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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귀에 캔디보다 달콤한

우와 우와 매직

by 잠전문가

"우와~우와~~"

아이는 바다가 보이는 침대에 걸터앉아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이의 감탄사를 듣자 하루의 고단함을 다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우와~ 우와~ 아직도 떠올리면 기분 좋은 그 목소리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던 대재앙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날은 정말 길었던 하루다. 서울 근교로 호캉스를 갔던 것 외에는 아이와 떠나는 제대로 된 첫 여행이었는데 돌쟁이 아이를 데리고 며칠간의 여행을 떠난다는 건 만만치 않았다. 물통, 수저, 작은 통에 담은 주방세제, 비상약, 온도계, 워시, 로션, 여벌 옷, 물티슈, 기저귀, 우유...이고 지고 가야 할 짐은 가히 이민 가방 수준이었고 비행 전 간단히 배를 채우기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는 자연산 활어 마냥 팔딱이는 자신의 신체를 감당 못하던 아이가 결국 의자에서 낙하하고 말았다. 그뿐이랴. 아이는 이유식에서 밥으로 넘어가던 시기라 밥만 내밀면 격한 도리질에 이목구비가 겹쳐 보이는 매직아이 기술을 선보였고 매번 허기를 수분 없는 까까 따위로 때우다 보니 결국 변비의 대재앙까지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기들이 여행 가서 낯선 장소, 낯선 메뉴로 변비에 걸리는 일은 흔하고, 친구는 그래서 여행 다닐 때마다 비상약으로 변비약을 챙겨 다닌다고 했다. 그걸 뒤늦게 알았다는 것이 문제다.


아이는 이유 없이 울다가 안절부절 돌아다니다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먹는 것도 싫다, 앉아 있는 것도 싫다, 처음에는 그저 떼쓰는 줄로만 알았다. 더운가 하다가, 컨디션이 안 좋은가, 하다가 잠이 오나보다 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어처구니없이 둔한 엄마다.) 그러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자지러지게 울어서 기저귀를 확인하다 그제야 알았다. 꽤 오랜 시간 인풋은 있는데 아웃풋이 없어왔다는 사실을... 묵은 응X(식전이신 분들 거두절미하고 죄송합니다..)들이 얼마나 저 작은 배 안에서 아웅다웅 자리다툼을 하고 있었을지, 돌 조금 지난 아이가 얼마나 아팠을지 혼비백산한 남편과 나는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 지금 한가하게 바다볼 때가 아니야...


여기저기 쑤시는 할머니들이 물리치료나 간단한 진료를 보시는 작은 동네 병원이었다. 낯선 촌동네, 작고 컴컴한 병원에서 돌쟁이는 사색이 되어 할머니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의사는 아이를 보자마자 간호사를 불러 "신문지!"를 외치더니 병원 침대에 신문지를 깔고 하얀 거탑 김명민처럼 수술 장갑... 이 아닌 비닐장갑을 낀 후... 맥락상 짐작 가능, 직접 표현 곤란으로 이하 생략하겠다. (의사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이에게도 두고두고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말해줄 거에요.)



가슴 벅찬 그 한마디


아이는 그제야 환한 웃음을 되찾고 병원문을 나섰다. 비까지 종일 추적추적 내렸고, 몹시 지친 우리는 커피 한 잔을 하고 숙소로 향했다. 차례로 씻고, 터덜터덜 짐 정리를 하는데 아이가 바다를 보며 연신 "우와~ 우와~"를 외치는 것 아닌가. 처음 들어본 아이의 감탄사였다. 그때의 가슴 벅참이란! 왜 첫 키스를 할 때 종소리가 들린다 하던데(못 들어봤지만 아기는 낳았습니다(?)) 모든 부모들에게 종소리가 들리는 순간은 바로 이런 순간 아닐까. 처음 들어본 아이의 "우와~"소리에 그 길었던 하루의 고단함이 모두 씻겨 내려갔다. 역시나 방심할 틈 없이 다음 날은 열이 나서 매시간 온도를 재고 해열제를 먹였지만 말이다.


아이와의 여행, 그 중독성은 "우와~"에 있다. 비록 교대로 밥을 먹고 애를 안고 업고, 계단에 계단을 유모차 나르느라 팔이 떨어져 나갈지라도 "우와~" 한마디에 다시 바리바리 짐을 싸고야 마는 것이다.

나야 그 힘들었던 여행의 장소도 고작 제주도였고, 지금까지 아이와 그보다 멀리 가본 적도 없지만 아이와 열몇 시간 훌쩍 떠나는 것도, 사람 많은 곳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크리스마스날 놀이공원에 가는 것도 모두 같은 이유 아닐까?


얼마 전 크리스마스에 어딜 가면 아이가 "엄마, 오늘 정말 즐거웠어."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는 글에 문득 마음이 뭉클했다. 아이가 갖고 싶다던 공주 구두를 검색하며 본 리뷰는 하나같이 "아이가 정말 좋아해요"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중독자들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그분들이 좋아할 것들을 알아보고 있을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뜨끈해지는 겨울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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