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랬어의 마법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by 잠전문가

성취감에 취해 사는 나이, 다섯 살.

그렇다. 우리 집 작은 사람 나이는 다섯.

젓가락질, 자기 이름 쓰기, 사진 찍기 등 할 줄 아는 것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내가 제일 잘 나가 와 내가 좀 죽여주잖아 사이에서 좀처럼 헤어 나올 수 없는 그런 다섯 살이다.

물론 성취감에 도취된 5세 아동은 보다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일을 해보다가 잘 안되면 엉엉 울고 좌절하는 일 역시 빈번하다. 얼른 도와줘서 울음을 그치게 하고 싶다는 속마음이 불쑥 올라오지만 섣불리 도와줬다가는 '감히 나님의 도전을 방해해?' 하며 뒤짚어지고 까무러치는 통곡을 유발할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


자기 전 양치할 때 엄마의 도움을 완강히 거부하기도 하고, 하필 어려운 종이 접기를 골라 마음처럼 안 되는 것에 사자처럼 포효하며 책상에 엎드려 울기도 한다. 이제 엄마 도움 없이도 뭐든 잘할 수 있고 잘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몇 번 이런 상황을 겪으니 나도 나대로 피곤해질 때가 있다.


1212.jpg 도전을 방해하는 자 다 쏴버릴 기세... 왜 또 저런 섬뜩한 미소는 그려 넣으셨는지..?


그런데 요즘 이럴 때 먹히는 카드를 하나 발견했다.

"괜찮아, 엄마도 그랬어."

전지전능한 내가 이 따위 것을 못할 리 없다며 우는 아이는 어깨를 들썩거리다 으응? 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얼굴이 펴진다. 웃는 얼굴로 재차 묻는다. "엄마도 그랬어?" "그래서 할머니가 해줬어?"

뭐든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는 것을, 엄마도 어릴 때 나처럼 작고 미숙했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이는 비로소 편안하고 여유 있는 웃음을 보인다.




아이만이 아닐 것이다.

"나도 그랬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위로와 희망을 준다. 마음이 복잡하고 앞날이 캄캄할 때 그 길을 먼저 지나온 사람이 건네는 이 말은 상황은 어찌됐건 지나가고 편하게 떠올릴 날이 온다는 뜻이니까.

진로를 고민하던 젊은 날엔 긴밀히 지내는 인생 선배가 없었고, 육아도 먼저 겪은 친구가 없어 때로 막막하고 어려웠던 것 같다.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 육아와 자아 사이에서 허우적거릴 때 "괜찮아, 나도 그랬어." 하며 손을 잡아줄 선배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도 아이처럼 편안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내가 나름대로 씩씩하게 지내올 수 있었던 것은 팔 할이 책 덕분이리라 생각한다. 먼저 삶을 겪은 어른들의 이야기에서, 다양한 작가들이 써내려간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나도 그랬어'의 공감과 '괜찮아질 것'이라는 위로를 얻었다. 그런 위로와 공감, 통찰을 얻을 수 있기에 나는 읽는다. 또 부족하지만 누군가에게 위로와 공감의 따뜻한 온기를 건네고 싶어 나는 쓴다.


얼마 전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라는 책을 읽었다. 좋은 어른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내 나이 서른 중반. 젊다면 젊은 나이지만 이제 '나이 듦'에 대한 생각이 귀퉁이 어딘가에서 조금씩 커져가는 나이이기도 하다. 어떻게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이의 편안해진 얼굴을 보며 다소 고민 없이 답을 내려본다. "나 때는 말이야"가 아니라 "나도 그랬어" 하고 말해 줄 수 있는 어른. 그럴 수 있다고 등을 토닥여줄 수 있는 어른이 좋은 어른 아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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