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연말여행 10

카페로스터리 공항 라운지 상하이 훠궈

by 장하영

아침부터 무거운 소식이 있었다. 짐 정리를 다 끝내고 카페를 가던 길에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로 전화까지 했냐고 하니 뉴스를 보라고 한다. 무안공항에서 일어난 사고 때문이었다. 공항에서 팀장님의 전화도 받았다. 회사마다 비상연락망을 돌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방콕도, 무안공항행도 아니었지만 오늘 하루 종일 더해지는 소식에 기분이 이상했다.

잠시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공항으로 가기 전 마지막 커피 한 잔을 하기로 했다. 로스터리라는 카페인데, 수상을 한 바리스타가 있는 카페라 라떼가 아주 맛있는 곳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따뜻한 라떼를 한 잔 시켜 야외로 자리를 잡았다. 오픈 시간에 맞춰 온 것인데 시간이 지나니 안에도 바깥좌석도 가득 찼다. 간혹 보이는 한국인들은 아무래도 사고 소식 때문인지 아니면 내 기분 탓인지 얼굴이 어두워 보였다. 밀린 글 한 편을 쓰고 자리를 나섰다. 딱히 할 것도 없고, 공항에 일찍 가서 라운지에서 여유 있게 쉬려던 참이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마지막으로 숙소를 점검한 후 나왔다. 택시를 기다리는데 택시가 옆에 콘도로 가 버리는 바람에 직접 가서 기사를 데려왔다. 처음에 도착할 때도 그쪽으로 데려다주는 것 같더니 지도 입력이 잘못된 게 아닌가 싶었다. 후기에도 그런 글을 본 것 같다. 택시 앱에 맞은편 라면집 주소를 넣고 다닐 걸 그랬다. 여기서 지내는 동안 매일 밝은 표정으로 인사해 주던 청년에게 이별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하필 오늘이 비번인가 보다.

공항에 도착해도 너무 일찍 도착했다. 네 시간 전 공항 도착은 지금까지 내 역사에 없었다. 항공사 카운터도 열리지 않았다. 인포메이션에 오픈 시간을 문의하니 한 30분 정도가 남아서 의자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처음 와서 돈을 뽑고, 핫도그를 사 먹으며 택시를 불렀던 그곳이다. 그때도 ‘떠날 때 다시 공항에 오면 이 순간이 떠올려지겠지.’ 싶었는데 타임머신을 타고 순간 이동을 한 것 같다. 적당히 길고 적당히 빨리 지나간 시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속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는 새벽 비행기라 라운지를 이용할 생각을 못했는데 낮시간이라 라운지가 운영하고 있었다. 음식이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편히 쉬기 좋았다. 짐 정리를 좀 하고 상하이에 가면 해야 할 일들을 정리했다. 나는 계획형 인간이지만 여행에서는 직전에 하는 편이다. 요즘은 휴대폰 하나면 그 자리에서 다 해결할 수 있으니 비행기와 숙소만 미리 하면 되는 거지 뭐. 지난 졸음운전 기사 같은 상황을 밟지 않기 위해 픽업 서비스는 미리 신청해 놓았다.


치앙마이로 오는 비행기에서는 창가를 보며 눈물을 훔치던 엄마의 마음이 많이 편해졌을까. 엄마에게 이번 연말 여행은 어떤 의미였을까.

어제 급하게 다운받은 ‘오징어게임 2’를 보면서 오느라 나의 이런 고민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시간은 더 짧아서 생각보다 금방 도착한 느낌이었다. 지난번 공항에서 입국카드 두 장을 챙겨 와서 오늘 쓸 입국 카드를 미리 작성해 놓았다. 푸동공항은 더 복잡해서 걱정했는데 덕분에 수월했다. 픽업 서비스 기사를 찾아 호텔에도 편하게 올 수 있었다. 새로 오픈한 호텔이었는데 크고 깔끔했다. 수영장은 있고 조식은 신청 안 한 줄 알았는데, 수영장이 없고 조식은 신청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지만 ㅎㅎ


대충 짐을 정리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시켜 먹을까 하다가 근처에 훠궈집이 있어서 나왔다. 살짝 쌀쌀해서 같은 건물 kfc를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힘을 내서 더 걸었다. 동네가 조용한 곳이어서 가는 길이 조금 으슥했는데 이내 다음 골목에 찾아두었던 훠궈집이 나왔다. 중국 앱에 쿠폰 같은 게 있길래 이 걸 쓸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가능하다고 했다. 2인 세트였는데 고기도 충분하고 가성비가 좋았다. 엄마는 훠궈가 처음이었는데 워낙 이국적인 음식도 잘 먹어서 다행이었다. 엄마가 갑자기 맥주를 마시고 싶다고 해서 한 병 시켜주었다. 엄마가 이런 데서 자발적으로 술을 시키는 것도 처음이라 입맛에 잘 맞는가 싶었다.


너무나 만족스러운 저녁을 먹으며, 진짜 끝나버린 이번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들 부모님을 모시고 긴 여행을 어떻게 하냐고 하는데, 우리 엄마는 내가 하자는 데로 다 따라오는 편이다. 오히려 내가 하루종일 엄마에게 잔소리를 한다. 이번 여행에서 내내 엄마에게 ‘엄마도 운동 외에 다른 취미도 만들어야 한다.’ ‘영어 공부 좀 해라.’ ‘헤어스타일 좀 바꿔라.’를 집중적으로 잔소리했다. 엄마가 내 잔소리에 어떻게 반응했을지는 이번 설에 가서 확인할 예정이다.

여행 중 어느 날이었던가 엄마가 ’너랑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어.‘라는 말과 ’네가 어릴 때 학교 앞에서 널 기다리던 기억이 참 좋았어.‘ 라고 했었다. 어느 순간 내가 너무 자립적으로 자라나면서 엄마에게 기대는 순간이 적어지고, 오히려 엄마를 챙기는 순간이 더 많아지면서 엄마는 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시간이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엄마를 챙긴다고 이것저것 사다 주지만 또 그만큼 엄마도 내 기준에 맞춰줘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그래서 나는 자식을 낳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좀 더 경제력이 있거나, 목소리가 커서 시댁으로부터 덜 상처받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엄마가 이렇게 착하고 순해서 내가 엄마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살아온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그래서 내가 경제력이 좀 생기면서 신경 쓰면 엄마를 더 챙길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는데 다정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엄마를 챙기느라 나를 위한 여행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나에게도 큰 깨달음이 있는 여행이었던 것 같다. 역시 여행은 참 좋은 거다. 참 좋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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