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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고 향기롭게 Jul 13. 2022

엄마의 감자전

친정엄마는 커다란 대야에 감자를 한가득 담으신다. 아마도 오늘 점심은 감자전일거 같은 예감이다. 저렇게 많은 감자를 다라에 담아 씻기를 반복하시다 감자 깎는걸 도와달라시며 어느순간 나를 부르신다.

엄마랑 마주앉아 가득 담아있던 감자를 깍아내린다. 순식간에 껍질이 벗겨진 감자는 다른 대야에 담겨져 몇번에 걸쳐 헹궈진다.

속살을 하얗게 드러낸 감자는 곧이어 나무로 된 수제 강판에 갈리기 시작한다. 강판은 아버지께서 직접 만드신걸로 일일이 못으로 구멍을 내셨다. 얇은 철판에 구멍을 내고 뒤집어 직사각형의 나무위에 또 못질을 하여 고정한다. 순식간에 근사한 강판이 완성되었다.  새로 만든 강판은 쓱쓱 몇번에 커다란 감자가 순식간에 갈린다. 성능이 좋다는 말이다. 그만큼 조심도 해야한다. 잠깐 삐끗하는 순간 손도 갈린다.

엄마께선 강판에 감자만 간게 아니라 손도 갈아 넣어 감자전이 더 맛있는거라고 말씀하셨다. 우스개 소리로 말씀하신 거지만 정말 그래서 그런걸까? 엄마의 감자전은 언제나 그립다.


한다라 다 갈때쯤 기다리던 난 목이 길어져 있다. 언제쯤 감자전을 먹을수 있을지 아직 다음 단계가 남은걸 알기에 엄마의 뒷모습에서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갈린 감자는 이젠 면포에 적당량을 담아 물기를 빼신다. 물기가 빠진 갈린 감자는 또다른 그릇에 담겨지고 이 작업을 몇번을 거쳐 물기뺀 갈린감자가 부치기 직전의 단계까지 갔다. 이른아침 텃밭에서 뜯어온 부추와 풋고추가 한쪽에 다듬어져 있다. 송송송 부추도 썰고 고추도 썰어 소금을 넣은 감자전 반죽이 완성이다.


한켠에 있는 곤로는 후라이팬을 달군다. 감자 한개를 깍아 반으로 자른 감자에 손잡이를 만든다. 이윽고 적당량의 식용유를 묻혀 후라이팬에 골고루 묻힌다. 감자전 반죽을 한국자  붓는다. 숟가락으로 골고루 얇게 펴고 뚜껑을 덮어 곤로의 불조절을 한다. 감자전이 익어가는 시간은 더욱 더디게 가는듯하다. 오전내내 엄마 옆에서 감자전을 기다린 나에겐 이 순간이 제일 길게 느껴졌다. 뚜껑을 열고 뒤집개로 뒤집어 다시 뚜껑을 덮는다. 아...마주 한쪽을 익혀야 하기에 당연한 과정인것을 먹고싶은 마음이 더해져 엄마에게 언제 먹을수 있냐고 재촉한다.


뚜껑에서 김이 모락모락 날때쯤 뚜껑을 열고 담을 접시를 가까이 가져간다. 접시에 담겨진 순간 젓가락과 간장을 든 쟁반에 감자전에 담겨지고 아빠앞에 둘러 앉는다. 엄마는 다음 감자전을 부치기 위해 기름을 묻힌 후라이팬에 한국자 담으신다. 아빠가 먼저 한입 드시면 그 다음은 우리차례다. 젓가락질이 바쁘다. 부침개는 젓가락으로 찢어 먹는 맛이 이런것일지 모르겠다. 서투른 젓가락질에 몇번 먹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첫번째 감자전이 사라졌지만 이윽고 두번째 감자전에 다른 접시에 옮겨져 온다. 엄마 입에도 한입 넣어 드리고, 감자전은 계속 부쳐진다.


먹는 속도는 배부름과 반비례 했다. 처음 속도처럼 비워내지 못하는 순간 감자전이 쌓이기 시작한다. 배부르다며 하나둘씩 쟁반에서 멀어진다. 아빠와 내 위로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 껴서 먹노라면 음식을 씹기보단 삼키기 바빴으니 배가 어느 정도 부르고 났을때야 엄마께서 뒤늦은 감자전을 드셨다. 감자전은 식기전에 먹어야 맛있다시며 더먹으라고 권하시지만 이미 나의 배는 용량을 초과한 상태.


한다라 깍아낸 감자덕에 감자전이 제법 쌓여있다. 시간이 지나면 감자전의 색도 거뭇하게 변한다. 깍아둔 감자가 갈변하듯 식어진 감자전도 색이 거믓하게 변하게 되는 상황은 저녁 밥상앞에서 한번 더 확인 되었다. 식은 감자전은 뻣뻣하기에 식용유를 두르고 다시 데워 먹는 맛 또한 근사하다.


감자 한다라가 깍여 감자전 되기까지 하루가 다 걸린 기분이다. 엄마의 감자전은 그렇게 한끼가 아닌 두끼를 해결해주었다. 마음먹고 준비하여 먹여주시던 감자전.

주말 친구에게서 온 감자박스에 커다란 감자 4개를 잡았다. 강판에 쓱쓱 갈아 물기는 적당히 있게 두고(물기가 너무 없어도 뻣뻣하고, 물기가 많으면 부칠때 튄다.) 소금만 넣고 후다닥 감자전을 부친다. 엄마처럼 부추랑 고추도 넣지 못했지만 4개를 갈으니 4개의 감자전에 각자 한장씩 먹을 것으로...


엄마의 감자전은 언제나 추억이다. 여름 휴가에 친정에 가면 엄마께 감자전 해달라고 졸라야겠다. 조르기 전에 엄마께선 또 감자를 다라에 먼저 담으실지 모르시지만, 감자전으로 맞이하는 여름이 언제나 내겐 고마움이다.

"엄마~여름휴가에 감자전 먹으러 갈께요~ 제가 많이 도와 드릴께요~"


내가 먹은것은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다는것을 느끼며...매년 감자전은 나를 그시절로 되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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