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줄기에 시선을 쫓다 중간쯤 노오란 호박꽃에서 시선을 멈췄다. 호박꽃 아래 반질반질 매끈한 새끼호박이 보인다. 장맛비가 주춤한 사이 땅속의 영양분을 쭈욱 빨아들여 커보겠다는 의지가 강해보이는 씩씩한 새끼호박이였다.
할머닌 긴 지게 작대기로 호박 넝쿨 사이사이를 뒤적이신다. 할머니와 멀지 않은 거리에서 나또한 감당할만한 작대기로 똑같이 하고 있다. 할머니와 난 넓적한 호박잎 아래 꼭꼭 숨어 숨바꼭질하는 호박을 찾고 있다. 작대기는 마치 보물 찾기라도 하는거마냥 호박밭을 휘젓고 대충 대충의 위치를 파악한다.
엊그제 봐뒀던 호박은 이틀만에 맛있는 크기로 자라났다. 이것도 타이밍이 필요하다. 너무커도 너무작아도 안되는 적당한 크기에 따줘야 한다는 말이다. 쬐그마하던 이틀전 호박이 시장에 내다팔기 좋은 크기로 반질반질 윤이 나고 있으니 이순간 수확하는 기분이 최고다.
동시에 미쳐 못보고 놓쳐버린 호박은 그 자리에서 더 키워본다. 애호박에서 늙은호박으로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다. 잘 살펴본다고해도 놓치는건 놓치는대로 흘려보낸다.
어느덧 호박은 고무대야 가득 담겨졌다. 서로 부딪히면 반질반질 하던 표면에 금방 흠집이 생겨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흠집날세라 조심조심 다루시는 할머니 손끝에서 덩달아 긴장된다.
이내 옷도 갈아 입으시고 시장가실 준비를 마치신 할머닌 또바리를 머리에 얹으시고 나를 부르신다. 호박 대야를 머리에 얹게 도와달라신다. 할머니 머리위로 호박 한다라 올라간다. 여름 뙤얕볕은 야속할만큼 더욱 강렬히 내리쬐고 있다. 땀을 식힐 세도 없이 바삐 걸음하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나도 모르게 바라보고 있다. 덕분에 호박은 더욱 반질반질 빛나고 있으니 오늘 장에가거든 좋은값에 잘받아왔으면 하는 마음 보태어 본다.
초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 한켠.
철담에 넝쿨을 감으며 호박잎들은 여름을 즐기는듯 푸릇푸릇함이다. 삐죽이 내민 새끼호박에 잠시 할머니와 보물같은 호박을 찾던 그때 그모습이 무더위 속에 그대로 담겨져 있다. 호박은 어떤날은 흡족한 가격을 받기도 했지만 시골집마다 쏟아지는 호박들이 많을때면 거저줘도 안가져갈 흥정이였다.
삼십년이 훌쩍 지난들 잊을수없는 여름 풍경들이 여전히 그립다. 오늘 만난 호박은 무럭무럭 자라겠지만 할머니와의 호박은 좀처럼 늙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