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자들의 도시, 아마시아 (1)

메르지폰-아마시아 공항에서 지야길 코나으로 가는 길

by 반야

나는 뉴욕에서 오스만사를 공부하는 박사생이다. 얼마 전 석사학위용 에세이를 제출하고 코스워크를 마쳤다. 내가 다니는 미국 대학원에서는 박사과정 3년차에 박사논문 제안서를 쓰고 강도 높은 심사를 받게 되어있다. 리 학과는 이를 준비시키기 위해 각 박사생에게 장학금을 주어 2년차가 끝나는 여름방학에 연구 지역으로 답사를 보낸다. 나는 초기 오스만 제국에서 발전했던 "룸"이라는 개념을 연구하기 위해 튀르키예로 길을 나섰다. 이스탄불에서 약 2주 간 체류한 뒤, 남은 2주는 아마시아(5박 6일), 토카트(2박 3일), 시바스(1박 2일), 카이세리(3박 4일), 초룸(1박 2일)이라는 튀르키예 중부 도시들을 방문하는 일정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스탄불에 체류하던 동안 내가 연구하는 튀르키예라는 나라에 굉장히 실망한 상태였다. 수년 사이에 믿기 힘들 정도로 뛰어버린 물가,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바가지요금, 동양인 여성을 향한 끊임없는 캣콜링, 문제가 터졌을 때 달달 볶지 않으면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뭉개버리는 일부 튀르키예인들의 태도. 어째 이전의 단점은 강화되고 장점은 사라진 듯했다.


게다가 동양인 여성으로서 홀로 튀르키예 소도시를 여행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여행객이 드문 지역에 가면 동양인에게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나는 나를 가만히 세워놓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줄지어 사진을 찍는 일을 몇 번이나 겪었고, 한 무리의 십 대 청소년들이 내 뒤를 졸졸 쫓아온 적도 있었다.


이 모든 걸 학구열로 이길 수 있을까? 미국에 남아서 박사자격시험 준비에 열중하는 게 어떻겠냐는 지도교수님의 권유까지 뒤로 하고 떠난 길이었지만, 사실은 설렘보다는 불안감이 더 컸다. 오랜 해외 생활로 만신창이가 되어있던 마음이 방어기제를 발동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명색이 오스만사 전공자가 연구할 지역도 방문해 보지 않고 논문을 준비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스탄불에서 아마시아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날이 밝았다. 짐을 싸느라 밤을 꼬박 새운 상태였다. 예약해 둔 택시를 타고 이스탄불 공항으로 향했다.


이스탄불에서 아마시아로 가는 비행기. 희생절 연휴 중이라 사탕을 받았다.

첫 행선지로 정한 아마시아는 그나마 가장 염려가 덜한 도시였다. 풍광이 아름다워 관광객이 상대적으로 많이 찾는 곳인 데다가 튀르키예인 친구들도 아마시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중부 튀르키예를 여행하는 12일 중 아마시아에서만 6일을 잡아둔 게 걱정이었다. 지도교수님은 아마시아에서 그렇게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을 거랬다. 그 정도로 볼거리가 많은 도시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정 할 일이 없으면 호텔에서 휴양하면서 공부나 하지 뭐. 비행기에서 홀로 생각했다. 1시간 20분을 날아 메르지폰-아마시아 공항에 도착했다.


메르지폰-아마시아 공항과 아마시아로 가는 세르비스(셔틀).

메르지폰-아마시아 공항은 웬만한 우리나라 버스 터미널보다도 작았다. 어쩐지 수도인 이스탄불과 아마시아를 오가는 비행기가 고작 하루에 한 편뿐이더랬다. 지인들은 주로 고속버스나 자가용을 이용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나는 시간이 금인 단기 여행자이기에 그럴 수 없었다.


