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부터 유신까지, 국회와 정부의 변화 과정을 따라가 봅니다
This 1915 illustration by Hy Mayer titled "The Awakening" shows a symbolic female figure carrying a torch labeled "Votes for Women," striding from the western states (where women already had voting rights) toward the eastern states. The striking image depicts women in the east reaching out toward the torch-bearing figure, symbolizing their awakening desire for suffrage, with the western states colored in gold to indicate where women's voting rights had already been achieved.
(본 글은 법률 전문서적의 내용을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법적 정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내용이 원문의 의도나 법적 해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법률문제에 대해서는 반드시 원문 및 법률전문가의 자문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
"최초의 헌법, 한 번 정하면 바뀌지 않을 줄 알았죠?"
대한민국 첫 헌법은 1948년 7월 17일에 만들어졌습니다. 제헌헌법 당시에는 <단원제 국회>를 두었고, 정부는 <대통령제>를 취했지만, 초기에 의원내각제도 채택하자는 의견도 꽤 많았습니다. 이때 국회(제3장)·정부(제4장)·법원(제5장) 순으로 규정되고, 정부 편에서는 대통령(제1절), 국무원(제2절), 행정각부(제3절)를 따로 정했습니다. 당시에는 대통령과 부통령을 국회에서 뽑았고, 국무총리 임명도 국회 승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부통령]이라는 직책이 존재했고, <심계원>이라는 기관이 회계감사를 담당했으며, 현행 감사원은 이때 아직 없었습니다.
국회는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로 선출된 의원들로 구성되었고, 의원 임기는 4년이었지만, 제헌 당시만 2년 예외규정이 있었습니다. 국회 회의는 보통 공개되며(비공개 가능), 의결정족수도 지금과 비슷했지만 의장이 가부동수일 때 결정권을 갖는 조항이 특징이었습니다. 행정부 역시 미국식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요소가 뒤섞여 있어, 국무원 의결기관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다만 긴급명령권 등 대통령이 사용할 수 있는 비상조치는 국회의 사후승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전쟁통에도 헌법이 바뀐 사연, 의원내각제 vs 대통령직선제"
한국전쟁 직전 시기, "국회에서 대통령을 뽑게 하면 재선될 가능성이 너무 낮다"고 생각한 이승만 측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원했습니다. 반면 국회는 의원내각제를 주장했고, 결국 두 주장을 절충한 형태로 개헌이 단행됩니다. 그 결과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은 국회에 대해 "연대책임"을 지도록 해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넣었죠. 원래 단원제였던 국회는 형식적으로 <양원제>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참의원은 구성되지 않아, 제대로 된 양원제는 작동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국회는 국무원불신임권을 갖게 되었고, 국무원 전체가 국회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총사직을 해야 했습니다. 대통령과 부통령은 국민투표로 직접 선출되었지만, 의회에서 2차 결정을 하는 예외규정도 있었습니다. 국회의장(민의원)과 참의원 의장(부통령)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이 역사적 특징입니다.
"다시 대통령에게 힘 실어주기, 그리고 국민투표의 도입"
1954년, 정치적 상황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유리해지면서 "재선" 이상의 연임을 가능케 하는 쪽으로 헌법이 개정됩니다. 국무총리는 국회 승인 없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등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상당 부분 약화되었습니다. 대신 <국민투표제>가 추가되어 특정 사안에 대해 국민의 직접 의사를 물어볼 수 있게 되었지요. 하지만 이는 주로 국회의 의결을 뒤집는 용도로 설계되어, "집권연장의 장치"라는 비판이 있었습니다(정상우, 1954년 헌법개정의 성격에 대한 비판적 고찰, 법사학연구 제28권).
제2차개정헌법은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했으면서도, 조약이나 군사 파견 같은 중요 사항은 여전히 국회 동의를 필요로 했습니다. 또 계엄 선포나 긴급명령권을 통해 행정부가 위기상황에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했지만, 사후 의회 승인을 받게 하여 일정 부분 견제 원리를 반영하려고 했습니다.
"4·19혁명과 함께 찾아온 순수 의원내각제의 시대"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자, 민주당 주도의 <제2공화국 헌법>이 만들어집니다. 이 헌법은 한국 헌정사에서 유일하게 "순수한 의원내각제"를 시도한 사례입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에 머물고, 실질적 행정권은 국무총리와 국무원(내각)이 행사했습니다. 국무원은 국회(특히 민의원)에 대해 연대책임을 지고, 민의원이 불신임하면 총사직하거나 민의원을 해산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흥미로운 점은 <법원>의 독립성도 한껏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법관자격자들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선출하고, 헌법재판소도 최초로 등장하여 위헌법률심사·탄핵심판·정당해산심판을 전담하도록 했습니다. 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별도 헌법기관으로 둬 선거관리를 전담하게 했죠. 하지만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이 헌법은 오래가지 못하고 멈춰버립니다.
