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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라윤 Jan 11. 2022

대망의 회사 업무 복귀일

계획 쟁이의 무계획 3주 휴가

15년 일하면서 한 번도 이렇게 길게 휴가를 내 본 적이 없다. 원래 계획은 한국에 가는 것이었고 근 2년 만에 가게 되는 거라 호기롭게 3주를 계획했다. 그러나 코비드 변이로 인한 예상치 못하는 케이스 증가로 결국 한국행을 취소하고 집콕 휴가 3주를 보냈다. 싱가포르에 사는 이상 휴가라는 이름이 붙으면 못해도 옆 동네 발리, 말레이시아라도 가는 것인데 이조차 이제는 선택사항에 없으니 오히려 귀차니즈머로서 나는 이번에는 집콕을 하기로 했다. 다만, 3주 동안 한국에서 무엇을 할지 큰 계획을 다 세웠다가 무산된 터라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 조금 걱정이었다. 보통 같으면 온라인 수업을 했을 텐데 미리 계획하지 않아서 진행할 수 없었고 사랑이가 휴가 첫날부터 아파버려서 동물병원 가고 하루 종일 간호하고 놀아주다 보니 육아 휴가가 되었다.


내 인생에 계획조차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보낸 3주라는 긴 시간이 있었을까? 이번 아니면 못해보는 경험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간호하며 일주일이 지나버리니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냥 시간 가는 대로 두었다. 그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대망의 회사 업무 복귀일이 돌아왔다. 영상으로 하는 미팅부터 적응이 안 되더라. 사람들을 만나 반가워서 계속 웃음이 나는 것은 좋은데 에너지가 넘쳐서 자꾸 말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 문제였다. 휴가 전에는 할 말만 하고 필요한 말만 하고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카리스마틱한 말을 하려고 머리를 엄청 굴리면서 회의를 했는데 어제는 그냥 뭐라도 계속 말하고 싶었다. 이런 내가 웃기기도 했다. 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회사에서 좋아하는 인재상이 있다. 


첫째, 적극적인 사람. 적극적임은 진심으로 내가 그 분야에 호기심, 관심이 있음을 반증하기 때문에 일을 진정 즐긴다는 의미도 된다. 그래서 적극적인 것은 여러모로 회사에서 반기는 인재상이다. 일을 열심히 하면서 지치지 않기 때문이다. 근 6년 전 내가 면접을 보면서 머릿속은 "이 사람이 날 좋아하게 만들어야지!"였다. 능력, 경험 등의 표면적인 것은 이미 서류에서 통과한 것이고 그다음은 정서적인 부분에서 나랑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합격이 되는 것 같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감정의 고리를 만드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있다. 나도 적당히 프로페셔널하고 적당히 좋고 하는 사람과 같이 같이 일하고 싶다.


충분히 쉬고 나니 내가 더욱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 있더라. 예전에는 적당히 적극적이었는데 이제는 뭐 그냥 다 흥미롭고 다 하고 싶어졌다. 


둘째,  즐거운 사람. 긍정의 에너지는 전파력이 있는 것 같다. 부정의 에너지도 그렇다. 내가 웃고 있으면 그리고 즐겁게 임하면 옆에 있는 사람도 덩달아 미소 한번 짓게 되기 마련이다. 매니저로서 그 보다 좋은 인재가 어디 있겠는가? 즐거운 사람은 그 에너지를 전파하고 전체 팀이 즐거워진다. 이런 사람을 하나하나 모으다 보면 좋은 팀이 된다. 긍정적인 사람 그래서 즐거운 사람이 좋다. 


충분히 쉬고 나니 뭘 해도 즐겁더라. 


셋째, 질문이 많은 사람. 휴가 이후 첫 미팅에서 Arthur가 여러 가지를 설명해주었는데 내가 질문이 참 많았다. 시간이 짧아서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신기했다. 같은 비슷한 미팅을 휴가 전에 했을 때는 질문이 하나도 없었는데 왜 갑자기 질문이 많아진 건지... 머릿속이 리셋되면서 모든 것을 조금 새롭게 보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일이 많고 일에 치이면 질문이라는 행위를 뇌가 막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미 지쳤기 때문에 기계를 추가로 가동하기에 전력이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제 질문이 갑자기 많아진 나를 보며 휴가가 내 두뇌를 재조작 re-wired 한 것인가 싶었다. 질문들이 다 필요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뭔가 이걸 왜 하는지 확실히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는 그것들이 질문으로 구체화되었다. 


충분히 쉬고 나니 필요한 질문들이 생겼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이 느낌을 잃지 말자는 것이다. 지금은 내가 일을 좀 과하게 하거나 한 프로젝트에 시간을 너무 쓰고 앉아 있으면 스스로에게 브레이크를 걸 줄 안다. 그런데 일을 계속하면 그런 시야들이 흐려질 것이다. 휴가에서 갓 돌아온 영혼과 뇌를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결국 지치면 또 휴가를 써야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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