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잠전문가 Feb 15. 2024

치울 게 있을 때 하는 게 청소다

"어지르는데도 다 규칙이 있다고. 그냥 냅 둬!!"

결혼 전, 부모님과 함께 살 때 내가 자주 했던 말이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너 같은 딸 낳아봐라'라는 축복은 현실이 되었고, 내 마음 같지 않은 딸 방에 들어설 때면 그 꼬락서니에 목이 메곤 한다. 그나마 우리 딸은 자기 방이 미친 말 날뛰고 간 듯한 상태가 되면 주기적으로 정리를 하는 편이니 그 시절의 나보단 훨씬 나을지도 모르겠다.

세상 부모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면 자식을 낳아야 철이 든다는 말이 다 맞진 않는 것 같지만 어쨌든 나는 자식을 낳은 후 겨우겨우 인간이 되었다. 적어도 싱글 때처럼 집구석을 엉망으로 하고 살진 않기 때문이다. 부모는 한참 크는 아이의 정신적 육체적 안녕을 위해 적당한 위생과 정리 정돈, 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게으른 나는 이 의무 덕분에 그럭저럭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청소를 위생과 정리정돈 분야로 나눠보자면 나는 정리에 좀 더 강한 편이다. 아기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집에 물건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꼴을 특히 잘 못 보게 되었다. 집에 종일 아기와 있자니 눈앞에 있는 것들이 너무 거슬리는 것이다. 집안 꼴이 답답하면 내 속까지 답답했다. 육아라는 게 비상사태의 연속이기 때문에 (소파에서 떨어졌다 삐뽀삐뽀! 물을 엎었다 삐뽀삐뽀! 기저귀가 차마 다 수용 못할 엄청난 응가가 분출되었다 삐뽀삐뽀!) 제발 살림살이라도 안정적으로, 규칙적으로 있어줬으면 했다. 나는 꼬박꼬박 바닥에 굴러다니는 것들을 제자리에 두기 시작했고, 제자리가 아닌 곳에서 죽치고 있는 물건들을 보면 예민해졌다. 아이가 제법 커서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는 '다 쓴 물건은 제 자리에'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했는데, 어느 날은 거울치료를 작정한 듯 우리 집에 놀러 온 같은 반 친구를 따라다니며 "놀았으면 치워야지. 같이 치워야지."를 반복하는 모습에 너무 놀라 황급히 말렸던 기억도 난다.




나름의 정리정돈을 한들 그게 청소의 전부는 아니다. 사실 날림 살림꾼인 내게 청소란 늘 버겁다. 천성이 깔끔한 사람들은 더러워지지 않게 미리미리 쓸고 닦지만, 나는 물건을 제자리에 두고 무선 청소기를 돌리는 데일리 10분 클리닝 외에는 좀처럼 의욕을 내지 못하는 편이다. 집안 곳곳의 더러움이 아우성을 칠 때면 그제야 비정기적 대청소에 나선다. 

내가 생각하는 청소란 이런 것이다. 더러움을 박박 닦아 반짝이게 만드는, 비포 애프터가 확실한 작업! 깨끗한 곳을 닦고 또 닦는 것은 상태유지나 신성한 의식에 가깝지 청소는 아니다. 국어사전에도 이렇게 나와있지 않나.

청소 : 명사. 더럽거나 어지러운 것을 쓸고 닦아서 깨끗하게 함.

쩝. 청소에 대한 소신인 척 지껄여보았지만, 제 버릇 남 못준다고 시험 하루 전에 커피우유 마시며 벼락치기하던 소녀가 벼락 청소를 하는 어른이 되었다는 구차한 이야기일 뿐이다. 



며칠 전 자기 관리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한 연예인의 말이 날림 살림꾼의 머리에 쏙 들어왔다. 

"귀찮은 건 좋은 거다."

부정하고 싶지만 너무나 진리인 말이다. 삶에 윤기를 주는 일들은 품이 든다. 하기 전엔 참 귀찮고 하고 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는 일들. 운동이 그렇고, 청소가 그렇다. 오늘은 날도 따뜻하고 볕도 좋아 걸으러 나왔다가 카페에 들러 글을 쓴다. 아침부터 생활에 윤기가 도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우리 집 거실 바닥의 윤기는... 집에 돌아가서 생각해 봐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