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톡쌤 카이지 Apr 04. 2023

말을 하기 전, '말계도'부터 그리자

스토리가 있는 스피치 '스토리 톡' Vol.3

안녕하세요? 톡쌤입니다.


지난 편까지 간단한 제 소개를 올렸고요. 100초 안에 상대방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 이상적인 말하기, <스토리 톡>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제목에 출처를 알 수 없는 '말계도'라는 단어를 적었죠. 눈치 빠른 분들은 어떤 단어를 끌어다 붙였는지 짐작이 가실 텐데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한 직장에서 이뤄진 두 사람의 대화를 슬며시 뒤에서 지켜보겠습니다.




휴가 시즌이 다가옵니다. 오랜만에 해외여행을 나가보려는데, 아직 딱히 갈 곳을 못 정했습니다. 주변에 먼저 다녀온 동료들에게 물어봤습니다.


A

"이번 휴가 어디로 갈지 아직도 못 정했어, 너 최근에 일본 다녀오지 않았어? 어땠어?"


B

"사람 진짜 많더라. 왜 서울시 일본구 오사카 동이라고 하는지 알겠어. 한국말 밖에 안 들리던데. 근데 음식은 맛있더라고. 한국 사람 많아도 오랜만에 (해외) 나가니까 좋긴 하더라. ㅁㅁ라멘집!! 사실상 이번 여행은 거기 라멘 먹으려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런데 옛날처럼 깊은 맛은 안 나는 거 같아서 아쉽긴 했어. 아, 너 전에 ㅇㅇ브랜드 가방 우리나라에선 품절이라고 했지? 오사카 백화점엔 있던데? 근데 싸진 않아, 가격 메리트는 없는데 그래도 있는 게 어디냐며..ㅎ"


이 대화, 어떻게 보셨나요? 오늘만 몇 차례 들었고 겪었을 듯 한 일상 대화입니다. A 씨는 이 대화로 휴가 갈 곳을 정했을까요? B 씨가 다녀온 일본 오사카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들까요? 혹시 문제가 있다고 느껴졌다면 '오답노트'를 적어 봅시다.




<오답노트>


① 추상적입니다


추상적이라는 것은 뜻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대화를 마치고 난 뒤 돌이켜보면, 이 사람이 일본 오사카를 방문했는데, 좋았다는 것인지 별로였다는 것인지조차 모호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100% 다 좋고, 다 싫은 경우는 사실상 없겠죠. 그렇지만 이렇게 에피소드만 나열하고 끝낸다면 그것도 여러 이야기들이 중구난방으로 이어진다면 상대방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일상 대화에서 '좋았다' '싫었다'는 단편적인 감정만 표현하고 끝내는 경우도 많죠. 이 역시 추상적인 대화법입니다. 좋았다면 왜 좋았는지,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도 말을 해줘야 상대방도 그에 대한 의견을 내놓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겠죠.


우리나라는 서술어가 마지막에 나오는 어순 때문인지 이렇게 추상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같은 경험을 해도 구체적으로 느낌을 구분하지 않고 추상적으로 끝내버리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그쯤에서' 끝내버렸기 때문에 말도 추상적으로 하게 되는 거죠.


② 횡설수설하고 있습니다


오사카에 한국 사람들이 많아서 별로였다 → 그래도 오랜만의 해외여행이라 좋았다 → '추억의 라멘집'이 초심을 잃었다 → 일본엔 'ㅇㅇ브랜드' 가방 재고가 있다 → 가격이 국내보다 싸지는 않지만 구할 수는 있다.


한 대화에 5가지 에피소드가 열거됐습니다. 딱히 '오사카에서 일어난 일'이란 점 빼곤 이들을 묶어주는 구심점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생각나는 대로 말한 겁니다. 우리는 이런 걸 '횡설수설'이라고 부르죠. 한참 대화를 하고 돌아선 뒤 '그래서 저 친구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이런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죠. 한바탕 횡설수설을 열심히 들은 겁니다.


어떤 특정한 주제를 정해놓고 이야기를 해야 '우선순위'가 생깁니다. 그게 있어야 에피소드를 배열할 수 있죠.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하거나 듣는 사람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정보, 이 걸 앞에 배치하고 나머지 이야기는 후순위로 둬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논리적인 구성'입니다. '논리적'이라고 하면 머리부터 아팠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③ 묻는 말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A 씨는 휴가 여행지를 정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B 씨에게 도움을 청한 겁니다. '일본'이란 대상도 B 씨가 다녀왔기 때문에 물어본 겁니다. 이 대화에서 인상 깊은 내용이 나온다면 일본을 여행지로 고를 수도 있었겠죠. 여러분도 공감했겠지만, A 씨는 이 대화를 통해 별로 건진 게 없을 겁니다. 하다못해 오사카라도 가면 좋다는 것인지 아니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보를 얻으려면 더 많은 추가 질문을 해야 할 겁니다.


'묻는 말에 대답하기'는 당연한 말입니다. 상식입니다. 그런데 실제 대화를 해보면 묻는 말과 다른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질문이 뭐였는지, 듣는 사람이 어떤 정보를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말을 시작하는 경우입니다. 한두 문장 말을 하고 나서부터는 아마 질문이 뭐였는지도 기억이 안 날 겁니다. 그러니 원하는 답을 할 가능성은 더 낮아지겠죠.


대화는 '상호 교류' 과정입니다. A 씨는 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예상하지 못했던 여행지에 대한 경험을 듣고 추천받기를 원했을 겁니다. 그러나 결국 B 씨가 하고 싶어 늘어놓은 말만 들었습니다.