"군사쿠데타 이후의 대통령제, 국회 앞에 놓인 정부"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부가 집권하면서 <1962년 제5차개정헌법>이 국민투표로 확정됩니다(문홍주, 한국헌법, 해엄사, 1988). 다시금 <대통령제>로 복귀했고, 국회는 단원제로 되돌아옵니다.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며, 국무총리·국무회의(의결→심의기관으로 변경), 감사원 도입 등 오늘날 우리가 익숙한 정부 형태가 어느 정도 틀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제라 해도 그 권력 균형이 항상 안정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국회는 법률안·예산안·국정감사권 등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대통령의 강력한 거부권·긴급명령권 등에 의해 국회는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1969년에는 대통령 중임 제한을 "3선"까지 가능케 하는 개헌(제6차개정헌법)이 이루어져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의 발판이 됩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초헌법적 기구의 등장과 초강력 대통령제"
1972년 10월 17일 "10월 유신"으로 박정희 정권은 국회를 해산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기구를 헌법에 신설합니다. 이 기구는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의 3분의 1 의원까지 선출할 수 있어 막강한 권한을 가졌고, 사실상 대통령 권력기반의 뒷받침 역할을 했습니다. 국회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정부보다 뒤에> 규정되는 등 위치가 격하되었고, 대통령은 언제든 국회를 해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대통령은 <긴급조치권>을 도입해, 사전에 "국가안보상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국민의 자유까지 제한할 수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중 상당수는 "유신정우회"라는 친정부적 조직을 통해 뽑혀 의회 독립성은 더욱 약화되었죠. 이 시기 국정감사는 폐지되고, 국회가 할 수 있는 건 일정 국정사안에 대한 단편적 질의 정도였습니다.
"유신이 사라지긴 했는데… 여전히 강한 대통령"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유신체제는 흔들립니다. 최규하 과도정부 때 개헌 논의가 열렸으나, 결국 전두환 등 신군부가 장악한 뒤 <1980년 10월 제8차개정헌법>이 국민투표로 확정됩니다. 이번에는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사라졌고, 대신 <대통령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간접선거 방식을 택했습니다. 대통령 임기는 7년 단임, 중임 불가로 되어 있었지만, 막상 집권자에게 유리한 요소들이 여전히 많았습니다.
국회는 유신 시절처럼 대통령 해임에 대항해 해임의결을 할 수 있었지만, 대통령 역시 국회를 해산할 수 있었고, 회기일수 제한(연간 150일) 등 국회 운영은 계속 제약됐습니다. 다만 유신헌법에서의 긴급조치권은 <비상조치권>으로 바뀌어 발동요건이 조금 더 엄격해졌고, 국회가 재적 과반수로 해제를 요구하면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규정해 약간의 보완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대통령 권력 집중 현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헌법은 시대 흐름을 반영하며 계속 진화합니다"
제헌헌법부터 제8차개정헌법까지 대한민국은 무려 아홉 번 헌법을 고쳐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헌법이 다루는 정부형태와 국회 제도는 끊임없이 변동했습니다.
(i) [제헌헌법]부터 시작된 대통령제와 부통령, 국무총리, 국무원의 의결기관 성격 등은
(ii) [제1·2차개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대통령직선제와 국무원 불신임, 국회 양원제 등 다양하게 혼재합니다.
(iii) [제3차·4차개정]인 제2공화국 헌법 때는 "순수 의원내각제"라는 한 번뿐인 실험이 이뤄졌고,
(iv) [제5·6차개정]헌법에서 다시 대통령 중심 체제로 옮겨갑니다.
(v) [제7차개정] 유신헌법에서는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대통령 권력을 정점으로 끌어올렸고,
(vi) [제8차개정]헌법(제5공화국)은 그 폐해를 일부 줄였으나, 여전히 대통령에게 무게가 실린 구조가 유지됩니다.
이처럼 헌법의 연혁은 단지 법률 기술의 역사가 아니라, 급변했던 정치·사회적 환경을 반영하는 일종의 거울 역할을 해왔습니다. 국회와 정부 간 관계 변화를 살펴보면, 당시 국민들이 어떤 방향으로 권력을 견제하고자 했는지, 또 어느 시기에 대통령제·의원내각제가 부각되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본 글은 [헌법 주석서(법제처 연구용역), 한국헌법학회(2008), 연혁]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법률 해석과 적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법률 자문을 대체할 수 없으며, 구체적인 법률문제는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학술적·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 신념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