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잠전문가 Apr 09. 2019

서귀포의 봄

새내기 제주도민의 계절 기록

아마도 내가 겨울에 제주도에 오게 된 것은 신의 뜻이 아니었을까?

제일 맛있는 것은 아껴두었다 마지막에 먹는 것처럼 좀 더 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육지에 살 땐 봄은 왠지 슬그머니 오는 느낌이었는데, 조금만 나서면 숲이고 바다인 서귀포의 봄은 불꽃놀이처럼 매일 다른 풍경으로 팡팡 터져 나온다.


"곧 봄이라지만 2월에 벚꽃을 보게 될 줄은!"

청소기를 돌리다 베란다 너머의 꽃망울에 설레 그만 성급한 피드를 올리고 말았다. 서울 촌년이자 새내기 제주도민이 SNS에 찍어 올린 그 꽃은 알고 보니 매화였다.

('벚꽃과 매화의 차이를 아세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본 후 부끄러운 피드는 냉큼 내려야 했다.)

겨울 끝바람이 스산히 부는 2월부터 매화는 부지런히 피어났고, 동백도 날이 풀리며 꽁꽁 싸매고 있던 잎들을 수줍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매화는 꽃잎끝이 둥글고 벚꽃은 살짝 갈라져있단다. 그렇단다...


벚꽃이 만개한 나무 그 속속으로 벌들이 윙윙대는 소리를 처음 들어봤다. 꽃 속을 바삐 헤매는 벌들의 윙윙 거림이 극장에서 듣는 사운드처럼 실감 나게 들려왔다. 아침에 새들의 지저귐이 얼마나 구슬같이 청아하고 귀여운지, 밤은 또 얼마나 칠흑같이 어두운지, 별들이 얼마나 크고 가깝게 보이는지...육지에 살 때는 미처 몰랐던 것들이 놀랍도록 가깝게 보이고 크게 들린다.

제주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온 감각은 확장된다.


대한민국 최남단, 가장 이르게 봄을 맞는 서귀포.

샛노란 유채꽃밭 너머의 파란 파다, 새침하게 붉은 동백, 바람에 나부끼는 청보리 푸른 물결까지... 형형색색 서귀포의 봄은 매일이 축제다. 꽃과 바다와 나무들은 '더 이상 나보다 높은 채도는 없다'는 듯 온몸으로 강렬함을 뽐내고 있다.


노랑과 파랑 환상의 콜라보, 색달해변


겨우내 꽁꽁 싸매고 있던 집 앞의 동백이 스르르 잎을 풀어두었다.


얼마 전 친정 부모님이 놀러 오셔서 평소 가보지 않던 관광지를 돌았다. 제주도로 수학여행 왔을 때 관광버스가 정차하면 버스에서 친구들과 짤짤이나 하고, 다른 길로 샜다는 남편의 얘기에 "으이그, 뺀질이 어디 가겄어!" 했지만 나도 다르지 않았다. 어릴 땐 자연을 보고 별달리 감흥을 받지 않았는데 요즘은 눈 닿는 모든 풍경이 놀랍다. 존재 자체로 생동하는 젊음 속에 있었으니 자연의 감흥을 알리 있나!


아마도 서귀포는 가장 이르게 봄을 맞은 만큼 이르게 여름을 데려올 테다.

바다만 보면 몸을 담글(?) 생각뿐인 우리 꼬맹이를 생각하면 여름이 어서 왔으면 싶다가도, 눈부신 봄날을 즐길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벌써 아쉬워지는 요즘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꽃길을 지나며 감탄하는 것. 이것이 행복이 아니라면 무엇이!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에서의 첫 계절을 보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