'말계도'? - 말도 설계도를 그린 뒤 해야 한다


더 뽑을 수도 있지만, 이 3가지 정도만 '오답노트'에 적겠습니다. 이런 대화를 하지 않으려면 말을 시작하기 전, 머리에 설계도를 그려야 합니다. 그럴 여유가 없다면 간단한 지도라도 떠올린 뒤 입을 떼야합니다. 나침반으로 방향을 확인하고 주요 포인트에 잘 보이게 표시를 해놓고 가상의 포스트잇에 설명도 적어 붙입니다. 다소 헤맬 수는 있어도 지도가 없을 때보다 목적지엔 더 빠르게 갈 수 있습니다.


A 씨는 이번엔 C 씨와 같은 주제로 대화를 했습니다.


A

"이번 휴가 어디로 갈지 아직도 못 정했어, 너 최근에 베트남 다녀왔다며? 어땠어?"


C

"가기 전엔 기대도 별로 안 됐거든, 근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매력적인 나라였어. 호찌민이랑 하노이, 두 군데를 다녀왔는데, 너 맛집 가는 거 좋아하고, 휴양지보다는 도시에서 걸어 다니면서 여행하는 게 좋다고 하지 않았었어? 그러면 후회는 안 할 거 같아. 


두 군데가 남-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같은 나라 맞나 싶을 정도로 먹는 것부터 건축 양식까지 완전 달라서 지루하지 않더라고. 너 분짜 잘 먹잖아, 그건 하노이가 진심이야. 그냥 차원이 달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했던 가게가 있는데, 진짜 현지 분짜는 이런 맛이구나 싶었어."


어떠세요? 당신이 A 씨라면, 이 대화를 끝내고 휴가지 리스트에 '베트남'도 올리려고 하지 않을까요? 이번엔 '정답노트'를 써 보겠습니다.




<정답노트> 


① 구체적입니다


일단 A 씨가 베트남엘 간다면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왜 그런지 이유와 사례로 이야기를 엮었습니다. 대화의 처음부터 본인 생각을 밝혔습니다. 듣는 사람은 대화가 어디로 튈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긴장을 하게 되는데, 이 대화에선 '긴장'대신 '몰입'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면 두 사람이 대화를 하면서 방향을 잡고 함께 걸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질문과 답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② '지도'가 보입니다


방문한 곳과 본인의 평가를 앞세웠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큰 이유 - 호찌민과 하노이 두 도시 분위기가 달라 지루하지 않음

작은 이유 - '오바마 분짜' 맛집


이렇게 구분해 구성했습니다. 이 짧은 대화에 주제부터 근거까지 중요한 이야기부터 차례대로 했다는 걸 알 수 있죠. 디테일, 즉 '작은 이유'들은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면서 추가로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졌을 겁니다. 다른 '큰 이유'로 주제가 바뀌면 그때 또 디테일들을 찾아 이어 붙여주면 됩니다.


앞선 대화와 비교하면 A 씨의 관심이 어디에 더 집중됐을지는 누구라도 추측할 수 있을 겁니다. C 씨에게 많은 추가 질문이 이어졌을 것이고 A 씨는 많은 정보를 얻었을 겁니다.


③ 듣고 싶었던 대답입니다


무엇보다 C 씨 대화의 가장 큰 특징은 A 씨의 특성을 미리 간파해서 대답에 녹였다는 겁니다. '누구에서 하는 말인가'를 정확하게 파악한 경우입니다. 맞춤형 대답은 대화 도중 생각이 다른 곳으로 흐르지 못하게 합니다. 본인이 듣고 싶은 답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C 씨는 그래서 개인적인 감상보다 A 씨의 니즈, 그러니까 '여행지를 찾는 데 필요한 정보'를 주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감이 오셨나요? 


질문을 듣자마자 대답의 핵심 주제를 세운다  → 듣는 사람의 성향을 파악한다 → 질문을 한 의도를 간파해서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간 답을 내놓는다


<스토리 톡>을 하기 위해선 짧은 대화에서도 이런 고차원적으로 보이는 다단계 연산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소위 '말을 잘한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기꺼이 밟아 나갑니다. 그리고 시행에 옮깁니다. 연습을 하고, 경험이 쌓이면 이 과정은 더 빠른 시간 안에 더 자연스럽게 진행될 겁니다.




일상 대화를 넘어 프레젠테이션이나 자기소개, 면접 등에서 스피치를 할 때는 '지도'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땐 설계도를 그려야 합니다. 제목에 달았던 '말계도'는 말+설계도입니다. 말도 '설계도'대로 해야 합니다. 기초 공사, 골조 공사 튼튼하게 하면 어떤 디자인이나 어떤 높이로도 건물을 지을 수 있죠. 


말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피치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기초 공사고, 근거들을 모으는 게 골조 공사입니다. 이걸로 몇 층 짜리 구성을 할지 나누고 위로 쌓아 올려 '말계도'를 만듭니다.


너무 복잡한가요? "머리가 아파, 편하게 살고 싶어…" 포기하고 싶으신가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운동을 배울 때, 한 번에 휙 하는 것처럼 보이는 동작도 구분동작으로 나누면 5~6가지가 됩니다. 그걸 하나하나 배울 땐 온갖 생각이 들죠. 이걸 왜 하고 있나 현타도 옵니다. 그렇게 한두 달 고비를 넘기면 어떤가요? 구분동작이 몸에 익으면 나도 '한 번에 휙'이 됩니다.


아무렇지 않게 매일 하는 요리, 운전, 게임… 이런 것도 하나하나 뜯어 분석해 보면 이만큼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질 겁니다. 그런데 다들 진짜 아무렇지 않게(?) 잘하시잖아요. <스토리 톡>도 비슷합니다. 방법만 공부하고 연습하면, 저 머리 아파 보이는 과정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질 겁니다. 


작가의 이전글 방송기자, 왜 '톡쌤'이 되었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