공항에 들어가니 조악한 컨베이어 벨트가 나타났다. 거기에서 짐을 찾고 다른 승객들을 졸졸 쫓아가니 아마시아행 세르비스(공항셔틀)를 탈 수 있었다. 2025년 6월 기준 150리라이다. 현금으로만 지불할 수 있었다. 이내 버스가 출발했다. 이쯤 되니 졸음이 쏟아졌다. 하지만 잠들 수는 없었다. 관광이 아니라 답사를 온 사람으로서 두 눈을 부릅뜨고 봐야 할 것이 있었다.


메르지폰-아마시아 공항에서 아마시아로 가는 길

흔히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텍스트 하고만 씨름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텍스트를 파고드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 있다. 바로 연구하는 지역의 지리와 지형, 생태를 관찰하는 일이다. 이것들은 아무리 역사적 상상력이 발달한 사람도 실제로 현지에 가보지 않으면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아마시아-시바스-토카트-카이세리에서 지리적으로 인하고 싶은 것은 나였다. 왜 아나톨리아에서도 유독 이 지역이 튀르크멘과 몽골인들에게 사랑받았을까? 15세기 초 아랍 역사가 이븐 아랍샤는 수많은 몽골인들이 카이세리와 시바스 사이에서 유목생활을 했다고 보고했다. 구글지도로 보니 정말로 카라만과 시바스, 두 지역의 지대가 높고 주변으로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러나 마음에 꼭 와닿지는 않았다.


튀르키예 지형을 나타낸 지도 (출처: https://www.eea.europa.eu)

아나톨리아에 거주했던 유목민들은 여름과 겨울마다 정해진 지역으로 이동하는 계절성 유목을 다. 봄부터 가을까지 지내는 지역을 야일락(yaylak), 겨울을 나는 지역을 크쉴락(kışlak)이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남북간 위도 차이에서 발생하는 기후 변화보다도 고도가 다른 지역 간의 기후 차이를 이용한 유목, 소위 "이목"을 선호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터키어 "야일락"은 종종 고원(plateau)이라는 말로도 쓰인다. 반면 "크쉴락"으로 선정되는 곳은 주로 고지대 사이에 움푹 들어가 있는 지역, 그러면서도 평야가 넓게 펼쳐진 지역이었다. 이러한 지형을 터키어로 "오바"(ova)라고 부른다.


유목민들이 둘 중에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당연히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야일락이었다. 압바스 제국을 무너뜨린 일한국이 이슬람세계의 제1도시였던 바그다드(해발 약 30미터)를 버리고 마라가와 타브리즈, 술타니예(모두 해발 1,500미터 이상)를 개발한 것도 그들에게 수도란 "야일락"이어야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향하고 있는 아마시아의 해발고도는 411미터이고, 그다음에 갈 도시인 토카트의 해발고도는 623미터였다. 반면에 다니슈멘드 왕조와 에레트나를 포함한 일한국 총독들이 "룸"의 수도로 삼았던 도시들인 시바스는 약 해발 1,280미터, 카이세리는 약 1,050미터에 위치해 있다. 상당한 고원지대이다. 따라서 시바스와 카이세리는 아나톨리아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에게 "야일락"으로 기능했을 것이다. 반면에 아마시아나 토카트는 비교적 고도가 낮으면서 평야에 인접한 계곡 도시들, 즉 오바(ova)에 형성된 도시들로서 "키쉴락"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과연 아마시아로 가는 길에 창밖을 보니 너른 초원 끝에 산맥이 보였다.


협곡에 위치한 아마시아

아침 8시 50분. 아마시아 중심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내가 머물 숙소인 지야길 코나으(Ziyagil Konağı)까지는 트렁크를 끌면서 걸어가야 했다. 가는 길에는 자그마한 강이 있었다. 예실으르막(Yeşilırmak)이라고 불린다. 유유히 흐르는 강 바로 옆에는 폰투스 왕들의 무덤과 성채가 자리한 절벽이 병풍처럼 우뚝 솟아 있다.


