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로스쿨에서 살아남기 실전편: 입시부터 변시까지

"왠지 나는 여기 로스쿨 문화에 맞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아"

I. 들어가며


이 글은 로스쿨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분투했던 내 개인적인 삶에 대한 것이다. 사람마다 성격, 개성,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보편적인 매뉴얼이 될 수는 없고, 지극히 사사로운 취향과 주관적인 견해들이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3년 전 막막했던 내 상황을 생각하면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원래 주변의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그 선배의 주관에 불과하지만 그나마 잡을만한 지푸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합격수기란 건 원래 구체적인 대책을 위한거라기 보다 그저 공부하기 무료할 때 심심풀이로 읽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로스쿨에서의 내 경험도 꽤 흥미로웠던 부분이 있어서, 로스쿨에 진학하려는 후배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권할 만한 글을 써보려 한다.


이 전자책을 쓰게 된 이유는 내가 꿈꿔왔던 작가의 길에 진입하고 싶어서이다. 내가 원래 관심 있는 영역은 영화, 철학, 음악 같은 것들이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내가 잘 하는 영역은 입시, 공부, 자소서 쓰기 이런 것들이다. 언젠가는 위대한 주제에 관한 글을 쓰고 싶지만, 먼저 지극히 실용적이고 개인적인 글을 전자책으로라도 출간해보는 것이 나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 책은 일관된 흐름이 있다기보다는 내 여러 생각들을 모아놓은 잡설 모음 정도로 생각하고 발췌해서 읽어도 될 것 같다. 독자들이 이 책에서 바라는 것과 내가 쓰고 싶은 것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을 것 같아서 걱정도 되지만, 그저 내 기록을 위한 일종의 블로그, 혹은 일기장이라고 생각하고 써보려고 한다. 퇴고를 충분히 하지는 못했다. 오탈자나 부족한 점을 알려주면 적극 반영하려고 한다. 당연히 내 인생의 진실을 전부 담은 것도 아니고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편집된 것이다. 아무튼 전자책이니까 자원소모도 없고 나무에게 미안할 일은 없을테니까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후배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이 전자책은 3부로 구성될 예정이다. 1부는 입시 관련된 내용으로서, 주로 자기소개서 등 정성평가와 관련된 내 경험과 생각을 정리할 것이다. 블라인드 제도, 정성평가, 특별전형 등에 대한 논란도 일부 언급할 것이다.

2부는 재학 중 경험을 수업과 학회, 석사논문, 인턴 등으로 나누어 설명할 것이다. 물론 나는 특이한 진로를 희망한 것처럼, 특이한 경험들을 많이 했다. 나처럼 하라고 권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경험상 로스쿨에는 다양성이 너무 부족해 보인다. 물론 내가 실제로 진로의 다양성이 어떠한지 통계적으로 검증해본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비주류 경험에 대한 담론과 정보공유가 너무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특이한 진로를 희망하는 사람은 늘 있었지만, <검클빅>으로 상징되는 로스쿨의 경쟁적 분위기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러니까 나처럼 특이한 진로의 사람들은 이런 길도 있다고 고래고래 소리질러야 일부라도 들을 수 있다. 내가 신입생 때, 선배들은 모두 똑같은 진로에 똑같은 생각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나고보니 그건 내 편협한 시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의 가능성을 깨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로스쿨에서의 특이한 경험이나 생각들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내 주변에도 검클빅에 진출한 친구들이 많고, 그런 진로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남과 다른 진로를 간다는 이유로 되게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할 필요는 없다.)

3부는 대망의 변호사시험이다. 이미 시중에 자료가 너무나 많고 나는 고득점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딱 두 가지만 말하려고 한다. 합격 여부에 있어서 선택형이 중요하다는 것과, 매사에 전략적인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


2023년 2월에 서울대 법전원을 졸업하면서 나는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졸업>을 떠올렸다.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어쩌면 로스쿨은 직업양성 학교라는 측면에서 '팔려간다'라는 가사가 가장 잘 적용되는 세계인 것 같기도 하다. '변호사를 산다'라든지, '법학은 빵을 위한 학문이다'라는 말을 들을 때 내가 선택한 법조인이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허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널 잊지 않을게. 이 미친 세상을 믿지 않을게' 라는 가사도 있다. 나는 철저한 자본주의 하에서라도 각 변호사가 주체성과 초심을 유지하면서 여력이 되는대로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나를 포함한 우리 동기와 후배들이 그런 훌륭한 법조인이 되기를 바란다.


