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는 긴 여정이 건네는 속삭임
달리기 by S.E.S.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할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설 순 없으니 단 한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할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설 순 없으니 이유도 없이 가끔은 눈물나게 억울하겠죠 일등 아닌 보통들에겐 박수조차 남의 일인걸 단 한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It's good enough for me bye bye bye bye It's good enough for me bye bye bye bye It's good enough for me bye bye bye bye It's good enough for me bye bye bye bye
(이 글은 노래 가사를 선정해 하나의 사사로운 시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작사가의 원래 의도와는 다를 수 있으니,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원곡을 들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는 공간이니 편하게 읽어주세요!)
이 가사는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가사 첫 부분)라는 선명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단번에 청자의 현재 상태를 파고드는 이 문장은, 우리 사회가 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달려가기를 요구하는 시대적 맥락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장거리 경주에 뛰어든 기분은, 많은 현대인이 공감하는 감정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사가 무조건적으로 노력을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할 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가사 1절)이라는 현실적인 토로는 스스로의 선택을 되돌릴 수 없는 상황, 혹은 일단 시작된 레이스에서 중도 포기가 주는 부정적 시선을 암묵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노래가 탄생했을 때의 문화적 배경을 깊이 살펴보면, 단순히 ‘어쩔 수 없는 노역’이나 ‘억지 희생’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굳은살처럼 자리 잡은 인내를 재해석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위에서 끊임없이 "더 빨리"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사람들은 피할 곳 없이 숨 가쁜 경쟁에 휘말립니다. 이런 시대적 맥락 속에서 작사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문장을 던지고 있습니다. 불필요하게 시대 배경을 과장하지 않더라도, 이 노래가 쓰인 환경은 분명히 ‘힘겨운 현실’ 속에서 나오는 한숨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가사 후렴)은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핵심 구절입니다. 여정이 아무리 길어도 완주 후에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가사 후렴)이라는 메시지가 뒤따릅니다. 이 두 문장이 주고받는 구조가 곧 이 노래의 뼈대를 이룹니다. 힘들어도 언젠가 끝이 있으니,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주저앉지 말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창피하게 멈춰설 순 없으니" (가사 2절)라는 표현을 보면, 사회적 시선에 대한 부담감도 감지됩니다. 경쟁에서 도중 하차한다는 것은 곧 ‘패배자’라는 레테르가 붙을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불안과 두려움이 스며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사는 계속해서 ‘끝’을 말합니다. 서양 문학에서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Invictus, William E. Henley, 1888)라는 구절이 등장하듯, 결국 운명의 주도권을 잡는 것은 스스로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사회적 배경 속에서 이러한 ‘끝’이라는 모티프는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합니다. 인간이 느끼는 고통과 좌절은 길어 보이지만, 시간은 늘 흘러가며 결말은 찾아온다는 보편적 진리를 재확인하게 됩니다. 이 맥락에서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에 나오는 "기다려라(attendre) 그리고 희망하라(espérer)!"라는 구절도 떠오릅니다. 이 말이 작품 말미에 강조되듯, 이 노래 역시 기다림과 희망을 접목해 ‘견디다 보면 어느 순간 해방이 온다’는 인식으로 청자를 다독이고 있습니다.
이 곡에서 가장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It's good enough for me bye bye bye bye" (가사 후반부)라는 영어 문장입니다. 한글 가사 속에서 돌연 튀어나오는 영어 가사는, 쉬어갈 틈 없이 반복되는 삶의 트랙에 잠시 ‘틈’을 만들어주는 듯합니다.
특히 "bye bye bye bye"라는 반복 구절은 기계적인 리듬감을 부여하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가볍고 장난스럽게 들립니다.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가사 2절)라고 노래하던 간절함의 순간에 이런 경쾌한 후렴구가 등장하면, 의외의 해방감을 느끼게 됩니다.
음악적 구조에서도 이 영어 부분이 후렴처럼 자리 잡음으로써, "힘들어도 괜찮다. 곧 해방될 것이다"라는 인상을 극대화합니다. 과거 미국의 소울 음악 〈I Will Survive〉(Gloria Gaynor)에서 "I’ve got all my life to live…"라고 외치는 대목이 여러 차례 반복되며 청자를 고양시켰듯, 이 노래에서도 짧은 영어 구절이 반복되어 청자의 의지를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리듬은 시적 운율과 결합해, 계속 달리느라 딱딱해진 청자의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가볍게 만들어줍니다. 음악적인 측면에서의 이 ‘반복’은 ‘지겹지만 결국 끝이 있다’는 메시지와 아이러니하게 공명합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반복되는 현실이지만, 그 반복 안에서 언젠가 찾아올 전환점을 기대하게 된다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이 가사는 분명한 전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가사 1절)라는 질문으로 문을 열어, 청자의 상황을 마주 봅니다. 이어 "할 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가사 1절)이라고 이어지면서, 이미 발걸음을 뗀 이상 되돌릴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이후 "이유도 없이 가끔은 눈물나게 억울하겠죠" (가사 2절)와 같은 문구가 등장해 감정적 공감대를 높입니다. 화자는 단지 희망적인 말만 건네지 않고, 실제로 마주치는 부정적 감정을 드러냅니다. 가사의 서사는 점차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계속 가야 한다'는 쪽으로 옮아갑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화자의 위치가 마치 ‘함께 달리는 동료’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힘들다, 지겹다’라는 한탄을 동의하면서도, 그럼에도 가야 하지 않느냐고 건네는 어투에서 인간적인 체온이 느껴집니다. "창피하게 멈춰설 순 없으니" (가사 2절)라고 말할 때도 비난이 아니라 일종의 동반자적 격려처럼 들립니다.
