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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하영 Jul 23. 2023

치앙마이 일기 20

운동 체크아웃 어묵국수 원님만 네일 차트라뮤 마사지 저녁 공항

7월 18일 화요일


마지막 아침이다. 내일 아침 나의 몸은 한국일 것이다. 마지막 아침이라 더 부지런히 움직였다. 7시에 일어나 바로 준비를 하고 헬스장에 왔다. 어제부터 영상 없이 음악만 들으면서 하고 있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간다. 아쉽지만 또 오면 된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근력 운동까지 야무지게하고 내려왔다. 친구도 거진 다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씻고 샤워도구까지 싹 다 정리하니 10시가 되었다. 11시에 체크아웃이라 아침을 먹고 올 셈이었다. 마지막 아침메뉴는 어묵국수. 지난번 배탈이 나서 제대로 못 즐기기도 했고 친구가 가장 맛있었다고 한 곳이라(생각해 보니 유일하게 가게에 에어컨이 있어서 그렇게 말한 건지도ㅎㅎ) 마지막 메뉴로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섯 번째 방문이었는데 처음으로 다른 메뉴를 시켰다. 오면서 옆에 시그니처 커피에서 아이스라테 두 잔을 시켜서 올라왔다.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카드를 어떻게 주면 되냐고 했더니 11시에 메이드가 방문한다고 한다. 시간 맞춰서 메이드가 방문해 줬다. 여기는 콘도지만 반 호텔처럼 운영되고 있어서 이 메이드가 오늘 체크아웃을 하는 여러 방을 청소하는 것 같았다. 1층 로비에서 택시를 잡았다. 캐리어가 2개라 작은 차가 올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콘도에 대기하고 있던 큰 차가 바로 잡혔다. 그동안 오며 가며 “사와디캅-“하고 열심히 인사했던 세큐리티에게 오늘 한국 간다고 아쉬운 작별 인사를 했다. 무표정으로 휴대폰을 하고 있다가도 내 인사에 밝게 미소 지어주던 그는 내년에 다시 오라고 하며 차가 오니 멋지게 우리는 손도 대지 말라며 무거운 캐리어를 차에 옮겨주었다.

치앙마이에서 이별을 고한 나의 운동화와 오리발


지난 토요일 님만해민에 왔을 때 원님만(쇼핑몰)에서 무료로 짐을 보관해 준다기에 미리 문의를 해놨었다. 택시에 내려 그곳을 찾아갔다. 10시까지 보관이 가능하다고 하며 100 밧트짜리 바우처도 줬다. 정말 여행자에게 친절이 넘쳐나는 곳이다. 짐을 맡기고 한결 가벼워진 우리는 (평소보다 가볍지는 않다. 우리는 오늘 배낭을 하나씩 지고 있다.) 바로 네일을 받으러 갔다. 날이 무척이나 더웠는데 처음 보이는 곳은 가격이 생각보다 높았고 전에 갔던 곳은 이유 없이 문을 닫았고 세 번째 간 곳은 내일이나 가능하고… 여기서 우리는 1차로 더위를 살짝 먹어버렸다. 간절하게 다시 검색을 해서 근처 네일숍을 찾았다. 평소였으면 일도 아니었지만 날이 너무 더워서 300미터 직선 코스도 엄청 길어 보이던 참이었다. 깔끔해 보이는 곳이었는데 가격이 생각보다 높았다. 내가 리뷰를 보고 왔는데 리뷰에는 그 가격이 아니었다고 하니 (사실 리뷰에 가격은 안 나와있었다.) 어디론가 길게 통화를 한다. 그러고는 프로모션 가격이라면서 괜찮은 가격을 제시했다. 그리고는 리뷰를 꼭 써달라고 했다. 그건 걱정 말라고 했다. 전체적으로 님만이 올드타운보다 가격대가 있는 듯했고 그만큼 실력도 한 단계 높은 것 같다. (그래도 한국 수준을 기대하면 안된다.) 각질제거도 해 주고 손 발 다해서 4만 7천 원 정도가 나왔다. 반짝이에 컬러 추가까지 했으니 한국이었으면 15만 원도 넘었을 것이다. 네일도 하고 시원한 에어컨 아래서 체력도 좀 회복했다. 네일샵 다음 코스는 소품샵이다. 많이 지나다녔던 곳인데 소품샵인지 몰랐었다. 가보니 유튜브에도 많이 나왔던 소품샵이다. 치앙마이 사람들 감성이 확실히 남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소품들이 다 예쁘다. 액자에 넣을 치앙마이 그림과 우리가 갔던 지역의 엽서를 몇장 샀다. 친구가 키링을 사줘서 둘이 같이 배낭에 걸었다. 다시 원님만으로 돌아왔다. 치앙마이 오기 전부터 한번 와보고 싶던 카페가 있었는데 몇 번 방문했을 때 보이지가 않아서 문을 닫은 줄 알았더니 그냥 내가 못찾았던 것이다. ㅎㅎ 그래프라는 카페다. 커피에 진심인 듯 원두도 다양하고 커피 종류도 다양한 곳이다. 실내에 자리를 찾아갔는데 어둡고 꿉꿉한 냄새가 나길래 야외에서 먹기로 했다. 야외라고 해도 원님만 몰 지붕이 있고 실링펜이 돌아서 적당히 선선했다. 커피 맛은 그냥 쏘쏘. 가격이 비싸(콘도 앞 카페보다 3배였다.)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휴식을 잘 취하고 나왔다. 마사지를 5시로 예약해 놔서 시간이 좀 남았다. 카페를 한 곳 더 들르기로 했다. 스타벅스에 갔는데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근처 차트라뮤에 갔다. 여기도 가까웠지만 (3분 거리) 가는 길이 너무 뜨거웠다. 차트라뮤에 들어와서 시원한 차이티를 한잔씩 시켰지만 통유리로 들어오는 뜨거운 햇살에 또 우리는 흐물흐물해졌다. 아무리 시원한 걸 마셔봐도 약간의 두통이 계속 있었다. 해가 좀 져주길 기다리며 휴대폰도 하고 마지막으로 엽서를 썼다. 조카 둥이들에게 엽서를 쓰는데 둥이들이 정말 너무 보고 싶다. 카페 오는 길에 상진이와 영상통화를 했는데 용과를 구할 수 없어서 말린 두리안이라도 먹겠냐니까 엄청 기대를 했다. (다행히 공항가기 전 선물샵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

