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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Mar 07. 2024

볕이 좋으면 이불을 넌다고요?


“이불널기 좋~은 날씨네.”

점심을 양껏 먹고 소화도 시킬 겸 걷고 있는데 옆에 있던 그녀가 이런 말을 했다. 그녀는 아이 둘을 키우며 손으로 하는 건 뭐든 능숙한 사람. 건강 및 살림 상식에도 박학한 사람. 손수 바질 페스토를 만들어 먹거나 직접 빵을 굽고, 도자기와 뜨개 등의 공예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나보다는 훨씬 바지런하고 반짝반짝한 살림을 꾸려갈 것 같은 사람이다.


제 손으로 빨래 한 번 한적 없는 사람도 이불 널기 좋은 날씨는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그 어떤 신형건조기보다 야무지게 살균 소독 건조해줄 것 같은 쨍한 햇살, 시원하고 부드러운 바람... 날림 살림꾼인 나도 그 정도는 연상할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그녀의 감탄사를 듣고 속으로 조금 놀랐다. 주부 10년 차가 되도록 '쾌청한 날씨 = 이불 빨래하기 좋은 날'이라는 생각을 안 해봤기 때문이다. 굉장히 느슨한 주기로 빨래할 때가 되거나 손님 초대를 앞두고서야 이불 빨래를 돌리는 나. 화창한 봄날에 코끼리 아저씨는 떠올렸어도 이불 빨래를 떠올린 적이 맹세코 없다.


쾌청한 날씨에 나는 주로... 나갔다. 해가 반짝 뜨고 나뭇잎이 빛에 반짝이며 흔들리면 내 마음도 흔들렸다. 날씨가 어서 나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아이의 등교와 남편의 출근 이후 내 모닝 루틴은 아침 식사 그릇을 치우고 간단히 환기와 청소를 하는 것인데 날씨가 너무 좋으면 이마저도 내팽개치고 문 밖을 나섰다. 동네 똥개처럼 흥얼거리며 길을 걸으며 구석구석을 탐색하고 햇빛을 쐬고 바람을 맞았다. 아 물론 그렇다고 집안꼴을 못볼꼴로 하고 나다니는 것은 아니다. 격일의 빨래와 함께 집안을 보기 좋고 깔끔하게 정돈하는 것은 날림 살림꾼에게도 나름의 사명이니까.




그렇게 나는 집에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하면 좋은 일'은 굳이 하지 않았다. 날림 살림꾼은 그간 "선생님이 너 교무실로 오래."라는 반장의 말을 듣고 찝찝하고 귀찮은 마음으로 교무실로 향하는 소심한 학생의 마음으로 지내온 것이다. 여기서 반장은 더러운 집구석 또는 빨래 더미요, 나는 수행인, 선생님은 집안일의 총체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겠다. 평소 보이는 것만 치우고, 먹어야 하기에 차렸으니 좋은 볕을 보고 이불 널기를 떠올릴 리 만무했다. 빨 때가 되어 세탁기에 넣고, 날씨 운이 좋으면 대충 널고, 그렇지 않으면 건조기행이었다.


살뜰하게 사는 그녀의 말에 날림살림꾼의 코끝에도 햇빛 냄새가 쓱 감돈 순간, 나는 지겨운 집안일에 '행복한 포인트'들을 모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다 보면 지겹다 느껴진 집안일에도 조금 더 정을 붙이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불빨래는 힘이 들지만 햇빛 냄새는 그야말로 행복 포인트다. 바삭하게 마른 이불에 코를 박고 킁킁 햇빛 냄새를 맡는 일. 피로가 쌓인 밤 보송보송한 이불을 턱끝까지 올리고 눕는 행복을 놓치는 건 아무래도 아쉬운 일일터. 조만간 이불을 빨아 널어야지. 모든 것을 흔들어 깨울 강력한 봄햇살 아래 이불을 줄줄이 널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게 하나 둘 살림의 행복포인트를 늘려가고 싶은 마음이다. 살림살이와의 관계가 조금씩 다정해지기를 기대해본다.


그나저나 우리 아파트만 해도 볕 좋은 날엔 이불이며 외투며 많이들 널어놓는데 맨날 봐온 풍경을 두고 새삼 대단한 깨달음인양 비장해하는 내 모습이 역시 날림 살림꾼답다. 나중에 우리 딸이 소를 몽땅 잃고 나서 외양간을 고쳐야겠노라 다짐해도 양심상 등짝은 때릴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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