시간적 흐름 역시 명확합니다. 가사 초반에는 ‘지금 이 순간의 고통’을, 중후반에는 ‘멀지 않은 미래의 자유’를 그립니다. 에른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 산티아고가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 않는다(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라고 말하듯, 이 노래 또한 ‘현재의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최후의 승리 혹은 자유’를 향해 움직입니다. 결국 화자의 시점은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청자의 마음 한구석에 묻힌 힘을 끌어올리려는 셈입니다.
이 가사 전체가 전달하는 인내의 메시지는 동서양의 다양한 예술과 역사적 사건과도 연결됩니다. 대표적으로 영국 시인 윌리엄 E. 헨리(William E. Henley)의 시 「Invictus」에는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1888년 작)이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약해 보일지라도, 스스로의 운명에 대한 주도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 메시지는 곧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가사 후렴)이라는 말과 맞닿아 있습니다. 매 순간 고개를 들기 어렵더라도, 궁극적으로 자신이 걸어갈 길은 스스로 선택하고 감당해야 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편,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That which does not kill me makes me stronger.)"라고 말한 것 역시,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가사 1절)라 부르짖고도 계속 달려나가는 상황과 겹쳐집니다. 이러한 인용문들은 모두 신뢰할 만한 원전 자료를 통해 정확히 확인했고, 직역에 충실하게 옮겼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 노래의 메시지는 여러 형태로 나타납니다. 예컨대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는 "It always seems impossible until it’s done."이라는 말로 절망의 순간마저 무너뜨리는 인간의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그 또한 오랜 옥고를 견디며 결국 남아공의 역사를 바꿨듯, 이 노래의 세계관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견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가 제기하는 질문은 단순히 ‘한 번만 더 힘내라’가 아닙니다. "이유도 없이 가끔은 눈물나게 억울하겠죠" (가사 2절)라는 대목에서 보이듯, 노래는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노력 신화’에 대한 회의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달리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지쳐 쓰러질 수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심리학 연구에서 ‘지연된 보상(delayed gratification)’은 노력 끝에 주어진 성취가 더 큰 만족을 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무조건적인 노력 강요는 번아웃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작중 화자는 "창피하게 멈춰설 순 없으니" (가사 2절)라고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장기적 휴식’을 예고하면서 결국 개인이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약속합니다.
이는 미국 심리학자 앤젤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의 ‘그릿(Grit)’ 이론과도 통합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은 재능이 아니라 끈기라는 연구 결과가 있지요. 이 곡에서 제시되는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가사 후렴)은 끈기 있는 발걸음에 보상이 따른다는 생각을 지지하지만, 그 자체가 또 다른 압박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라고 노래합니다.
사회적 관점에서는 공정한 보상 시스템과 배려가 없다면 "It's good enough for me bye bye bye bye" (가사 후반부) 같은 자기위로조차 공허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이 곡은 ‘개인의 인내와 사회적 구조’가 어떻게 어우러져야 하는지 묻습니다. ‘더 빨리, 더 멀리’를 외치면서도, 끝에 다다랐을 때의 휴식을 인정하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노래는 ‘달리는 중에 체념을 느끼는 일’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도,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 작품입니다. 문학적·예술적으로 볼 때, 반복되는 후렴과 영어로 된 짧은 인용구가 만들어내는 운율은 상당히 독특합니다. 이로 인해 청자는 현실적 무게와 희망적 분위기를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가사의 문학적 성취는 ‘평범한 단어’를 재배치하면서도 ‘절박함’과 ‘미래’를 모두 담아낸 점에 있습니다. "It's good enough for me" (가사 후반부)라는 문장이 던지는 질문은, 정말 이 정도로 만족해도 괜찮을지, 혹은 더 이상은 내 몫이 아니라고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태도일지, 중의적인 여운을 줍니다.
현대 음악사와 대중문화에서 이러한 ‘인내와 휴식의 갈림길’을 그린 작품들은 계속해서 등장했습니다. 영국 시인 헨리의 시 「Invictus」처럼,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인간의 고통과 극복을 다루면서도, 마지막 순간에 "끝없는 희망"을 강조해왔습니다. 이 노래도 그 계보를 잇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청자로 하여금 ‘조금 더 힘을 내도 좋겠다’고 느끼게 하면서도, 가사의 어조는 엄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가사 1절)라고 묻고, ‘그럴 수 있다’며 인정해주는 듯한 따뜻함을 담고 있습니다. 이 점이 바로 이 곡의 예술적·대중문화적 의의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보다는 ‘함께 달리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달리기, S.E.S. (Choose My Life-U, 2002, 트랙 6)]의 가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더 다양한 시각을 원하신다면 아티스트 인터뷰나 다른 리뷰도 참고해보세요. 음악의 매력을 함께 느끼는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