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평소보다 이른느낌이다. 분주함이 느껴지는 아침준비에 눈을 비비고 부엌 앞에서 잠을 깬다. '맞다! 오늘은 김밥싸는 날이지'
3살 터울 작은오빠가 소풍을 간다. 내 도시락도 자연스레 김밥이다. 신난다.
계란지단, 단무지, 햄, 분홍소시지, 시금치, 맛살, 당근이 들어가는 일곱가지 색깔 김밥재료가 차례로 쟁반에 놓여진다. 다소 손이 느리신편인 엄마는 스스로도 빨리 준비가 안되신다며 멋쩍어 하신다.
일단 김밥 재료가 준비되자마자 바닥에 신문지 깔고 가운데 재료를 두고 나무도마 하나씩 잡고 엄마랑 마주 앉았다. 나무도마 위에 푸른 대나무 김발을 깔고 그위로 김을 올린다. 김은 요리조리 보다 맨질맨질한 부분이 바닥에 깔리게 한다. 금방 한 흰쌀밥에 소금과 참깨에 들기름 듬뿍 부어 간을 맞추신다.
엄마의 손끝을 따라 김밥을 따라 만다. 김 위에 조미된 밥을 얇게 얇게 이불 펴듯이 깔고 나란히 준비된 재료를 차례대로 올린다. 이때 7가지가 제대로 들어간지 엄마께선 세어보신다. 나도 덩달아 빠트린게 없는지 세어보고 있다. 빠진게 없는걸 확인한 김밥은 두손으로 돌돌말고 대나무 김발의 힘을 빌어 맛사지하듯 힘을 주며 조물조물한다.
도르르르 나무도마 위에 금방 싼 김밥을 김발에서 분리시켰다. 이내 내가 만든 김밥을 엄마께선 당신의 김발위에 올려 돌돌 말아 다시 한번 더 조물조물 하셨다. 아마도 내공이 턱없이 부족한 내가 만든 김밥이 썰때 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러신걸 말 안해도 다안다.
들기름 냄새 가득한 김밥은 다른 쟁반위에 차곡차곡 쌓여졌다. 쌓여진 김밥의 일부는 내가 만든것도 있다. 김밥 마는일이 막바지에 이르면 썰기 전에 꼭 하셔야하는 일이 있다. 바로 식칼을 쇳돌에 갈아야 한다. 가끔은 칼 가는일은 아버지가 해주시곤 했는데 그날은 이른아침 논에 물 보러나간 아버지가 늦게까지 일하시는지 돌아오시지 않으셨다. 마지막 김밥을 내게 맡기시곤 이내 칼 갈러 마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신다.
김밥말면 20줄은 기본이다. 간혹 옆구리 터져 도시락에 들어갈수 없이 흩트러진 김밥과 썰다 남은 앞뒤 짜투리는 아침 대용으로 먹는다.
은색의 사각 알리미늄 일회용 도시락 안으로 예쁘게 썰린 김밥들이 자리잡는다. 이것도 요령이 필요하듯 가장자리 애매하게 남는 부분은 김밥을 세워 조금이라도 더 넣어 배부르게 먹었음 하는 엄마의 마음이 보태어 자리잡는다. 은색 알루미늄 덮개로 도시락 뚜껑을 덮으면 소풍김밥 완료다.
그리고 나랑 두살 아래 남동생 도시락도 김밥으로 채워진다. 룰루랄라 빨리 학교에서 맞이하는 점심을 먹고싶다. 점심시간 김밥을 싸오는 친구들이 간혹 있으면 그 친구의 형제자매도 소풍간걸로 서로 눈인사하며 공감한다.
사십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내게 초,중,고 학창시절 내내 김밥은 들기름이 함께했다. 참기름보다 들기름이 익숙한 환경속에 절편이나 송편에도 들기름을 발라 들러붙지 않게 먹었었다.
올해 여름 휴가.
강원도 강릉이 고향인 난 팔순의 홀로 계신 친정엄마와 휴가를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출발하려는 순간.
까만 봉지안에 신문지로 돌돌 말은 들기름병 한병을 내미시는 친정엄마. 너네 휴가오기전 방앗간 가서 짜놨다시며 친정엄마의 들기름이 내손에 들려있다.
아이들 배고프다할 오후. 급작스런 김밥을 말고있다.
냉장고 안에 있는것으로만 구색을 맞춰 7가지에도 못미치는 김밥이지만 들기름을 넣고 나니 친정엄마의 향기가 가득 느껴진다. 들기름의 향기로 온집안을 채우고 나니 엄마께 잘먹고 있다고 전화 한통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