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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Apr 10. 2019

돌아가시고 나면 후회할까 봐

우리집 독재자와 성산일출봉

"돌아가시면 두고두고 후회할까 봐 간 거야."

부모님을 제주 공항까지 모셔다 드리고 장거리 이동에 지친 몸을 풀며 남편에게 말했다.


며칠 전 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셨다. 아빠는 성산일출봉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하셨다.

성산이라... 집에서 성산일출봉까지는 약 한 시간 반 거리. 제주도에선 거의 서울-부산같이 느껴지는 거리다.

사랑해마지않는 엄마의 위시라면 매일이라도 갔겠지만, 한평생 엄마를 고생시키고 여전히 공산국가 통치자같이 살고 있는 아빠의 소원이라 괜히 지도 속 성산일출봉을 째려보게 되는 것이었다.


일정 마지막 날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공항 가기 전 성산일출봉에 오르기로 했다. 집에서 성산까지 한 시간 반, 성산에서 공항까지 한 시간, 공항에 내려다 드리고 집에 가는 길이 또 한 시간이었다. 네 시간 가까이 운전해야 하는 우리 부부를 생각한다면 그냥 근처 숲이나 가자고 할 만도 한 데, 역시 우리 집 김정은은 김정은이었다. 집에 가서 엄마에게 '당신이 멀다 애들 고생시킨다 해서 성산일출봉에 못 갔다.'하며 핵 발사 버튼을 누를 것이 뻔히 보여 그냥 입 다물고 가기로 했다.


절로 마음을 관대하게 만들었던 성산일출봉의 크고 푸른 국그릇.


성산일출봉은 멀리서 보기만 했지, 진짜 올라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역시나 입구부터 수학여행 관광버스, 중국인 단체 관광객까지 몹시 붐볐다. 딱히 올라보고 싶었던 생각이 없었던데다 미운 아빠가 그토록 가자하니 더 싫었던 터, 붐비는 인파에 한숨을 푹푹 쉬며 오르기 시작했다. 가파른 계단은 팝업북마냥 자꾸만 나타났고 이제는 한숨 대신 턱 밑까지 차오르는 가쁜 숨에 허덕였다. 겨우겨우 정상에 앉아 크고 푸른 국그릇을 바라보았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분화구는 성산일출봉만을 대차게 외치던 아빠에 대한 작은 원망을 집어삼킬 만큼 시원하고 관대한 풍경이었다.




요즘 교회 목사님께서는 사순절 동안 "내 생애 마지막 한 달"이라는 주제의 설교를 하신다. 설교의 요는 한 달만 살 수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며 획기적으로 도전하며, 사랑하며, 정리하며 살라는 것이다. 설교도 설교지만 요즘 부모님을 대할 때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은 단 하나다. 돌아가시고 후회할 일은 웬만하면 하지 말자. 지극히 효도할 정성도, 마음도 부족하지만 이 생각 하나만으로도 엄마 아빠를 다정히 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남편의 말 때문이기도 한데, 지방 출신인 남편은 집에 내려가 부모님을 뵈고 서울로 올라올 때면 '오늘이 부모님을 뵈는 마지막 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했단다. 멀어서 자주 못 가기도 했고 연세도 있으시니 말이다. 그땐 "어우 뭐야, 슬프게"하고 오바를 떨었지만 맞는 말이다. 째깍째깍 빈틈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 살면서도 우리 삶은 모든 것이 두서없고, 때론 급작스럽고 황망하다.


아빠는 하산하며 지금 이 순간도 발 밑에서 바글바글 마그마가 끓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당신만의 유머로 여러 사람의 야유를 샀다. 나는 다음번에 우리 집에 오시거든 성산 쪽으론 절대 안 간다, 너무 멀다 따발총을 발사했지만 우리 집 김정은은 그저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웃음을 허허 지어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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