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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365일 아수라백작

이러는 나도 괴로워

by 잠전문가

"당신의 아이는 (당신이 어린 시절 받았던)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_ <스스로 마음을 지키는 아이> 중에서


좋아하는 글귀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힘든 일이 뭘까?

나의 바닥을 보는 것. 나란 인간이 어디까지 한심할 수 있는지 스스로 확인해야 하는 것.

나는 그랬다. 그런 순간을 마주할 때면 정말 힘들고 외로웠다.


결혼이야 물론 대부분 행복과 기대로 하겠지만, 자주 윽박지르던 아빠의 모습이 너무 싫었던 나는 정말이지 룰루랄라의 심정으로 출가를 했다. 다정하고 순한 남편을 만나 순탄하고 행복한 신혼이었다. 쉽게 화내지 않는 사람과 지내는 건 이런 행복이구나, 이런 편안함이라니 정말 귀하구나 싶었다.


흔히 부모의 싫어하는 모습은 자기도 모르게 닮는다 하지 않는가? 신혼 기간에야 코너로 몰릴 일이 없으니 이빨(?)을 드러낼 일도 없었다. 허나 육아 24시는 급코너 대잔치였다. 이리 달래면 저리 울고, 저리 달래면 이리 징징이었다. '아이는 고작 삼 년도 안 산 아기, 나는 그 세 배는 넘게 산 어른이다. 제발 똑같이 굴지말자' 마인드 컨트롤을 해도 그때뿐, 컨트롤 또 컨트롤 그렇게 쌓아 올려진 참을 인 컨트롤타워는 한방의 마지막 징징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며 아빠처럼 아이에게 윽박을 지르고 있었다. 삼십 인생 걸쳐 겪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욱’은 이미 성실히 체화되었다.


나도 이렇게 살기 괴롭다고! 찌릿.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 안의 다른 나를 수도 없이 발견한다. 세상 스윗한 엄마는 아이의 잔펀치가 거듭될수록 경직된 미소 > 이 악물기 > 복식호흡 > 눈가 경련의 과정을 거쳐 파이어! 결국 불을 뿜고야 마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잠들면 반성의 눈물을 흘리는 코스. 이 변태 아수라백작 코스를 365일 중 330일 정도 성실 이수한다고 볼 수 있겠다. 아 육아여, 높고도 잔인한 육아의 경지여...!


아이의 자기 주도성(다른 말로 똥고집)이 유난히 강해지는 시기엔 강경과 수용의 갈래에서 최선을 다해 우물쭈물하다가 분노 주머니가 빵-하고 터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놀란 아이가 힝힝 울다가 눈치 보다가 "엄마 미안해요" 하고 다가올 때면 쓰레기봉투에 자진하여 들어가고 싶었다. 우울함도 극에 달했고 밤마다 남편을 붙잡고 울었다.



'나도 부족할 것 없이 사랑 받고 자랐다면... '


어느 날엔 어느 아이 엄마의 SNS를 들여다보다 친정 가족과의 애틋한 이야기에 '저렇게 커서 아이한테 다정한가 봐' 생각했다. 그 엄마가 실제로 아이에게 화를 잘 내는지 어떤 지 알 수도 없으면서 ‘부족할 것 없는 사랑을 받고 자랐다면 나는 아이에게 좀 더 친절하고 다정했을까?' 못난 생각이 줄을 이었다.


‘넌 좋겠다. 좋은 아빠 있어서.’ 아이를 보며 이런 생각도 해봤다. 좋은 남편 만나 결혼하고 다 괜찮아진 것 같았는데 아이를 키우며 상처받았던 어린 내가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어쩔 수 없겠지만 아직도 친정 아버지와 다정히 지내는 여자들이 부럽고, 좋은 아빠를 둔 아이도 부럽고 그렇다.


결핍이다. 내 안의 어린아이가 아이를 키우며 불쑥불쑥 튀어 나와 자기를 알아주기 바랐다. 성인으로서 언제까지 부모탓을 할 순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아니다. 인정해야 했다. 서럽고 힘들었을 내 안의 아이를...

'절대 아빠 같은 부모는 안될 거야'는 독한 다짐은 아이를 키우며 무너질 때마다 나를 아프게 찔렀다. 그게 답은 아니었나보다. 그럴 수밖에 없는 나를 내가 이해하자. 아기를 달래며 내 마음도, 내 안의 어린아이도 자주자주 달래줘야 함을 깨달았다.


그래봤자 내일의 내 모습...



당신의 천사를 기억하세요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는 일도 시시때때로 무너지고, 별다른 방법 없이 나는 여전히 헤맨다. 쉽게 잊고 헤헤거리는 성격에, 남편도 늘 최선의 서포트를 해주므로 육아 우울증까지 가진 않았지만 종종 깊이 잠길 때도 있다. 아침엔 세상 다정하게 뽀뽀해주고 오후엔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얼굴로 "으쯔르그!!"를 내뿜을 내 모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매일 같은 이 아수라백작 원맨쇼의 여정으로 심신이 지치고 기분이 바닥을 칠 땐 기억해야 한다. 내 앞의 이 어린아이가 내 안의 작은 아이를 보듬으려 온 천사임을. 당장에 익룡 소리를 멈추진 못할지라도 아이를 키우는 것의 의미, 그 감사함으로 잠시 마음이 울컥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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