마사지 예약한 곳과 10분 정도 거리여서 40분쯤에 나왔다. 오늘 우리의 동선과 스케줄은 완벽했으나 중요한 것은 더위와의 싸움이다. 다음 목적지까지 체력이 바닥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말 중요했다.ㅎㅎ 마사지샵에 도착했다. 조금 이름있는 태국 마사지샵은 여행앱에서 한화로 결제하는 게 더 싸다. 후기대로 깨끗한 곳이었다. 비행 전에 여기서 샤워 후 두 시간 오일 마사지를 받고 갈 참이었다. 오일도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적당히 잠이 잘 올 것 같은 자스민 라이스 향을 택했다. 샤워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서 먼저 샤워를 받고 마사지를 받을 수 있냐고 했더니 샤워실로 안내해 줬다. 샤워를 마치고 베드에 누웠는데도 초반에는 몸에 열이 안 빠지는 것 같았다. 마사지 전에 원하는 마사지 세기를 적어서 냈는데 나답지 않게 스트롱으로 적어냈다. 오일 마사지 이기도 하고 최근에 받은 마사지들이 좀 약했다고 생각되어서 한번 강하게 받아보고 싶었다. 가끔 아프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적당했던 것 같다. 두 시간 동안의 천국경험이었다. 친구와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받다가 마사지사 분들이 잠깐 손을 씻으러 나간 사이에 무슨 생각하면서 받았냐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나는 잠깐 잠도 살짝 들었던 것 같고, 돌아가서 뭐부터 해야 하나 이런 생각들을 했다. 두 시간은 정말 행복했고, 더위에 지친 우리의 체력을 어느 정도 회복시켜 주었다. 이 마사지샵을 선택하고 이 시간에 예약한 게 너무 완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태국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밤 또는 새벽 비행기라 마지막 일정에 샤워를 할 수 있는 오일 마사지를 예약하는 게 좋다.) 마사지를 받고 애프터 티를 마시며 저녁 메뉴를 궁리했다. 다시 땀을 빼고 싶지는 않아서 최대한 적게 걸을 수 있는 원님만에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사지를 끝내고 나오니 해가 졌고 많이 선선해졌다.


우리가 가려고 했던 원님만 안에 태국음식점은 20분의 대기가 있었다. 기다리면 시간이 좀 애매할 것 같아서 맞은편에 식당처럼 보이는 곳을 검색했는데 후기가 괜찮았다. 들어가니 사진보다 훨씬 내부가 넓었고 음식 종류도 다양했다. 바질 볶음밥, 팟타이, 쏨땀 그리고 음료를 두 잔 시켰다. 이런 보물 같은 식당을 몰랐다니 나중에 님만해민에 오게 되면 뭐 먹을지 고민하지 말고 여기로 오면 될 것 같다. 컨디션도 좋아졌겠다 배도 부르겠다. 아직 긴장을 풀긴 이르지만 오늘은 계획한 것보다 더 잘 진행된 느낌이라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둘이 앉아 대학시절 이야기도 하고 이렇게 여기에서 또 많은 추억을 쌓아서 앞을 20년은 우려먹을 수 있겠다며 마지막 만찬을 마무리했다.


