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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한 부침개라도 뭐 어때

적당히, 할 수 있는 만큼의 비밀

by 잠전문가

올해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단연 다이어트다. 아이를 키우며 생명수처럼 마시던 수많은 맥주들과 육아 스트레스 해소를 명 받은 기름진 야식들은 어느새 내 중부지방에 야무지게 안착하고 있었다. 아이가 더 어렸을 땐 외출도 쉽지 않았고, 늘 편한 차림(편하다 못해 보는 이의 눈을 불편하게 만드는 차림이랄까)이었기에 스멀스멀 성실히 불려 온 몸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며 사태의 심각성을 느껴 바로 실행에 옮겼다.


약 세 달간의 저탄수화물(지방, 단백질 섭취를 늘리고 탄수화물을 줄이는) 다이어트로 5kg을 뺐는데, 사실 생각했던 것만큼 어렵지 않았다. '강렬한 태양 앞에 당당하게 헐벗는 환상’은 이미 버킷리스트에서 지운 지 오래고, 어차피 내 운동량, 식사량에 근육 빡! 라인 빡! 은 무리인 데다, 살빼 봐야 그냥 날씬한 밀떡 느낌이겠지'하는 물렁한 마음은 세 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강박을 갖지 않고 다이어트를 지속하게 했다.


저녁은 탄수화물을 웬만하면 먹지 않고, 가능하다면 하루 두 끼를 무탄수화물 식단으로 먹었지만 양은 제한하지 않고 마음껏 먹었다. 배고프면 맛없어도 잘 먹지만 허기는 절대 못 견디는 나에게 잘 맞는 방법이었다.


닭가슴살과 두부, 샐러드의 나날들이었지만 내 위는 공허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만큼만'의 여유


세 달 간 다이어트를 하면서 물론 살도 뺐지만 또 하나 깨달았던 것은 바로 이 것이다. 때로는 '적당히', '할 수 있는 만큼만'의 마인드가 필요하며, 그 마인드가 나라는 인간에게 꽤나 동기부여가 된다는 사실. 학창 시절 턱걸이 1초도 못하고 수직 낙하했던, 마지막 잎새만도 못한 나란 인간... '독한', '맹렬한', '열정' 이런 단어와는 매우 거리가 먼 나는 조금 많이 먹더라도 '피자 먹는 것보단 낫지~'하고, 어느 하루 식단을 못 지키더라도 '매일 안 하는 거보단 낫지~'하며 얼렁뚱땅 긍정 요법으로 조금씩 목표에 도달하는 은근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이어트뿐 아니라 육아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 아이와 나 서로 더 편안해졌던 것 같다. "절대 안 돼!"말고 적당히, 아이가 지킬 수 있는 만큼만. 그렇게 마음먹으니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안정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특히나 식사예절 교육은 정말 마음처럼 안돼 스트레스를 받았었는데, 앉은자리에서 10분이 지나면 식탁에서 오래 매달리기, 낮은 포복 등 뜬금포 체력훈련에 매진하는 아이를 예전에는 혼내거나 (몹시 분노하며) 밥을 치우거나 했다면 지금은 그래도 조금이라도 앉아 있었던 것에 의의를 두며 돌아다니며 먹는 것을 조금은 허용해주는 편이다. 기준은 안과 밖 / 가족과 타인으로 삼아 외식할 때, 또는 엄마 아빠 말고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앉아서 얌전히, 민폐 끼치지 않고 먹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지금은 가정보육 중이라 하루에 세 끼나 함께 먹어야 하는데 아이의 가벼운 엉덩이만을 언제까지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제발 한 끼라도 어디서 먹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간절..)


부모의 권위라는 부분도 어느 정도 내려놓았는데,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아이의 아이다움(이를테면 슈퍼 생떼..?)을 바꿀 수 없다면 그냥 친구처럼, 특정 선만 넘지 않게 하자 마음먹게 되었다.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다가 '통곡과 오열의 단계'에 들어섰다간 나도 머리끝까지 화가 나 훈육이고 뭐고 정신을 잃고 왈왈거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러고 나면 서로 감정만 상하고, 아이도 배우는 것이 없고, 나도 끝없는 반성의 밤을 보내야 하니 아이가 남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건강상 안전상 위험한 일들 말고는 그냥 해달라는 대로 해주게 되었다. (물론 화내는 것도 '할 수 있는 만큼만'이 적용 되어 못참으면 가차없이 터뜨리는 것이 함정...)


마주보고 웃을 수 있으니 그걸로 됐다.


손바닥만한 부침개라도 맛만 좋네!


오늘은 아이와 나란히 인덕션 앞에 서 오징어 봄동 부침개를 부쳤다. "엄마 부침개 잘 못 굽는데~" 하고 아이에게 실토하곤(부침개 뒤집기 공포증 있음) 후덜덜 거리다 결국 찢어지고, 태워먹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졸음에 허기까지 겹친, 실로 위험한 짐승 상태였던 아이는 "내 무지개 태우면 안 되는데! 찢어지면 안 되는데!"하고 으앙 울어댔다.(아이는 부침개를 무지개라고 부른다.)

하, 침착하자. 할 수 있어. 심호흡을 하며 아이 손바닥만큼 작게 반죽을 올렸다. 그래. 뒤집을 수 있을 만큼. 그거면 된다. 찢어지지 않게, 타지 않게, 내가 뒤집을 수 있을 만큼이면 되는 것이다. 누가 보면 '그런 게 인생 신조라니, 꽤나 한심하군'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물렁하게, 부드럽게 생각하고 싶다. 육아의 허들도, 아이가 앞으로 넘어야 할 허들도 그런 마음으로 넘었으면 좋겠다. 적당히, 할 수 있는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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