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봤자 내일도 하품하고 있겠지만
"아냐 여보. 내가 할게"
설거지를 하겠다는 남편을 말리며 사실 속으론 이렇게 말했다.
'그건 날 위한 게 아냐 여보. 아이랑 노느니 설거지를 할래. 나 아무 말도 안하고 싶어. 벽보고 있고 싶어. 아무 생각 없이 몸 쓰고 싶어.'
그랬다. 아이를 키우며 '놀아주는' 부모가 되지 말고, '같이 노는' 부모가 되자 자주 생각했지만 그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아이는 한번 꽃히면 반복, 또 반복이다. 귀엽고 예쁜 순간은 잠깐이고, 아이의 "또! 또!"에 긴 시간 정신이 아득해진다. 돌고 또 돌아가는 동요CD와 함께 돌고 또 도는 무한 비행기 접기, 날리기, 우와~ 또 우와~
먹이기, 치우기, 씻기기, 재우기 외에도 엄마는 중요한 임무가 있다. 바로 '놀기'.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롭고 즐거운 아이는 새로운 노래, 새로운 놀이, 새로운 색, 새로운 촉감에 감탄하고 빠져든다. 미안하게도 닳고 닳은 애미는 즐거워하는 아이 모습에 잠깐 가슴이 벅차다가 계속 되는 반복놀이에 체력과 정신력도 함께 벅차기 시작한다.
노는 걸 이렇게 꾸역꾸역해도 되나...
"세 살차이도 같이 잘 놀까요?", "터울이 너무 나면 따로 놀아서 힘들어요", "둘이 잘 놀 때 정말 둘째 잘 낳았다싶어요." 이런 글을 맘카페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놀다 놀다 지친 애미는 귀가 솔깃하다가도 첫째의 놀이 상대로 둘째를 낳을 수도 없고... 아무튼 많은 엄마들이 '같이 노는 것'을 두고 형제자매의 터울 고민을 하는 것은 그만큼 아이와 놀아주기가 쉽지 않다는 뜻일테다.
언젠가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친구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누가 밥해주고 치워주고 집안일만 다 해줘도 아이보는 게 마냥 좋고 행복할 것 같다고. 아이와 노는 것을 이렇게 꾸역꾸역해도 되나 싶지만 어쩌겠는가. 사람인지라 몸이 지치고 피곤할 땐 '놀아주기'가 강제 노역처럼 느껴지는 것을. 하루에 약 십여분(만) 혼자노는 아이와 종일 있다보면 정말 귤따기 아르바이트라도 나가고 싶다. (제주 거주 중)
돌 까지는 까꿍에 싱긋 웃어주기만 해도 꺄르르, 두 돌부터 시작되는 무한 반복과 무한 리액션, 무한 도움 요청에 살살 지치기 시작한다. 세 돌하고도 반년 지난 지금은...? 무한 반복과 무한 리액션, 무한 요청의 큰 틀에서 벗어나진 않았지만 사고력과 신체협응능력이 제법 자란 아이는 때로 놀라운 상상의 결과물을 만들기도 하고, 재미있는 말들을 해서 뜻밖의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물론 자기 뜻대로 안되면 무한 쏘가지 당첨이다.
이쯤되면 "청소는 청소기가 해주고, 밥은 밥통이 해주고,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는데 뭔 호강에 겨워 요강에 #싸는 소리여, 요즘 같이 편한 시상에 열명도 거뜬히 #$@%#%$$%..."
천만 어머님들의 타박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놀이 노역의 푸념은 여기까지 해두자.
갓 3년 산 생물체와 논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
아이와의 놀이에는 물론 즐거움도 많다. 갓 3년 산 뇌와 몸이 내뿜는 신선함은 싱싱 그 자체다. 아이가 그림다운 그림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을 그렸을 때의 놀라움, 굳은 몸으로 낑낑거리며 요가하는 내 옆에서 다리 찢기를 완벽히 시전하는 싱싱바디의 놀라움, "카드로 계산하세요? 현금영수증 하세요?" 하는 만 3세의 역할 놀이, 함께 구르고 땀빼며 실컷 웃고 났을 때의 개운함.
그뿐인가. 요즘 미술놀이에 빠져있는 딸 덕분에 새로운 발견도 하게 되었다. 내가 아주 망손(...)은 아니라는 것. 중학교 때 내 그림을 보고 발로 그렸냐(...지금 생각하니 진짜 어이가 없다.)던 미술 선생님의 이야기 이후 미술 쪽은 덮어놓고 못한다, 재주 없다 했었는데 아이와 만들기, 종이접기, 그림 그리기를 하며 꽤나 즐겁고 나름의 결과물도 만족스러워 내 안의 또다른 모습을 발견한 기분이다.
"나는 다 커도, 크고 또 커도 엄마 아빠랑 살거야!"
오늘 밤 아이에게 읽어준 자연과학책 마지막 장엔 아기곰이 다 자라나 생존의 기술들을 터득하고나면 엄마를 떠나 혼자 산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아이는 아연실색을 하며 말했다. 나는 "제발 그러렴."하고 꼭 안아줬다. 자식을 곧 떠날 귀한 손님 대하듯 하라는 말이 있다. 그래, 정말 금방이라고 엄마 선배들은 말한다. 아이와 놀 수 있을 때 놀아야지. 자기 앞에 늘어둔 블럭 앞에서 쫑알쫑알 이야기하던 아이가, 그 길고 조금은 무료했던 수없는 오후가 나중에 얼마나 그리울지, 뒤돌아 떠올리면 얼마나 반짝일지... 이미 알 것만 같다. 애틋하고 지루한 시간들이 이렇게 속절없이 흘러간다. (그래봤자 내일도 장난감 앞에서 하품하고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