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잠전문가 Jun 30. 2021

인생의 즐거움은 산딸기처럼

산딸기

날씨가 살짝 더워지는 5월이 되면 나는 그냥 산책하지 않는다. 눈에 불을 켜고 양 길가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걷는다. 산딸기가 열리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열리긴 하지만, 그 앙증맞고 새침한 산딸기를 노리는 이들은 나 말고도 많아서 때를 놓치면 채취의 기쁨은 물 건너간다. 작년엔 통을 들고 와 본격적으로 따는 사람들을 우연히 봐서 꼽사리로 조금 땄다. 얼마 안 되지만 아이와 열매를 따는 재미를 맛보고 잼도 만들었던 그날은 우리에게 제주 생활의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작년의 짜릿한 손맛을 잊지 못해 올 해도 산딸기 따는 날만을 기다린 아이. 하지만 아쉽게도 타이밍을 놓쳤다. 작년보다 산딸기가 더디게 익는 건지 처음에는 아직 때가 아니라며 후퇴. 얼마 후 적당히 익었겠다 싶었지만 남편과 아이가 모두 있는 주말엔 비가 오거나 이런저런 일들로 바빴다. 늘 다니던 산책길의 산딸기는 그렇게 점점 자취를 감췄다. 작년의 내가 그랬듯 올레길을 걷는 이들, 운동하는 동네 주민들이 오며 가며 따간 것이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지만 날도 흐리고 바람도 제법 불어서 오랜만에 산책을 나섰다. 아직도 인적 드문 길에는 검붉게 익은 산딸기들이 조금씩 남아 있다. 제주에 와 작년에 처음으로 산딸기 따는 기쁨을 맛보았지만 아마도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 될 것 같다. 산딸기 밭에는 뱀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산딸기는 좀 우거지고 으슥한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발밑이 어떤 상황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작년에는 어찌 겁도 없이 신나게 그곳을 누볐는지 모르겠다. 무식해서 또 한차례 용감해버렸음을 고백한다.

"산딸기 있는 곳에 뱀이 있다고 오빠는 그러지만 나는 안 속아~"이런 옛 동요도 있다지만 애벌레만 봐도 애배배배 하고 질겁하는 나로서는, 심지어 지켜야 할 아이까지 있는 나로서는, 무려 그 아이가 어미의 피를 물려받아 우주 최강의 겁쟁이라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속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산딸기를 노리는 경쟁자가 퍼뜨린 거짓 소문이라 해도. 선뜻 다시 그 우거진 밭에 가기가 망설여진다. 길을 걸으며 아직 잎 속에 속속 박혀 있는 빨간 행운들을 눈으로만 감상할 뿐이다.


문득 인생의 즐거움이 산딸기 같다는 생각을 한다. 완벽한 때란 없다. 좋아 보이는 것은 누구든 와서 따가기 때문에 눈앞에 딸 수 있는 게 있다면 따야 한다. 비가 와서 너무 더워서 덜 익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가면 그때는 없다. 때론 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장하고 가거나, 모르고 마음껏 즐겨야만 딸 수 있다. 이것저것 고심하다가는 얄짤 없는 것이 인생 아닐까. 열심을 내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늙어서 후회할 일을 줄여야 한다.


얼마 전 오름을 오르다 길을 잘못 들어 산딸기를 발견했다. 두어 개 따서 들고 간 물에 살짝 헹궈 아이와 나눠 먹었다. 으익 시큼해. 아이는 생각보다 맛이 별로라고 한다. 흐흐 그게 산딸기 맛이지.

해마다 습기 가득한 더위가 찾아오면 나는 조금 무기력해진다. 무기력증을 이겨내려고 동네 한 바퀴를 걷는다. 아직 남은 산딸기들을 바라보다가 정신이 번쩍 든다. 명심하자. 고심하다가는 얄짤 없이 사라지는 행운들을 지금 당장 따야 한다. 따다가 잼으로 만들어 먹고 우유에 갈아먹고 그러면서 사는 맛 챙기고 살아야지. 맛있는 것 많이 먹고 토실토실 살찌는 마음으로 이 여름을 보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뭐라, 태풍이 또 온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