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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엄마라 미안

딸아, 네 친구는 네가 사귀렴

by 잠전문가

“##동 4살 아이 친구 구해요~”

엄마들 커뮤니티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글이다.

나는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다. 무심하기로는 딸로, 친구로, 아내로서도 최강 레벨인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도 제일 잘할 수 있는 부분은 ‘방목’인데 하, 방목하는 엄마는 정말 눈을 씻어야 겨우 몇 명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망했다.


육아휴직을 아껴놨다가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쓰는 엄마들이 많다고 들었다. 챙겨줘야 할 것이 많아서라는데 그 챙겨줄 것 중의 하나가 ‘친구 만들어주기’란다. 엄마 모임에도 참여해서 정보를 얻어야 하고, 친구 그룹도 엄마들 그룹으로 인해 생겨난단다.


가끔 혼자 노는 딸의 등짝이 짠하다. 아이들 간식 주고 사진 찍어 주는 어린이집 선생님 역할 중


"뭔 친구를 엄마가 만들어주냐"


나와 성격이 비슷하게 무심하고 인간관계에 미련을 갖지 않는 절친들은 나의 고민에 이렇게 대꾸했다.

“뭔 친구를 엄마가 만들어주냐”(딩크족)

“우리 애도 친구 없어. 어쩔 수 없지”(엄마 그림에 맥주를 빠트리지 않고 그리는 6세 아동을 슬하에 둠)


아, 뭔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치도록 되지 않는다. 그런데 뼈속 깊이 공감이 된다. 망했다.


우연히 들은 육아 팟캐스트에서 어느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예전처럼 문 다 열어놓고 서로 오가며 지내는 시대가 아니니 엄마가 아이의 친구를 만드는 데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우리 아이는 과한 엄마 쟁이라 (혹은 즐겁게 놀아본 기회가 없어서) 아직 또래와의 교류가 간절하진 않은 것 같은데, 가끔씩 “나는 친구가 없어.”, “누가 놀러 왔으면 좋겠어.” 류의 말을 던질 때면 일생을 외딴섬처럼, 누군가와 일부러 친해질 노력을 해본 적 없이 산 나의 마음에 큰 물결이 친다. 내가 엄마 역할을 잘 못하고 있는 걸까? 남들은 산후조리원에서부터 일명 '조동', 조리원 동기 모임을 갖는다는데... 동네 맘카페에라도 글 올려서 또래 친구를 만들어야 하나?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은 다 둘째 엄마들이라 바빠 보이던데... 의지도 없으면서 고민만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이다.


아이 둘을 키우는 선배는 그런 것 다 파도 앞 모래성 같은 거라고, 금방 허물어지고 의미도 없다며 자기는 이제 혼자가 편하다 말했다. 물론 다 그렇진 않을 것이다. 아이와 아이, 엄마와 엄마가 모두 즐거운 관계가 있을 것이다. 찾기 어려워서 그렇지. 그렇지만 친구들의 ‘엄마 모임’ 이야기를 들으면 그런 평화로운 관계 유지가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아이들이 틀어지면 엄마들 사이에도 균열이 가고, 때로 부자연스러운 노력을 해야 하고...


다 부러 노력하고 싶지 않은 나의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대면 대면하고 살갑지 못한 내 성격이 그런 변명거리를 수집하고 있는지도. 지금은 조금 이른 고민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더 크고 관계에 대한 갈증이 심해지면 나도 도살장 소 끌려가듯 동네 커뮤니티에 “5세 여아 친구 구해요” 같은 글을 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그런 글에 댓글을 달며 뭔가 유형의 관계로 이어지기를 소심하게 기대하지만 그런 일은 일절 없다. 심지어 상대방이 연락처를 알려줘도 문자 하지 못하고 무례의 우를 자주 범함.) 또 모르지. 아이도 나도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될지.


일단 우리끼리라도 친하게 지내자. 친구고 뭐고 우리 사이가 지금 사랑과 전쟁이야.


우리 그냥 자연스럽게 살자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고민의 스펙트럼이 탈지구급이다. 평소의 나라면 일분도 고민하지 않았을 일들에 골몰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부정하거나 원망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어려움의, 고민의 끝은 어디일까. “아이가 결혼하면 끝날까?” 했더니 옆에 있는 남편이 눈감을 때까지 란다. 아, 망했다.


에이, 모르겠다. 고집을 부려본다. 패션도, 인간관계도 자연스러운 것이 최고라고. 이제 방목 육아의 시대는 끝났다고 해도 말이다. 딸아, 공부도, 친구도 너 알아서 하렴. 이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자연스럽게 살기”를 몸소 보여주는 것뿐. 그냥 '자연스럽게' 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잘' 살아야 할 텐데. 하여간 하루도 고민 없이 넘어가는 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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