다만 나는 군대를 가야해서 팔려가는게 아니고 끌려가는 상황이긴 하다. 나는 세계적인 평화학자 요한 갈퉁, 레전드 복싱선수 무하마드 알리, <왕좌의 게임>의 작가 조지 R.R. 마틴처럼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를 하지는 못했지만, 현실에 굴복해 의무복무를 하더라도 내 나름의 원칙은 지키고 싶다. 나는 징병제에 반대하고, 병역 거부를 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제약과 가족의 설득 때문에 군대를 가기로 했다. 갈 때는 가더라도, 이러한 강제동원은 인권 침해로서 위헌적이라는 내 주장은 굽히고 싶지 않다. 어차피 끌려가는 상황에서 일개 변호사가 반대하든 말든 세상은 그대로 돌아가겠지만,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는 점을 기록하고 싶다. 이제 대학원을 졸업했고 이제 1인분을 해내야 하는 상황은 맞지만, 적어도 한때 내가 비판했던 기성세대와 똑같은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이 책에는 내가 직접 경험한 것뿐만 아니라 내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이상적인 이야기도 포함될 것이다. 내가 몇년 뒤 이 글을 읽고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원래 나는 소위 학벌이나 성적 얘기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그냥 상처받거나 소외받는 사람을 배려하자는 도덕적인 취지는 아니다. 내 경험상 대부분의 시험이란 평가도구는 타당성과 신뢰성이 매우 낮고, 특히 어떤 수치나 간판만 주목받으면서 의도와 주제가 왜곡되는 일이 많다. 누가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높이거나 낮추자고 주장할 때, 우리는 그 논거를 살피기 이전에 그의 성적을 궁금해한다. 성적이 높은 사람은 자기를 뽐내려고 낮추자고 하는군, 성적이 낮은 사람은 못난 걸 숨기려고 합격률을 높이자고 하는군. 이런 식으로 넘겨짚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누군가는 모든 시험을 잘 보면 자기 말에 권위를 세울 수 있으니 된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시험을 잘보려 애쓰는건 어려운 일인걸 떠나서 상당히 비효율적인 일이다. 모든 시험을 잘 보려고 애쓰다가 정작 중요한 걸 놓칠 우려도 크다. 어쩌면 이 글을 클릭한 사람은 '서울대'라는 말에 반응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학벌주의의 수혜를 받은 적이 많고, 이를 이용한다는 게 약간 양심에 찔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 다른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양해해준다면 좋겠다. 한국 사회에 서울대학교를 둘러싼 일종의 판타지, 아이콘이 존재하는 이상, 서울대를 언급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전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생텍쥐페리가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 것처럼, 눈에 보이는 학벌과 성적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은 때로 유해할 수 있다. 남을 배려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런 장치들에 의존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학벌을 서열화하지 않고 시험 성적을 뽐내지 않더라도, 대학에서의 특색 있는 경험과 학문 성과를 이야기하는 것은 대부분 어렵지 않다. 내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하는 곤궁한 상황에 처하면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게 될지 몰라도, 적어도 일상생활에서 그러한 태도를 지키고 싶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필요최소한의 범위에서 내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2014 수능을 봤고, 학부에서는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과를 전공해 2020년에 졸업했고, 서울대 법전원에 12기로 입학해서 올해 시험을 통과해 변호사가 되었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시험의 달인이구나, 어려움이 없었겠구나 라고 추측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 나는 학부 때부터 장애인 아들을 키우면서 공부를 병행해야 했고 하마터면 공부를 중단해야 할 위기가 적지 않게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 수험 공부는 철저하게 최소 노력으로 어떻게든 턱걸이만 하자는 무사안일주의였던 것 같다. 나는 때로 공부에 무척 몰입하고 학문에 커다란 사랑과 감동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그 공부와 수험 공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자세한 건 본문에서 필요할 때마다 언급하려고 한다.


