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라이프맵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라윤 Jan 15. 2022

"하시는 일을 좋아하시나요?"명치 때리는 질문을 받았다

젊은 안경사 친구와 나

5년 전 라식을 해서 시력은 좋은데 스크린 앞에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눈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싶어 진다. 눈에 좋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최소한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가급적 쓰고 일하려고 한다. 그렇게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안경을 새로 하는데 지난번 안경은 무겁고 불편해서 잘 안 쓰게 되니 이번에는 정말 편하고 오래 껴도 피곤하지 않을 만한 안경을 하고 싶었다. 고심 끝에 안경점을 골라서 멀리 카통까지 가게 되었다. 안경을 맞추는데 거의 한 시간이 다 걸릴 정도로 꼼꼼하게 봐주는 과정에서 젊어 보이는 안경사가 나에게 물었다. 

"무슨 일 하세요?"

싱가포르에서는 참 신박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출장에서 호텔 도어맨이나 주차 도와주시는 분들께 하루 이틀 인사를 하면 매번 받는 질문인데 싱가포르에서는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테크 쪽 기업에서 일한다고 답변을 했다. 그랬더니

"하시는 일을 좋아하시나요?" 

라는 명치 때리는 질문을 받았다. 이런 질문을 여기서 받다니... 내 머릿속은 두 가지 답변이 오가고 있었다. 회사에서 배운 구글식 답변을 해주어야 하나 싱가포르식 답변을 해주어야 하나 잠시 멈칫했다. 생각해보니 이 젊고 유능한 친구가 안경사로 앞으로 평생 일하는 것에 회의감이 들어 나는 어떤가 하는 생각에 묻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 어렵게 공부해서 자격증을 따고 치열한 경쟁 속에 안경사, 전문가로 안경점에 입사를 했지만 그렇게 달려왔던 길의 목적지에 다다르면 또 그다음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 입사를 꿈꾸며 달려왔고 결국 입사를 해서 억대 연봉을 받아서 그러면 내가 회사원으로 계속 이렇게 쭉 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제일 어려운 케이스는 좋은 회사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안경사라는 자격증 따서 들어가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어렵게 힘들게 준비해서 결국 원하는 대로 일하기 시작하면 발 빼기 어려운 것이다. 손에 쥔 것을 놓아야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있는데 움켜쥐고 앉아서는 다른 것에 어떻게 손을 뻗겠는가. 나의 딜레마 이기도 하다.


거기가 카통 쇼핑몰이 아니고 내가 회사에서 이 질문을 받았다면 나에게는 교과서적인 답변이 항시 준비되어있다. 가장 안전한 답변, 가장 맞는 대답을 알고 그 대답도 어떻게 더 탁월하게 멋들어지게 할까로 방향을 바로 틀어서 답변을 했을 것이다. 이제는 그렇게 준비된 답변이 진짜 내가 생각하는 답변인지 만들어진 나인 지조차 헷갈린다. 그런데 여기는 안경점.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그녀는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일을 하고 본인의 직업에 어느 정도 만족하면서 사는지 궁금했을 것 같다.


그녀에게는 길게는 설명하지 못한 나의 답변을 여기에 적어보고자 한다.


첫째, 일을 좋아한다는 것과 일을 즐긴다는 것은 다르다.

일에는 단순히 일만 있지 않다. 그 말은 일이라는 것을 잘게 나누어 보면 우선 회사에 출근하는 것도 일의 일부분이고 미팅에 '제시간에' 들어가는 것, 미팅에서 나의 contribution, 상사와의 관계, 팀원과의 협력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일을 좋아해본인의 업무를 즐긴다와 동일시하는데 회사원에게 일이란 그냥 본인에게 주어진 일이 전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업무를 좋아하는 것 이외의 많은 요소들이 사람들을 이직하게 하고 퇴직하게 하는 것이다.


고로, 이 모든 과정을 완벽히 다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 같은 경우는 아침에 출근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피곤하다. 그래서 그 과정의 무게를 덜고자 택시로 출근하다. 대신에 회사에서 5분 거리에 살고 있다. 그렇게 돈과 시간은 최소화하면서 내 몸이 편한 길을 택했다. 그렇게 되면 내 일에 대한 만족도가 "일 자체"에 들어가는 무게와 비중이 높아지면서 직업만족도가 올라가는 것이다. 그냥 주어지는 것은 없다. 전반적인 나의 일을 좋아할 수 있도록 내가 만들어야 한다. 


둘째, 일을 좋아한다는 것은 일이 힘들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는 내가 이렇게 고되게 일을 해서 이것이 나의 미래에 의미 있는 실력, 돈으로 돌아오느냐도 포함을 한다. 우리는 기꺼이 오늘을 희생하여 내일을 보장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만 그것이 보이지 않으면 오늘의 피로함은 10배로 느껴지는 법이다. 이것 또한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그 길은 나를 제일 잘 아는 내가 세우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만의 이유가 만들어지면 일이 점점 더 의미 있어지고 즐거워진다. 이 과정은 미래를 누구에게 보장해달라라고 떼쓰는 것이 아닌 내가 내 미래를 보장시켜주는 그 과정이다. 이렇게 되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방향성이 생긴다. 


일은 힘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힘들지 않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힘들이지 않고 실력이 생기지 않는다. 5년 전 이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첫 해에는 친구들조차 만나지 않고 꿈속에서 일하던 시기가 있다. 힘은 들었지만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때처럼 미친 들이 일에 몰입했던 시기가 다시 돌아오도록 계속 매니저와 조율 중이다.


셋째, 일을 좋아한다는 것은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온다.

회사에서는 친구를 사귀지 말라는 말이 있다. 사회초년생이라면 어려운 주문이지만 지키면 좋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회사의 동료가 친구가 되면 그 보다 든든할 수가 없다. 동료를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 친구로 인식해야 내가 일도 즐겁고 함께 일함으로서 더 큰 성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다만, 직장에서의 친구는 조금 다른 의미의 친구이다. 프로페셔널 친구라고나 할까? 서로 위로와 의지가 되면서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친구이다. 그 의미가 무슨 뜻인지 안다면 이제 당신은 직장에서도 동료 이상의 친구를 만들 준비가 되어있다.


경력이 쌓이고 나이가 들수록 더 외로워진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점점 뭐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가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친구는 나를 조금 더 느슨하게 여유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성공적인 직장생활, 일을 좋아하려면 사람이 중요하고 동료가 일을 같이하는 친구가 될 때 나의 일은 저절로 행복해진다.


끝으로 아마 회사에서 "Do you enjoy your work?"라고 회사에서 질문을 받는다면 나의 공식 대답은 다음과 같을 것 같다.

"Of course I do. Especailly the part that the contribution we make into the SME's ecosystemis something that I wouldnt be able to if I am not in this position. That means a lot to me and the engine of my passion. It is definitely not a easy job but if it is easy, I would not be enjoying it."


그 안경사 친구에게는 사실 이렇게 간단하게 답변했다.

"It is challenging. Hard to keep up with all the high-tech developements, high expectaiond and demand from the market. But I am learning a lot in that process. That's important."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이 쉽다면 당장 그만둬라. 일은 어려워야 한다. 이 어려움 속에 내가 배우고 성장한다면 반드시 자리를 지켜내라. 그러나 일이 만만하고 회사에서 시간이 가지 않는다면 그때가 일을 그만둘 때다. 일을 좋아한다는 건 그 어려움 속에서도 자리를 지켜내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망의 회사 업무 복귀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