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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Feb 15. 2019

제주에서의 첫 계절을 보내며

제주 이주 후 네 달 남짓의 생각들

딩동!

메신저를 열어보니 친구가 비염 치료 보조제를 보내왔다. 

문득 생각해보니 우리 비염 왕, 코킁킁 코훌쩍 대장 딸내미가 제주도로 이사 온 이후 콧물을 안 흘린다! 

코 막힌다고 자다 깨서 오열하는 일이 없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삼나무가 많아서 제주도가 비염, 아토피 환자가 많기로 손꼽힌다는데, 우리 아이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것 같고, 비염 증상이 사라진 것은 아무래도 공기의 질 덕분인 듯하다. 

실체가 있다면 멱살을 휘어잡고 싶은 미세먼지야 제주에도 예외 없지만, 그전에 살던 경기도와 지금 이 곳은 수치가 같다 하더라도 시야 자체가 많이 다르다. 경기도 살 때는 창 밖을 바라보며, <누가 하늘에 똥 쌌어?!>라는 책이 그림책이 조만간 나오겠다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이곳은 아주 아주 심한 날 아니고는 하늘색 다운 하늘색이 유지되고 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미세먼지 때문에 제주로 이사 오는 건 비추. 수치가 좋지 않은 날은 제주도 마찬가지. 심지어 도시별 오염도 조사에서 최저 지역도 아님. 공기 때문에 제주로 이사 왔다간 마스크 끼고 한숨 쉬다 입냄새 자살골에 쓰러질 수 있음. 


물개 같은 아이에겐 제주도가 최적. 해녀학교에 보내야 하나.


제주도민 네 달 차. 

제주 생활 장점 중의 장점은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심리적 편안함에 있다. 아마도 앞서 말한 비염처럼 환경적 요인이 크지 않을까 싶은데, 마음이 가라앉고 우울할 때 잠깐 나가서 동네 한 바퀴만 걷고 와도 많이 나아진다. 육지에 살 때도, 지금 제주에서도 가끔 우울에 깊게 침잠할 때가 있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그게 길게 가지 않는다. 아파트 앞만 거닐어도 훅 들어오는 편안함과 여유는 설명할 수 없는, 리프레쉬 제주다. 

게다가 10분만 차 타고 나가도 산으로, 바다로 마음껏 자연을 누릴 수 있으니 날씨만 좋으면 사는 게 풍요롭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단 5분, 10분이라도 차를 타지 않으면 뭘 하는 게 어려우므로 초보운전자(물론 나) 또는 뚜벅이(역시 나)는 생활이 몹시 고될 수 있음.


덧붙여, 서귀포의 겨울은 서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하다. 온도는 거의 십도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은데 변수는 바람. 바람이 불고 안 불고에 따라 혼이 나가는 외출이 될 수도, 더할 나위 없는 봄소풍이 될 수도 있다. 외출할 때 온도 체크보다는 베란다 창 너머로 나무가 정신없이 나부끼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체크하는 편이다. 딸이 붙여준 '추우미'라는 별명처럼 추위를 무지 타는 나에게 서귀포는 구원이다. 한파 속에서도 식지 않는 겨드랑이다. 여름에는 이 겨드랑이가 얼마나 더위에 울어재낄지 모를 일이지만... (습기에 미친다는 사람도 많던데 날씨에 무너지는 멘탈 최약체는 벌써부터 두렵다..)


의식의 흐름대로 적는 또 하나의 장점은 맛있는 식재료를 쉽게, 때로는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을 붙인 이유는 해산물이나 고기는 싸고 싱싱한 것이 많지만 채소나 과일은 물가가 싸진 않은 것 같아서다. 그래도 집 앞 마트에서 생문어나 싱싱한 회, 귤(육지에서 먹던 귤과는 정말 달랐다. 따자마자 먹는 귤은 그야말로 꿀맛이다.)은 물론, 오일장에 가면 한 바가지 듬뿍 주는 딱새우가 만원이니 그야말로 식탐의 화수분이 따로 없다. 집 앞 이자카야만 가도 각종 싱싱한 해산물로 제주 맛 듬뿍이니, 먹는 기쁨 두 배, 몸무게 세 배다. 야호!(...) 지갑과 뱃살은 반비례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딱새우 쟁여놨다 국수 해 먹고, 국 끓여 먹고, 쪄먹고... 매일 미식회



대체로 만족하고 있는 제주 생활 중의 단점이라면…

배송비.

그리고 배송비.

마지막으로 배송비!!!!!

진짜 만 원짜리 사고 오천 원 육천 원 배송비 나오면 분노의 클릭질로 주문 취소하고 안 사… 는 게 아니고 배송비 아까워서 두배로 더 산다(?). 오프라인 쇼핑처도 많지 않은데 온라인 주문은 또 배송비가 뜨악하니 돈 쓰면서 스트레스 받음. (그렇다고 안 사진 않음)


그리고 생활이 좀 단조로워지는 것. 

육지 살 때도 사람 많은 곳 가면 좀비에게 흡혈당한 사람처럼 기력이 쇠해서 좀처럼 가지 않았기 때문에 ‘도시스러운 것’에 대한 그리움은 별로 없는데 아무래도 조용한 섬 생활을 하려니 조금 단조로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두워지면 딱히 할 게 없고, 즐길 거리는 자연과 먹거리뿐이다. 남편, 아이와 친하게 지내지 않으면 크게 외롭고 괴로워질 일이다. 잘해줘야겠다. (…?)



곧 3월이다. 늦가을에 제주로 이사와 보낸 첫 계절, 겨울이 녹아가고 있다. 

이사 온 지 네 달.  제주의 생활을 슬그마니 적어 가보기로 한다. 시간이 지나 이 생각들이 많이 바뀔지, 비슷할지, 그대로 일지 모르지만 기분 좋게 제주에서의 첫 계절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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