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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Mar 13. 2022

개똥만큼의 사랑

더러움 주의 

노는 아이를 지켜보며 가만히 서 있기에는 좀 추운 날이었다. 

두어 번 집에 가자고 했지만 아이는 중요한 수술을 앞둔 집도의 같은 표정으로 아직이라고 말하며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도록 모래놀이에 몰두했다. 바람이 꽤 불었고 나는 너무 추워 제자리 뛰기를 하거나 이리저리 걸으며 몸을 움직였다. 


아이가 자라서 좋은 점 중 하나. 엄마를 조금 봐준다는 것이다. 어릴 땐 뭐, 옆에 찰싹 붙어있어야 하니 모래놀이도 같이 해야 했지만 이제는 흙 만지기 싫어하는 엄마를 알기에 조르지 않고 그냥 혼자 한다. 나는 아이 근처를 서성이며 귀가 후의 일정을 생각하고 있었다. 들어가서 씻고 저녁을 먹여야 하나 아니면 간단히 저녁 준비하는 동안 뭘 좀 보여줘야 하나 그런 사소하지만 나름 중요한 것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집에 가자고 한다. 오예! 

이게 웬 횡재냐 하는 마음으로 발길을 재촉하는데 아이가 조용히 한마디 했다. 

"엄마, 나 개똥 만졌어." 


...... 

아이가 재미나게 하고 있던 모래놀이를 급 마무리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황급히 수돗가에 갔지만 비누가 없어 물로만 씻어야 했다. 찬물로 씻은 손을 쌩쌩 부는 칼바람에 자연 건조하며 집까지 가기엔 너무 추운 날이었다. 나는 빨간 아이 손을 보며 약간 망설이다가 배를 쭉 내밀었다. 

"엄마 옷에 닦아..." 

아이는 물기를 탁탁 닦고 손끝을 코에 대 킁킁하더니 아직도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그렇겠지, 비누도 없이 찬 물로 닦은 손이니까. 나는 꽁꽁 언 작은 손을 외면할 수 없어 내 손의 온기로 꼭 잡아 주머니에 넣었다. 


신생아 시절 엉덩이부터 뒷목까지 타고 올라온 똥을 닦는 일은 자연스럽고 기꺼웠다. 지금도 밥 먹는 중에 엉덩이 닦아달라고 불러도 엉덩이 닦는 기계처럼 별생각 없이, 정확하고 빠르게 처리한다. 하지만 제삼자, 아니 제 삼견이랄까 아무튼 그의 것까지 포용할 용기는 선뜻 나지 않았다. 

'왜 아이들 놀이터에 개똥이 있어야 하는가'하는 근원적인 물음부터, 부디 그 똥이 주인이 있는 개의 것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동네를 떠도는 개의 변이라면 뭐 어쩔 수 없지만 어느 반려견의 것이라면 애견인들을 싸잡아 욕하고 싶어질 테니까. 


나는 종종 내가 어디까지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흔히 자식에게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게 부모라고 말하곤 하지만 닥치지 않은 일에 장담할 수는 없었다.  

역할놀이 두어 시간 하는 거 힘들어서 쩍쩍 하품을 하고, 때론 티브이를 틀어주며 요령을 부리는 게 나인 걸. 고작 그것도 못해주는데 내가 정말 애 대신 죽을 수 있을까. 혹은 그런 크기의 사랑을 보일 수 있을까. 

많은 엄마들이 이런 의문을 가질지 모르겠다. 나는 모성애라는 게 도대체 어느 정도의 사랑인지, 내게 그런 게 있긴 한지 의문과 자책이 들 때가 있다. 다른 여자들을 곁눈질해가며 내 사랑은 너무 작은 것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린 적도 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행복하고 값지지만, 육아와 살림에 내 시간과 에너지를 다 쓰고 나면 어쩐지 억울한 기분이 든다. 전전긍긍하며 내 시간을 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어린이가 자라는 만큼 나도 자라고 싶어서 애를 쓰고 산다. 


그런 와중에 개똥 냄새가 나는 손을 잡게 된 것이다. 아이 손을 잡고 걸으며 내 사랑은 개똥만큼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상은 안 해봐서 자신할 순 없지만 이 정도는 가능하다고, 누구의 사랑이 더 큰지 비교하지 말고 딱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자신하며 부지런히 사랑하자고 말이다. 

사랑이면 사랑이지, 모성애라는 단어로 엄마 된 나를 옭아매고 싶지 않다. 뒤통수를 내리치는 즉각적인 통증은 없지만 모성애는 적당히 진행된 충치처럼 때마다 은근히 나를 건드린다. 숭고한 얼굴을 하고서 무겁고 찐득하게 나를 누른다. 나는 그런 것 집어치우고 아이와 나, 조금 더 서로에게 상쾌하고 부담 없는 사랑을 하자고 마음속으로 선언한다. 딱, 개똥만큼의 사랑을. 


개똥 같은 생각을 하며 걷는 엄마 옆에서 아이는 자꾸만 손을 꺼내 킁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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