II. 로스쿨 입시에 관하여

1) 블라인드 채용과 정성평가 논란

시인 정현종은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온다는 것이다"라고 썼다. 그런데 요즘 입시나 채용에서 지원자는 이런저런 정보를 가리고 피카소 그림 속 인물처럼 모호한 모습으로 온다. 블라인드가 공정이라고 믿는 지금 추세라면 앞으로는 전공, 군경력, 이전 직장 등 가려야 하는 정보가 더 늘어날지 모른다. 그러다 보면 지원자는 이제 몬드리안 그림처럼 사각형과 원으로 구성된 추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감사에 걸리지 않기 위해 사각형의 넓이와 원의 지름을 측정하여 그 어마어마한 일을 단순하게 처리할 것이다. 공정의 이름으로.
-천경훈, 칼럼 <블라인드와 공정 사이>


로스쿨 원서를 내 본 사람들이라면 블라인드 선발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부모의 경력, 직업이나 자기의 졸업 학교 등에 따른 차별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평가자에게도 일부 정보를 숨기도록 하는 제도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량평가 위주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고, 이러한 방향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


블라인드의 정당성을 논하기 전에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지금 로스쿨에서 학벌 블라인드라는 제도 자체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사례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지원자들은 필수적으로 성적증명서나 졸업예정증명서 등을 제출하는데, 당연히 그 서류에는 학교 이름이 기재된다. 그래서 행정실에서는 블라인드의 취지에 따라 학교 이름을 형광펜으로 가리라고 하는데, 막상 제출되는 서류를 보면 배경과 양식이 달라서 누구든지 학교를 추측할 수 있다. 가령 고려대 성적표에는 호랑이가 떡하니 그려져 있는데, '고려'라는 두 글자를 지워 놓고 이걸 블라인드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블라인드 제도의 취지에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며, 특히 공부한 학교에 대한 정보는 자기 소개를 위해 필수적이라서 일괄적으로 블라인드를 적용하기에는 득보다 실이 많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경우에 따라 부분적인 필요성은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취지가 어떠하든, 일단 규칙을 정해놨으면 규칙대로 적용되어야 할 것인데,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이미 '학벌 블라인드'는 장식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교수들이 학교의 네임밸류를 평가에 활용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도, 대다수 학교에서 공개하는 자료에 따르면 학부 학벌을 알지 못한 채 선발한다는 말은 거짓으로 보인다.


로스쿨 입시에서는 일종의 학부 쿼터제가 있는데, 자교 학생을 2/3 이상 뽑지 못한다. 서울대 로스쿨은 매년 서울대 학부생을 2/3에 가깝게 선발하고 있다. 이러한 수치가 정말 학부 전공에 대해 알지 못한 채 나올 수 있는 것일까?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말아야 한다. 법과 규칙은 장식에 불과해서는 안된다. 어쩌면 로스쿨에서 졸업한 학부를 고려하고 있다는 내 의심은 음모론이나 오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훨씬 합리적인 블라인드를 시행하면 된다. 졸업증명서를 내는 절차와 성적을 입력하는 절차를 이원화해서, 증명서는 증명이라는 행정적 목적으로만 쓰고 평가자는 통일된 양식으로 교과목과 성적만 전달받도록 할 수 있다. 블라인드로 한다고 공언해 놓고 실제로는 성적에 반영한다면 이건 단순히 장식적인 규정이 아니라 허위 규정이 될 여지도 있다. 내부적으로 정말 떳떳하다고 하더라도, 외부에 어떻게 인식되는지 고려한다면 내부의 일탈이 발생할 수 없도록 최소한의 통제 장치를 만드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다만 나는 여기서 학부에 대한 블라인드 제도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선발 과정에서 "블라인드라는 거짓말을 하지 말자"는 얘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다. 더 근본적이고 골치 아픈 부분은, 정량평가와 정성평가를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가, 어떤 평가제도가 좋은 학생을 뽑을 수 있는가, 어떤 학생이 과연 좋은 학생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나는 정량평가와 공정성 담론이 선발의 다양성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천경훈 교수님의 주장에 공감하는 편이다. 원래 블라인드 제도가 강조된 배경은 평가자들 사이에 잠재된 차별적인 편견을 배제하려는 것이었다. 법전원 교수님들은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 평가자들이 편견에서 자유로운지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 사실이다. 중요한 건 차별을 배제하겠다고 하면서 도입된 블라인드 제도가 오히려 정량평가를 강화함으로써 다양성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다음 글에서는 로스쿨 선발에서 다양성과 정성평가의 필요성, 그리고 법학적성시험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해보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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