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때 이것만은 확인한다 :: 생활 패턴
혼자 살아온지도 꽤 됐을 무렵, 새벽에 일어나서 빙둥빙둥 보내는 시간이 아까웠다. 영어 공부라도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대학원 파견을 가려면 영어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급작스런 생각에 새벽반이 있는 어학원을 등록하게 됐다. OO어학원 7시 타임이었다.
영어학원은 참 오랜만이다.
직장인이 되어 가본 새벽반 영어학원은 당연히 어른들만 있었고, 연령대도 다양했다. 대부분은 젊었다. 그와중에 은퇴후 영어공부를 하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도 있었다. 50분의 영어 수업 중 20분 정도는 원어민 선생님의 수업이 시작된다. 나머지 30분 가량은 수강생들끼리 영어회화를 한다. 원어민선생님은 그날의 짝을 정해줬다. 다양한 대화 상대를 만들어 주기 위해 매일 바꿔 주기도 했다.
교재에는 날마다 추천하는 영어회화 주제가 있었다.
회화책에 나와 있는 질문은 "주말에 청소 하는 것을 좋아하나요?" , "평소 요리를 좋아하나요? 누구에게 대접하면 좋을지 말해보세요."와 같은 질문이었다.
저는 요리하는 것이 취미에요.
냉장고 부탁해를 아시나요? (한참 유행하던 프로그랬이었다.)
저는 그 프로그램을 자주봐요.
거기에 나온 레시피를 가지고 요리를 해보고요.
이 남자는 요리하는 취미를 가졌다고 했다. 처음에는 속으로 '뻥치시네'라고 생각했지만, 점차 구체적으로 자신의 취미를 말해갔다. 말하는 그의 얼굴은 진지했다. '아, 이남자는 정말로 요리를 좋아하는 구나.'
나는 요리 잘하는 사람이 좋았다.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맛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당연히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주는 남자를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질문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를 표현할 수 있었고,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다. 소개팅에서는 직접 묻기 어려운 말들도 영어 회화 시간에는 가능헀다. 심지어 내가 먼저 나에 대해서 호불호를 이야기 하기에 적합한 말들이 많았다. 꾸밈없이 나를 어필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영어 회화 연습 주제는 마치 뉴욕타임즈에서 발표했던 사랑에 빠지는 36가지 질문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에 빠지는 36가지 질문은 1997년에 발표된 실험 방법이다. 낯선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질문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질문이 다 끝나면 서로 눈을 바라본다. 그리고 4분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질문이 끝나갈때쯤에는 사랑에 빠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1. If you could invite anyone in the world to dinner, who would it be?
2. Would you like to be famous? In what way?
3. Before making a telephone call, do you ever rehearse what you are going to say? Why?
4. What would constitute a "Perfect" day for you?
더 알고 싶은 분들은 이 사이트에 들어가 보길 바란다.
36 Questions - How to fall in love with anyone (36questionsinlove.com)
남자를 만나려면 댄스 동호회에 가보라는 직장 동료들의 우스갯 소리가 있다. (실제로 춤 추다가 인연이 된 동료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어학원에 가보라고 말하고 싶다. 성인들이 모인 곳이지만 대체로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젊은 사람들이 영어학원에 온다. 자기계발이 목적인 사람도 있고, 나처럼 특정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듣기로는 회사에서 승진하기 위해서 필요한 항목 중에 영어 실력이 있다고 한다. 이 사람들 역시 영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모인 젊은 사람들이다.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학원에 젊은 남녀들이 모이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생활패턴이 비슷하면 결혼생활이 즐겁다. 남편과 나는 둘다 아침형인간이다. 심지어 남편은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난다. 여행을 함께 가서도 둘 다 9시만 넘어가면 졸음이 몰려와 얼른 자자고 한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운동하고 조식먹으로 가는 점이 너무나도 닮았다. 새벽에 영어학원에서 만났다는 것은 나의 생활패턴과 딱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기도 했다.
영어학원에서 했던 서로의 질문에 대한 답은 결혼 생활하며 모두 확인이 가능해졌다. 남편은 정말로 요리를 잘하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와 같은 특별한 날 함께 새로운 요리에 도전해본다. 이번 크리스마스도 함께 요리할 생각에 기대가 된다.
참고로, 나는 영어로 청소를 잘한다고 했다. (영어로 말하는 것이라 부정적 답변을 할 때 더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기에 뻥을 쳤다.) 남편은 그때 "이여자다" 라고 느꼈다고 한다. 맑눈광 여자의 거짓말 하면 나오는 표정들이 읽혔다나 뭐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