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고정관념에 대하여
결혼하기 전, 아니 아기를 키우기 전에는 몰랐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고정관념과 편견이 있는지... 아이와 함께 다니다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일들이 꽤 많았다. 세상 모든 것을 새롭고 강렬하게 받아들일 아이에게 무차별 고정관념 폭탄을 안겨줄 순 없었다. 점점 유난히 유난스럽게 불편을 떨기 시작했다.
대충순이, 일명 '좋은 게 좋은 거'파인 나는 아이 어린이집에 대해서 얼굴에 상처가 생겨도 '놀다가 부딪혔겠지~' 하고, 소지품이 빠져도 '바빠서 깜빡 하셨겠지~' 했는데 그 날 따라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데 영 기분이 이상했다. 치마 입은 아이, 화려한 머리 장식을 한 친구들에게만 "어머, 너무 예쁘다~"를 열심히 외치시는 원장님, 그리고 친구들을 부럽게 바라보며 신발을 벗던 '통풍 백 퍼센트 엉덩이 끼임 제로 활동성 최강(강조) 내추럴 린넨 배기팬츠'를 입은 내 아이... 그 장면이 자꾸 맴돌며 언짢아지는 것이다. 처음엔 언짢음으로 시작했지만 이런 일들은 몇 개월 동안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아이가 치마를 입고 간 날, 선생님에게 "오늘 여성 여성 하네~"라는 이야기도 들어봤다. 도대체 '여성 여성 한'게 뭐란 말인가!
꽃보고 예쁘다고 하는 게 잘못이야?
원장님, 그리고 선생님들이 사실 어떤 의도를 갖고 그러신 건 아닐 테니 비난할 마음은 없다. 내가 이런 얘기를 했더니 누군가는 "꽃보고 예쁘다고 하는 게 잘못이야?"라고 했다. 말문이 막혔지만 돌아보면 나라고 무의식적으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을까. 하지만 어른의 모든 말들을 100% 수용하고 인지할 아이들을 보육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부분에 있어서 어느 정도 자각은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치렁치렁한 치마에 걸려 넘어지면서까지 사수해야 프린세스 패션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여아들의 성장 과정이 아니라 성고정관념을 조장하는 매체와 무심코 던지는 어른들의 칭찬 등의 여러 환경들로 인해 만들어지는 취향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나는 내 딸이 신나게 구르고 뛰어놀 나이에 펄럭이는 치마와 불편한 레이스에 익숙해지기를 원치 않았다. 아이의 첫 사회생활인 보육기관에서 여자다움, 남자다움이라는 고정관념을 배워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이에게 가끔 "멋진데~!"하고 칭찬하면 "여자는 예쁘고, 남자는 멋진 거야"라는 되받아쳤다. 아이가 가져오는 워크북 그림엔 엄마는 앞치마를 입고, 아빠는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허,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엄마가 안아줘도 뽀뽀뽀가 끝난 지가 언젠데!) 이 모든 게 보육기관의 책임은 아닐 테다. 어쩌면 나도 무심결에 성고정 관념적인 이야기를 별 자각 없이 했을 테니까.
같은 류로, 외적인 편견을 심어주는 말도 아이 앞에서 많이 했다. 자각 없이. 이런 것만 먹으면 뚱뚱해진다거나, 키가 안 큰다거나, 누가 머리가 작고 비율이 좋다거나... 뚱뚱하고 마르고, 키가 크고 작고, 머리가 길고 짧고... 좋고 나쁨이 없는 것들을 좋고 나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와 색을 칠하며 살구색을 살색이라 칭했다. 이 글을 읽고 유난히 유난스러운 여자네, 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자식을 금이야 옥이야 키울 순 없어도 고정된 생각 없이 넓고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민보스는 오늘도 외친다
전에 읽은 육아서에서 아이가 죽은 새를 보고 가엾다고 묻어주고 싶다는 말에 죽음에 대한 편견을 주지 않으려 손수 묻어줬다는 글이 떠오른다. 무섭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했지만 (죽은 생물에 대한 편견이 없는) 아이의 순수하고 예쁜 마음을 지켜주고 싶었다고. 나라면 단번에 아이에게 징그럽다거나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말했을 게 뻔하다. 그렇게 까진 못하더라도 오늘을 사는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좀 더 편견 없이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작은 일부터 꼬장꼬장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애 낳고 예민 보스가 된 나는 오늘도 외친다.
도대체 '여성 여성'한 게 뭐냐고!
왜 시가 식구들은 도련님, 아주버님, 아가씨고 처가 식구들은 처형, 처제, 매제냐고!!
왜 루피는 맨날 앞치마 입고 요리하고, 모두에게 상냥하고, 우물쭈물하고, 게다가 분홍이냐고!!!
왜 엄마 상어는 어여쁘고 아빠 상어는 힘이 쎄냐고!!!!!
우리 남편의 표정은... 상상에 맡긴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남편은 어디선가 벽을 보고 도대체 누가 우리 아내를 프로 불편러로 만든 거냐고 고개를 저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