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터카가 많아졌다. 바야흐로 휴가철이 온 것이다.
집 앞 마트에도 계산 줄이 길어졌다. 구매 품목을 보면 관광객과 동네 주민을 바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각종 주류와 안주거리 아이들 주전부리와 레토르트 식품을 계산하는 사람들은 뭔가 여행자만의 들뜬 공기를 휘감고 있다.
얼마 전 밤에 마트를 갔다가 관광객들을 보고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여보, 요새 가끔 제주도 놀러 온 사람들 보면 부럽다?"
“읭?” 의아한 표정의 남편.
“저 사람들은 돌아갈 집이 있잖아.”
“의이잉?” 세상 또라이 바라보는 표정의 남편이다. 흐흐
가끔은 지나가는 렌터카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한다.
'아, 여행 와서 좋겠다! '
혼잣말을 하고 스스로도 황당하다. 충분히 주말마다 산으로 바다로 콧바람 쐬러 다니며 여행하듯 살고 있는데... 관광지에 산다고 관광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닌가 보다. 다행히도 얼마 전 읽은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 <여행의 이유> 중 한 에피소드가 떠올라 나의 알쏭달쏭한 마음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뉴욕에서 몇 달 지내던 중 아내가 "여행하고 싶다."라고 했다던. 지금 여행 중이지 않냐는 작가의 말에 "이런 거 말고 진짜 여행."이라고 했다던 에피소드 말이다.
관광지에 살아본 건 처음이라 몰랐다.
관광지 거주자도 가끔은 ‘살고 있는 곳 아닌’ 곳으로의 떠남이 필요하다는 것을.
또 하나의 생활권에 대한 권태(?) 증상이 있는데 그것은 떠나온 곳, 육지가 종종 그립다는 것이다.
(친구는 '육지'라는 단어에 넘어가듯 웃던데 제주도에서는 자주 쓰는 말이다. 용례로는 "육지 가서 쇼핑하고 싶다.", "육지에서 손님이 오시는데요.", 소위 외지인들을 배타적으로 일컫는 "육지 것들" 등이 있다.)
티브이에 강남역이 나왔는데 그 복잡하고 정신없는 곳, 내가 딱 싫어하는 그곳이 반갑더라. 또 남편에게 미친 소리를 던져본다. “여보, 나 저기 딱 십 분만 갔다 오고 싶어. 더도 말고 딱 십분.”
종로 거리 좀 걷고 교보문고 가서 책 한 권 사고, 커피 한 잔 마시고 반나절 보내고 와도 딱 좋겠다.
얼마 전 아이와 호텔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던 생각이 난다. 백화점 갈 때마다 신나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또 타던 녀석은 어느새 움직이는 이 신묘한(?) 계단 앞에서 발을 디딜까 말까 머뭇거리는 시골 소녀가 되어있었다.
달리는 차 열에 일곱은 렌터카인 시즌이다.
저 멀리 앞서가는 렌터카 궁둥이(?)가 너무 룰룰랄라 신나 보여서 질투가 다 난다.
심지어 동네 호칭도 '관광단지'인 곳에 거주하는 나는 오늘도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떠나온 자들을 부럽게 바라본다.
쳇, 여보 우리도 떠나자!
제주도 말고 우도로!!
...
예전에 무한도전에서 이효리가 노래방 기계로 노래 부르다 유재석을 붙잡고 "오빠, 나 서울 가고 싶어. 나 좀 데려가 줘."라며 울부짖던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그땐 막 웃었는데 웃을 일이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