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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하영 Jul 09. 2023

치앙마이 일기 10

운동 또잠 어묵국수 환전 약국 올드타운 카페 1,2 편의점

7월 8일 토요일


알로에를 듬뿍 바르고 잤지만 등에, 정확히 말하면 어깨에 열감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체는 적당히 그을려졌고 등과 어깨는 확실히 화상에 가까운 것 같다. 아침 운동을 했다. 내일은 숙소를 옮겨야 하니 오늘이 마지막 운동이 될 것 같다. 가장 높은 층답게 오늘도 뷰가 멋졌다. 여기서 운동을 하면 잠시 성공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그런다.ㅎㅎ 유산소 50분을 하고 팔 운동을 하려는데 어제 마사지의 여파 + 따가움으로 영 불편하다. 아 컨디션이 이게 뭐람.


운동을 하고 열이 나니 더 후끈거리는 것 같아 얼른 찬물로 샤워를 마쳤다. 오늘은 이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집이 좁고 그렇게 아늑한 분위기는 아니라서 떠나는 게 크게 아쉽지는 않다. 3일 전부터 정리도 대충 하고 있었다.  몸에 열이나 좀 빼야 될 것 같아서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고 침대에 누웠다. 지난주도 그렇고 이상하게 토요일은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컨디션도 별로라 더욱 그랬는지 모르겠다. 뒹굴다 보니 3시가 넘었다. 이제는 일어나야지. 으쌰.


집 앞에서 어묵국수를 먹었다. 여기도 다른 메뉴가 많아 보이는데 오늘도 같은 메뉴를 시켰다. 새로운 메뉴에 도전을 잘 안 하는 편이다. 오죽하면 아직도 과자를 고르라면 칸쵸, 콘칲을 먹는다. 어묵국수와 수박주스 한 잔을 먹었는데 아차차 지갑을 두고 나왔다. 휴대폰 gnl 결제를 해야겠다 싶었는데 갑자기 앱도 열리지 않는다. 지갑을 놓고 왔다고 하면 믿어주려나..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굴리면서 앱을 여러 번 켜고 껐더니 다행히 열렸다. 얼른 계산을 하고 다시 집에 와서 우산과 지갑을 챙겨 나갔다.

 

오늘은 환전을 해야 한다. 네이버 카페에서 환율을 잘 쳐주는 곳이라고 해서 지난번에도 다녀왔던 Mr.pierre 환전소로 간다. 숙소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곳. 오늘은 새로운 골목으로 안내해 줬는데 여기도 곳곳에 예쁜 곳들이 많다. 직진만 하면 돼서 어렵지 않게 도착했다. 여권을 내고 한화 5만 원권으로 40만 원을 냈다. 지난번 보다 100 밧트 정도 덜 받았지만 그래도 환율계산 앱보다 잘 쳐준다. 그리고 이제는 치료가 필요해 보이는 내 피부를 위해서 주변 약국을 찾았다. 타페 게이트 바로 안 쪽에 있었다. 태국어로 ’ 화상 연고‘를 검색해서 보여줬더니 연고를 하나 내어준다. 인터넷에서 찾은 (블로그에서 좋다고 나온) 연고 사진을 보여주니 이 회사가 2-3년 전에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산 그 연고는 135 밧트. 부지런히 발라야겠다.


시간이 애매해서 근처를 둘러보니 분위기가 좋은 카페가 있다. 통창으로 타페게이트가 보이는 굉장히 명당인 곳이다. 치앙마이에서 드물게 영업시간이 9시까지 길래 여기서 일기나 쓰고 가면 좋겠다 싶어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아르바이트생이 잘생겨서 여기는 반드시 다시 와봐야겠다. 한국인들도 두 팀 보였다. 한국말을 못 한 지가 한참 되어서 이제 한국 사람만 보면 내적으로 너무 반갑다. 다들 어떤 사연으로 치앙마이에 와 있는 건지 특히 혼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더욱 궁금하다. 다들 여기서 힐링 잘하고 계신가요? 나는 나름 잘하고 있는 것 같다. 너무 현실과 떨어지지 않도록 적당히 간격을 유지하며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가장 잘하고 있는 것은 이렇게 매일매일을 기록하는 것. 생각보다 독서도 못하고 있고, 계획했던 사진첩 정리도 아직 못했지만 지친 마음을 이렇게 보살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의미한 시간이 된 것 같다. 일을 할 때도 항상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내 의지대로 일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회사란 게 다 그런 것이겠지만 주변에는 나무는커녕 잡초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래서 힘들었다. 그런데 여기 와서 (주변에서 어쩌든 간에) 내 방식대로 더욱더 숲을 보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고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들이라는 확신이 드니 나도 그렇게 대하고 싶어 진다. 물론 치앙마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이 시골이고 모기도 많고 어딜 가려면 택시를 잡아야 해서 불편하지만 그래도 나에게 꼭 필요한 순간, 필요한 장소인 것은 분명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배가 고파졌는데 주문은 8시까지 라고 한다. 그래서 잘생긴 알바생과 인사를 하며 카페를 나왔는데 바로 옆에 카페 하나가 더 있었다. 실내보다 야외 좌석이 더 좋은 것 같아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연어 아보카도 샌드위치와 과일 주스를 시켰는데 비주얼도 맛도 대만족이다.


내일은 이 한 달 살기의 마지막 버전이 시작된다. 친구와 함께 와서 이틀 + 이틀을 올드타운과 님만해민에서 관광객 코스로 보낸 시즌1, 창클란 콘도에 자리를 잡아 혼자 살아 본 시즌2, 그리고 같은 콘도에서 동만 옮겨(여기서 알아보고 더 좋은 컨디션을 구했다.)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하는 시즌3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혼자라서 못했던 것들 못 먹었던 것들을 마음껏 해봐야겠다. 스무 살부터 함께해 온 내 인생의 동반자 급의 친구와 몇십 년이 지나서도 곱씹을 만한 재미난 기억들로, 추억을 추억하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또 다른 선물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피부 세포들이 밤새 열일을 해서 내일은 등과 어깨가 좀 더 괜찮아질 수 있기를 바라며 열심히 연고를 바르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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