을 열지 않고 무엇을 얻을 수 있나. 게다가 삶이란 녀석은 조심한다고 무탈히 흘러가는 놈도 아닌데. 헹가래를 쳐주다가도 어느 순간 바닥에 내팽개치기도 하는 게 인생 아니던가. 


저녁 무렵 어머님은 기세가 한풀 꺾인 목소리로 다시 전화를 걸어 오셨다. 아이에게 힘내라는 말해주려고 전화했다고. 그러나 여전히 “다음부터는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라.”라는 말을 덧붙이셨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아이는 “어떻게 안 다칠 수가 있어요! 살면서 백 번도 더 다쳐요!”하고 크고 명랑한 목소리로 외쳤고, 나는 소리 낼 수 없었지만 통쾌한 마음으로 씩 웃었다.




인간의 뇌는 근본적으로 불확실성을 싫어한다고 한다. 그러니 자주 일러주어야 한다. 그냥 그렇게 일어나는 일이 있다고. 그럴 수 있다고. 내 탓도 네 탓도 말고 그냥 받아들이자고.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 자기 코에 있다고 맹세한 욥처럼 나는 내게 벌어지는 모든 일의 앞과 뒤를 헤아려 알 수 없으며 오직 전능자의 행하심 아래 숨을 쉬고 있을 뿐이라고.


아이는 오늘 처음으로 깁스를 하고 등교했다. 아침부터 푹푹 찌는 날씨에 어깨까지 올라오는 붕대를 하고 책가방도 매지 못 해 보조 가방을 들고 걷는 작은 등이 짠했다. 여전히 우울한 마음이 들어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보았다. 밥은 잘 먹을지, 수업 시간엔 괜찮을지… 휘휘 손을 저어도 쫓아오는 날벌레 떼처럼 눈과 귓가에 걱정이 따라붙으며 윙윙거렸다. 

어차피 소파에 멍하니 앉아 차오르는 후회와 염려 속에 잠길 거라면 차라리 시원한 물에 들어가 정신을 차리자. 수영 가방을 챙겨 나왔다. 그랬다면, 그랬었더라면, 다시 주말 저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따위의 말풍선도 거침없이 내동댕이치고 현관문을 꽝 닫았다. 


수심 가득한 오전이 지나고, 아이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멋진 왼손과 함께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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