바로 길을 건너 짐을 찾고 볼트를 불렀다. 작은 차가 왔지만 다행히 트렁크에 우리 짐을 모두 넣을 수 있었다. 공항으로 가는 길. 친구를 마중 나갈 때 설레는 마음으로 가던 길이 10일 전이었는데 이제 정말 돌아가기 위해 찾는 공항이다. 이렇게 빨리 끝나버린 나의 한 달 살이가 아쉽기도 하지만 또 한국으로 얼른 돌아가고 싶기도 하다. 한국에서 또 열심히 살아본 후에 휴식이 필요하면 다시 찾아야지. 그 보다 더 빠를 수도 있고.

텍스리펀 받을 게 있었는데 절차가 좀 복잡하다는 블로그 글을 봐서 긴장했다. 출입국 심사 전에 한번, 들어가서 한번 두 번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1층 사무실에는 사람이 없어서 안내데스크에 물어봤더니 종을 치면 담당자가 나온단다. 정말 종을 쳤더니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여권과 비행 편 물건을 보여줬더니 서류에 도장을 찍어주고 입국 심사 후 2층 사무실에 서류를 제출하면 현금을 준다. 3,000 밧트가 넘는 금액인데 220 밧트나 되돌려 받았다. 돈 받고 양 주먹을 불끈 쥐며 웃는 나보다 직원분이 더 함박웃음을 지어주셨다.


짐이 무거워서 걱정했는데 23.5kg가 나왔다. 라탄 가방을 그렇게 사고도 오기 전보다 0.7kg는 줄인 셈이다.ㅎㅎ 짐에 텍을 붙이고 다시 우리가 짐을 챙겨 엑스레이를 받는 시스템이었는데 엑스레이 앞에 직원분 한국어가 너무 능숙해서 웃음이 났다. 그 분도 우리의 반응이 꽤나 만족스러워보였다.  

어제 라탄가게에서 우리 보고 더 네고하라며 응원을 불어넣던(?) 모녀도 같은 비행기였다. 친구와 옆자리로 좌석 지정을 했는데 빈자리가 많았다. 우리 앞에 부부가 맨 뒷줄로 옮기길래 양해를 구하고 우리도 두 자리씩 앉아 편하게 왔다. 여기 올 때는 비즈니스를 타서 꿈의 나라로 가는 느낌, 귀국할 때는 현실과 타협하는 느낌으로 일반석을 예매했는데 현실석(?)도 나름 편하게 왔다. 밥을 중간에 줘서 잠을 거의 못 잤지만 그 덕에 영화도 한 편 봤다. ‘Living(2022)’이라는 영화였는데 영국의 한 나이 많은 공무원이 암 선고를 받으면서 그동안 일을 미루고 넘기며 의미 없이 살았던 일들에서 가치를 찾는 내용이다. 굉장히 잔잔하고 자극은 없는 내용이었지만 지금 나에게 굉장히 필요한 스토리였던 것 같기도 하다.    

공항에서 한식 한 끼를 먹었다. 얼마 만에 먹는 한식인데(한식 러버는 아님.) 너무 이른 시간이라 준비되는 메뉴가 적어서 만족스럽지는 못한 식사였다. 한 시간 정도 머물다 공항철도를 탔더니 하필 출근시간에 걸려 김포공항에서 내릴 때 짐을 못 뺄 뻔했다. 다시 생각해도 내가 그 많은 짐들을 가지고 무사히 내린 게 기적 같다. (사실 짐을 못 빼면 그냥 사람 많이 내리는 역에 내려서 다시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도착하니 제주도에서 오신 부모님이 계셨다. 다행히 엄마가 내가 가 있는 동안 두 번 정도 오셔서 화초에 물도 주고 관리를 해놓으셔서 깨끗했다. 천천히 짐정리를 하고 하나 둘 엄마 선물을 내놓았는데 다 마음에 들어 하신다. 반응이 좋아 내 코끼리 바지 두 벌 정도는 더 내어드렸다. 아빠는 프로폴리스 스프레이 하나 사줬는데 좀 더 사 올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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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후 첫 주말. 푸팟퐁 커리를 해먹었다. 태국식으로 계란후라이는 기름을 많이 넣우 테두리를 바삭하게 하는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나의 치앙마이 일기는 초반에 친구 1과의 여행콘셉트 5일을 제외하고 정확히 20편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 덕에 다시 일기 쓰는 습관도 갖게 되었고 한 달 여가 지난 지금 그날의 일과 그때의 감정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도착 후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가게 되면 다시 수많은 악마(?)들과 마주할 것이고 나이가 들어도 적응되지 않는 긴장되는 순간들을 맞이하겠지만 당분간 치앙마이 예방주사로 잘 버텨보려고 한다. 인간은 악마보다는 천사에 가깝다는 것을 느꼈고 나도 보여주기 식이 아닌 내가 행복하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 코쿤카- 치앙마이‘

소품샵에서 산 그림과 엽서들로 꾸민 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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