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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리셔스 Nov 24. 2023

비혼주의자였습니다만...

미안해. 갑자기 남편이 일이 생겨서 아이를 못 봐준다네?



많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일찍 결혼한 친구들이 있다. 그들과 한 번 약속을 잡으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어렵게 날짜와 시간을 잡아도 당일이 되면 파투가 나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오히려 내가 미안해진다. 다음을 기약하지만, 그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자연스레 연락하는 것조차 미안해질 때가 생겼다. '결혼하면 이렇게 바쁜 건가.'


연애는 해도 결혼은 생각이 없었다. 

진지하게 결혼에 대해 고민한 적도 없었다. 나와 결혼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결혼해서 꿈꾸는 미래 같은 것은 없었다. 




우리 엄마는 철인의 여자였다. 

내가 6살 때까지 엄마는 독박육아를 하며 나와 내 동생을 키웠다. 아빠는 밤낮으로 일을 했다. 피곤한 남편에게 아이들과 놀아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 시대이기도 했다. 서로가 힘들지만 서로의 영역이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자, 엄마도 일을 시작했다. 엄마는 항상 새벽에 일어났다. 식탁 한 상 가득하게 음식으로 채우는 아침으로 시작했다. 찌개와 수많은 반찬들, 따뜻한 잡곡밥까지 정성이 가득한 식탁이었다.  

365일 매일 아침을 엄마는 그렇게 준비했다. 

하루종일 일하다가 저녁 9시가 되어야 퇴근하는 엄마였다. 집에 와서도 자정이 넘도록 남은 집안일을 하다가 스르륵 잠에 드셨다. 


내가 본 여자의 삶은 너무나도 고된 삶이었다. 집안일도 잘해야 하고 아이들 교육도 시켜야 한다. 나가서 돈도 벌어야 하고 남편 내조도 해야 한다. 말 그대로 철인 같은 여자였다. 


엄마, 나는 엄마처럼 결혼생활 할 자신 없어.


좋은 사람 만나면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한다는 엄마 앞에서 꺼낸 진심은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폭풍 잔소리만 쏟아졌다. 엄마도 진심이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어. 





엄마의 말에 코웃음 치던 비혼주의자였던 난 만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남자와 식을 올리게 된다. 결혼식장에서 우리 아빠,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대부분 딸 시집갈 때는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나?' 내가 본 수많은 부모님들과도 확연히 다른 태도에 당황스러웠다. 

 

 어느새 결혼 8년 차가 됐다. 이제 엄마가 했던 말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사랑하는 가족인 남편을 위해서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마음을 확 바꿔놓은 그는 대체 어떤 남자였길래 나는 결혼을 선택했을까.


 지금부터 이 남자를 선택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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