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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고 향기롭게 Jul 22. 2022

과수원집

얕트막한 언덕위로 슬라브 지붕집이 있다. 그집 뒤론 사과나무가 있고 집앞 쪽으로는 포도나무가 있다. 그집 입구 오른쪽엔 커다란 복숭아 나무가 우뚝 서있다.


나는 그집을 과수원집이라 불렀다. 띄엄띄엄 예늘곱 집이 있는 우리마을에 유일한 과일나무 많은집. 내가 부러워하기도 한 집. 과수원집


등교길이든 시내를 나가야 하는길이면 이 과수원집 길가로 지나야 한다. 집옆이 길가라 오고가며 과수나무들을 자연스레 보며 지나친다.


집앞 장승처럼 떡하니 제법 굵은 줄기로 자신의 나이듬을 짐작케하는 복숭아 나무는 봄이면 어여쁜 꽃을 피운다. 복사꽃은 연분홍빛으로 어여쁘기 그지없다. 꽃이 질때쯤 열매가 맺히고 무더위가 짙어질때면 수확을 한다.


그러던 어느날.

하교길 수확을 앞둔 복숭아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멈춘다. 토실토실 영근 복숭아가 내 주먹보다 훨씬 크다. 뽀얀 털을 뽐내며 무르익고 있음이다. '저 복숭아 하나 먹어 봤으면...'

어린맘에 학교를 오가며 눈독들인 복숭아에 미련이 한가득이다.


과수원집 주인할머께 잘보이고 싶어 오가다 만나면 크게 인사드렸다. 혹시나 인사잘해서 이쁘다시며 복숭아 하나 안주실까? 하는 어린맘에 말이다.


이 방법이 통할리 없는걸 느낀 어느날.

길가 가까이 뻗은 가지위로 영근 복숭아에 손을 뻗어 보았다. 웬지 까치발까지 동원해서 최선을 다해 늘리다보면 닿을수 있을거 같았다. 낑낑대며 은밀하고 신속하게 복숭아를 따려던 순간, 과수원집 할머니와 눈이 딱 맞고 말았다. 서리하려다 들키고 만것이다.


평소 좋은 이미지로 과수원집 할머니께 잘 쌓아놓은 신뢰가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창피함에 도망칠 힘도 없었다.


그순간 과수원집 할머니께선 이내 내곁으로 오셔서는 내가 따려다 못딴 복숭아를 똑!따서 내손에 건네주셨다. 고함을 질러 쫓을만도 하신데 이렇게 아무말없이 복숭아를 건네주시던 과수원집 할머니.

그 뒤론 복숭아를 봐도 내것이 아닌것은 탐하지 않을 근력이 생겼다.  말로아닌 행동으로 내게 조용하고  나즈막히 교훈을 주신것이다.


그 일이 있고 얼마후 나의 할머니와 과수원집 할머니께서 길가다 우연히 만나셨다. 지난 복숭아 서리 문제로 혼날까 조마조마해 내맘은 콩닥콩딱 뛰었다. 과수원집 할머니께 꾸벅 인사를 드리고 내 시선은 땅바닥만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과수원집 할머니께선 나의 할머니께 반갑게 인사를 건네시며 한마디 하신다.

"손녀딸이 아주 인사를 잘해요~인사 잘해서 이뻐 주것어요~"

과수원집 할머니의 의외의 칭찬에 나의 할머니께선 흐믓해 하셨다. 복숭아 서리건은 더 문제 삼지 않으셨다.


내 행동에 스스로 잘잘못을 일깨워 가르침을 주신 과수원집 할머니 그리고 털이 복실복실 털복숭아.


오늘 농사를 짓는 시댁에서 털이 복실복실한 복숭아 한박스를 보내오셨다.

시부모님께서도 농사일이 점점 힘에 부치시는 연세라 한해한해 마음과 몸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시며 올해 복숭아는 종이도 씌우지 못해 벌레도 많이 먹었다 하신다. 그래도 그중 제일 잘난 복숭아로 고르고 골라 보내신 마음 굳이 말씀 안하셔도 느껴진다.


냉장고 과일칸 한가득 자리시켜 놓으니 어느새 어릴때 서리하다 들킨 복숭아가 문득 떠올랐다. 털이 복실복실한 딱딱하면서도 달달했던 그맛은 그대로지만 복숭아에 담긴 과수원집 할머니와의 추억은 더욱 생생히 기억됨이다.  


"과수원집 할머니~ 그땐 죄송하고 고마웠습니다. 제가 많이 먹고싶어 그랬는데 제맘 이해해주셔서 말이죠. 그때 그 복숭아 정말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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