강의 존재로 짐작할 수 있듯이, 아마시아는 이 근방에서는 저지대 중 저지대에 속하는 곳이다.


이곳에 직접 와보고 나니 아마시아가 유독 셀주크 시대와 오스만 시대에 각광을 받았는가 알 수 있었다. 이곳은 고원 목초지인 시바스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주변에 접근가능한 평지가 좁았다. 다니슈멘드 왕조와 일한국 지배계층을 구성했던 유목민들이 아할 만한 도시는 아니었다. 키쉴락으로도 라리 토카트나 닉사르를 선호했을 것이다.


반면에 농사와 거주에는 꽤 적합해 보였다. 도시를 둘러싼 높은 산들이 삼순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막아줄 뿐 아니라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를 가둬주기 때문에, 낮에는 주변 지역보다 따뜻할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내가 체류하는 동안 아마시아의 낮 온도는 35도에 육박했는데 같은 기간 이웃도시 메르지폰의 낮 온도는 25도 정도에 불과했다. 도시 한가운데에 (당시 기준으로는 도시의 바로 옆에) 강이 흐르니 물을 얻기 쉬운 것도 아주 큰 장점이었다.


나는 셀주크 왕조와 오스만 왕조가 아주 초창기를 제외하면 유목생활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본다. 이들은 대부분 도시에 체류하면서 비잔티움 제국 출신이자 기독교인이었던 농경민들을 잘 관리해서 세금을 걷어들이고, 이따금씩 정복활동을 벌여서 휘하에 있는 튀르크멘 부족들에게 목초지를 제공하는 식으로 국정을 운영했을 것이다. 이들에게 아마시아는 더할 나위 없는 행정도시가 되어줄 수 있었다. 농경민들이 거주하는 저지대와 유목민들이 거주하는 고지대가 맞물리는 지점에 있으면서, 협곡 안에 위치해 방어에 유리하고, 물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내가 머문 Ziyagil Konağı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

울퉁불퉁한 돌바닥 위로 끙끙거리며 트렁크를 굴린 끝에 마침내 지야길 코나으에 도착했다. 푸른 담쟁이덩굴이 뒤덮은 예쁜 골목에 자리해 있었다. 한창 조식을 먹고 있는 손님들을 뚫고 "메르하바"를 외쳤다.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사실 이스탄불에서는 일부러 영어를 쓰면서 튀르키예어를 전혀 모르는 척을 하고는 했다. 눈만 마주치면 따라오는 호객행위나 추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중부 튀르키예에서는 영어를 절대 쓰지 않기로 다짐했다. 완전히 녹슬어 버린 튀르키예어 실력을 키우는 게 첫 번째 목적이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현지인 분들과 라포를 쌓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스쳐 지나갈 손님이 아니라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되어야, 책에서는 설명해 주지 않는 아마시아에 관한 정보들을 속속들이 알 수 있을 터였다.


"[영어로] 손님 방은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짐을 여기에 두시고 여행하다 오시면 방을 준비해 줄게요."


나는 분명히 튀르키예어로 인사했건만 어찌 된 영문인지 영어로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나는 튀르키예어로 대답했다. "탐암, 히츠 소룬 데일"(알겠습니다. 괜찮아요.) 사장님이 의아한 낯빛을 내비치다가 다시 영어로 말했다. "시간이 이르니 아침식사를 하고 가세요."


아니, 아직 체크인을 하지도 않았는데 조식을 준다고? 내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염세주의와 인간혐오에 찌들어 있던 내가 오랜만에 느낀, 처음 보는 타인의 호의였다. '이번 여행 느낌이 좋다, '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비행기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먹었기에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장님의 선의를 거절하고 싶지 않아서 간단히 조식을 먹었다. 사장님이 한쪽에 애플티를 챙겨줬다. 사과는 일교차가 크면서도 대체로 서늘한 지방에서 잘 자라는, 아마시아에 기르기 아주 적합한 과일이다. 과연 아주 달고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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