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안녕한 잠의 나날들
며칠 전 ‘전문가’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는 아이에게 ‘뭔가를 잘하는 것’이라 답해주며 몇 가지 예를 들어주었더니 아이는 금방 습득 및 응용에 들어갔다. 아빠는 ‘요리 전문가’, 엄마는 ‘잠 전문가’란다.
허. 좋은 얘긴 아닌 것 같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아침엔 늘 잘 일어나지 못했고, 어릴 적 방학 땐 오후 네 시에 아침 먹고 그랬다. 남편이 몰래 큭큭 거린다. 확 마.
그래, 인정한다. 잠 전문가로서 육아하며 가장 힘들었던 건 당연 ‘잠’이었다. 경제적 여력, 체력, 정신력 기타 등등 모든 것이 부실한 나는 둘째 계획을 애초에 접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갓 태어난 친구들의 아기들은 너무 예뻤다. '다시 저 작은 아기를 품을 수 있다면..!' 하다가도 잠의 좌절기, 신생아 시절의 새벽을 생각하면 잠 전문가는 이내 도리질을 하고 마는 것이었다.
어디서든 잘 자거나, 잠이 많은 아기를 키우는 부모는 그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까? 나의 아기는 몹시 사랑스러웠지만 아쉽게도 잠에 있어서는 수월한 편이 아니었다. 뭐, 대부분의 아기가 그렇겠지만.
아기가 태어난 후 남편과 나는 매일 밤 걸었다. 나무향 가득한 공원도 아니요, 쾌적하고 시원한 산책길도 아니요 그저 거실, 몇 평 되지도 않는 어두운 거실을 걷고 또 걸었다. 침대에 누워 잔 지 얼마 안 된 신상 지구인은 잠이 차올라 눈이 가물가물해지다가도 눕히면 울었고, 그렇게 등 센서가 울릴 때마다 서로 바통터치를 하며 오밤중에 좀비처럼 걸었다. 너도 나도 우리 모두 잠이 왔지만 잘 수 없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밤에도 자비 없는 육아24시
상모를 돌리며 새벽 수유를 하던 날들이 지나고 아기는 이제 밤에 잠들고 아침에 깨는 인간이 되었지만 밤낮으로 재우는 건 여전히, 아니 점점 더 힘들어졌다. 재우려면 아기를 안고 어야 둥둥 내 사랑아(내 팔자야)를 오매불망 불러재껴야 했을뿐더러 아기는 착실히 먹고 착실히 포동포동해지고 있었다. 안아서 잠들면 조심스레 소파에 기대 누웠고 배 위에 올려 아기의 잠을 이으려 노력했다. 화장실이 급해도 참고, 다리가 저려도 참았다. 참자, 나는 과학이다. 애있으 침대다. 참자. 참자.
안 되겠다. 너무 운다. 점점 무거워진다. 이대로 살다 간 둥가 둥가 바운스 타다가 힘실어 냅다 던져버릴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편해야 아이도 편하다는 남편의 육아 신념에 힘입어 수면교육에 돌입했다. 그래 아가야, 이제 너도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먹고 자는 법을 배워야지. 순한 편이었던 아기는 하루 이틀 만에 뉘어 재우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때다 싶어 따로 재우기도 시작했다. 따로 자기 첫날, 아기는 처음으로 열 시간 넘게 통잠이라는 걸 잤다. 남편이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줬는데 내 얼굴이 얼마나 밝은지 얼굴만 잘라다가 건치 대회 수상 기념사진이라 붙여놔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그마저도 아이가 기고 서기 시작하고, 분리불안이 시작되며 없는 일이 되었다. 자다가도 깨고 또 깨며 그야말로 육아 24시의 시절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변수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잠귀'. 불행히도 잠 전문가의 아기는 잠귀가 밝았다. 아기가 잘 때만 잠깐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으므로 낮잠 시간엔 쥐 죽은 듯이 있었던 것이 잠귀를 더 밝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나는 일촉즉발의 재채기에도 노련한 골키퍼처럼 베개로 입을 막아 무음 모드를 유지했고, 여름이라 아이방 문을 닫을 수 없던 여름엔 정말이지 발끝으로 걸어 다녔다. 이제 아이는 잠들면 좀처럼 깨지 않지만, 더 어렸을 땐 작은 소리에도 번쩍 눈을 뜨고 애앵- 울곤 했다. 겨우겨우 재우고 일어서는 찰나, 우두둑- 무릎에서 소리가 나자 아기는 움찔하며 울었다. 이런 도가니! 망할 도가니!! 마음으로 울며 다시 아기를 안아 달랬다. 남편이 봉지만 부스럭거려도 발끈하던 시절이었다.
모두 다 고단하고 사랑스럽던 한 때
잠투정이 꽤나 심하고 잠귀도 밝은 아이를 키우며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이 생겨났다. 두 돌 무렵이었을까. 아이는 대체로 순한 편이었는데, 낮잠을 못 잔 어느 날 저녁 강렬한 잠 기운의 노예가 되어 울다 울다 양치시키는 내 팔을 물었다. 포효하다 잠든 머리 검은 짐승을 눕히고 아이가 남긴 밥을 거실에 홀로 앉아 욱여넣던 크리스마스이브를 어찌 잊으랴. 그 외에도 잠 기운에 몸부림치다 팔꿈치가 탈골되어 통곡 및 오열을 화려한 퍼레이드 사운드에 묻으며 퇴장했던 놀이동산의 추억이라든지, 아기 재울 때 습관처럼 내던 쉬이- 쉬이 이- 소리에 소름 돋게 시려지던 앞니까지... 아이의 잠과 나의 사투는 늘 스펙터클했다.
아이가 곧 다섯 살이 되는 지금, 이 사투는 불길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낮잠은 졸업한 지 이미 두 달이 다되어간다. 설령 오후 늦게 졸음이 밀려와도 라디오 볼륨을 키우고 거실 불을 켜며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아니, 따님. 전생에 독립운동가셨어요?... 이런 정신력으론 뭐가 돼도 될 것 같다. 아직 아이는 아이여서 잠이 오면 엄한 짜증 (왜 벌써 해가 지느냐, 좌회전 깜빡이 소리가 듣기 싫다 등등)으로 나를 구워 먹지만 말이다.
“클수록 재우는 것보다 깨우는 게 더 힘들어”
일곱 살 아들을 키우는 선배가 말했다.
아침마다 잠에 허우적대는 아이에게 학교 안 가냐고 일어나란 소리를 버럭버럭 지를 시기가 나에게도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안 잠 전문가' 아기 시절을 소환하며 다 큰 궁둥짝을 찰싹 이리라. 그리고 그리워하리라. 잠든 아이를 품에 안고 내쉬었던 안도와 행복의 한숨을. 작고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쌕쌕 내뿜던 따뜻한 숨결을 말이다.
아아, 아니지! 잠 전문가는 다시 도리질을 한다. 추억은 추억일 때 아름다운 것. 오늘도 용맹한 기상으로 새벽녘에 일어나 하루를 살뜰히 누리고 잠든 아이의 이마를 한번 쓰다듬고는, 빠르고 정확하게 잠의 황홀경으로 빠져든다. 약 삼 년의 잠과의 전쟁이 지나고, 비로소 서로가 편안한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