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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Feb 22. 2024

요알못의 힘, 레시피

10년 차 주부지만 요리 실력은 지하 10층인 나는 휴대폰을 옆에 두고 레시피를 보면서 요리를 한다. 음식을 다 만들고 나면 뭔가를 가열차게 볶아낸 프라이팬 옆에서, 끓어 넘치는 찌개 옆에서, 지글지글 끓는 기름 옆에서 곤죽이 되어 있는 휴대폰 액정을 발견하곤 한다. 


콩나물무침이나 시금치 무침 같은 간단한 나물류와 다 때려 넣고 볶으면 되는 볶음밥, 또띠아 피자, 된장찌개 정도가 레시피 없이 할 수 있는 메뉴다. 그마저도 그냥저냥 한 맛이다. 자주 하거나 한번 해봤는데 맛있었던 레시피는 저장해두고 할 때마다 본다. 어릴 때 암기 과목을 그리 못하진 않았는데 레시피는 그렇게 안 외워진다. 흔히 요리는 감으로 한다는데 이걸 외우려 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걸까. 이것저것 해봐도 감이라는 게 도통 오지 않으니 그럼 어떡하나. 더욱 레시피에 의지할 뿐이다. 뭐랑 뭐를 넣으면 이런 맛이 난다거나 하는 그런 얼개가 내 머릿속에는 하나도 없다. 양념은 맛을 보며 단계적으로 투입할 것, 태우지 말 것 이 두 가지만이 내 요리의 철칙이다. 


사실 노력을 안 해본 건 아니다. 백종원의 만능 간장이 유행할 때는 나도 따라서 한 바가지 만들었다. 요리계의 대부 미스터 백은 무슨 볶음이든 다진 고기를 넣어 풍미가 좋다는 그 만능 간장을 넣으면 맛이 좋아진다고 했고 정말 그랬다. 문제는 모든 볶음에서 같은 맛이 난다는 것. 감자볶음이며 어묵볶음이며 당시 우리 집 반찬은 모두 같은 맛이었다. 야심 차게 만든 만능 간장은 그렇게 반도 못 먹고 질려서 흐지부지 처분했다.

그 외에도 등딱지를 뗀다거나 하는 해체 작업 없이 꽃게를 무력으로 두 동강 내서 남편에게 센 힘을 칭찬받기도 하고 (레시피에 꽃게 손질 과정은 없어서 적당히 쪼개면 되는 줄 알았다) 미림을 넣을 차례에 식초를 넣어 새콤한 멸치볶음이라는 창의적인 미식 세계를 펼치기도 하며 (요리가 시작되면 정신이 혼미해짐) 나는 촘촘히 요리 흑역사를 만들어갔다. 자고로 생활 요리란 집에 있는 식재료를 최대한 활용하는 선에서 해볼 법한데 한 끼 먹을 요리를 위해 일 년에 한두 번 쓸까 말까 한 향신료를 포함, 레시피에 등장하는 재료를 싹 다 사는 소비 행각으로 가정 경제를 위태롭게 한 적도 있다. 


요알못의 변을 해보자면 요리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레시피 주인의 고춧가루는 안 맵지만, 우리 집 고춧가루는 눈물 쏙 빠지게 매울 수도 있다. 화력도 집마다 다르고 양념 맛도 조금씩 다르니, 생각보다 굉장히 다른 맛이 탄생하기도 한다. 한 컵이라고 하면 그게 종이컵인지 머그컵인지 알 수 없어 마음이 찜찜하다. ‘적당히’는 늘 어렵지만, 요리에서 나오는 적당히는 정말이지 매우 어렵다. 자작하게 끓으면 뭘 넣으라는데 아무리 끓여도 자작해지지 않아서 국물을 덜어낼 때도 있다. 이토록 레시피도 다양한지라 이건 아닌데 싶으면 변형하거나 다른 걸 찾아볼 법도 한데 기초 지식이 없으니 그것도 쉽지 않다. 커닝도 기본은 알아야 하는 거라고 했다.


대체로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가족들이 음식을 입에 넣기도 전에 맛있냐고 묻곤 한다. 초조함의 방증이다. “아직 씹지도 않았어.”라는 답을 들으면서 다리를 떤다. 때로는 내가 먹어도 너무 짜거나 그다지 맛있지 않은 걸 그냥 먹자고 해야 할 때도 있다. 이때 짜도 속으로만 생각한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요리가 늘 어렵고 부담스러운 나는 ‘뚝딱뚝딱’할 수 없어 아이가 게임을 하거나 책을 볼 때 허겁지겁 음식을 준비한다. 밀키트 수준으로 양념 따로 야채 따로 육수 따로 준비해 냉장고에 넣어둔다. 저녁을 다 해 먹고 나면 설거지만 한 바가지다.

손맛이 나쁘지 않았던 엄마 덕분에 나도 주방에서 몇 번 복닥거리다 보면 맛있는 걸 해 먹게 될 줄 알았다. 현실은 아이에게 간단히 먹일 떡꼬치마저 양념을 따로 만들어 둬야 마음이 편한 나다.




어른이 되면 당연히 잘하게 될 줄 알았던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요리, 운전, 그리고 부당한 일을 부당하다고 떨리지 않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마흔쯤이면 제 몸 하나는 좋은 식재료로 맛 좋은 요리를 해 먹이고, 어디든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으며 합리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건만 여전히 주방에서 헤매고 차선을 변경할 때마다 겨드랑이가 촉촉해지며, 정당한 환불을 요구할 때도 염소 목소리를 숨기지 못한다. 

여러 방면으로 엉성한 채 나이를 먹어버렸지만 그대로 좌절해서는 안 된다. 내게는 레시피가 있고, 택시가 있고, 비교적 환불이 용이한 온라인 쇼핑이 있다! 언제까지 주방에서 휴대폰을 붙들고 씨름할지 모르겠지만 요리부진아인 내가 믿고 갈 것은 레시피뿐이다.

영 내 입맛에 맞지 않는 레시피도 있고, 아니 이걸 내가 했다고! 싶은 정도로 성공한 레시피도 있다. 괜찮았던 레시피의 링크를 하나둘 모으면서 적금 통장 보듯 든든해한다. 


그나저나 요리할 때 자꾸만 비장해져서 더 엉망진창이 되는 것도 같다. 못하기 때문에 더 부담되고 어려운 것이겠지. 칼과 식재료와 도마 앞에서 되뇐다. “실패도 성공도 그저 한 끼일 뿐!” 그래, 한 끼 일 뿐이다. 그저 그런 맛이면 또 어떤가. 

그래도 열 개의 요리 중 네다섯 개 정도는 좀 맛있었으면 좋겠다. 요즘 딸아이가 고사성어 책을 열심히 보고 있는데 '십중팔구'를 내어 놓은 내 음식 앞에서 떠올리지만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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