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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의 재치있는 에세이-일상에 대한 경쾌한 전복

로제타 스톤에서 자전거까지, 가볍고 경쾌한 인생론과 통찰

(본 글은 인문학 전문서적의 내용을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학문적 정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내용이 원문의 의도나 철학적 해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인문학적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 및 관련 전문가의 저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


I. 로제타 스톤과 인간 해석의 난관

‐ 인간이 만든 수수께끼조차 이리 어려운데, 신의 의도 해석은 과연 어떨까요


마크 트웨인은 <As Concerns Interpreting the Deity>에서 고대 이집트의 로제타 스톤 번역 과정을 흥미롭게 소개합니다. 챔폴리옹을 비롯한 여러 학자가 14년 동안 20번이 넘는 번역 시도를 했지만 번역이 계속 달라졌다는 사실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상형문자조차 완벽히 해석하기 힘들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신의 의도>를 해석할 때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결론을 내린다고 트웨인은 꼬집습니다. 그는 “If the Rosetta‐stone idea had been introduced it would have defeated them, but entrails had no embarrassments for them.”(“만약 제사장들에게 로제타 스톤 같은 암호 해독 문제가 주어졌다면 완전히 당했을 텐데, 내장(새의 내장)은 그들을 결코 곤혹스럽게 하지 못했다.” ‐ 『What is man? and other essays』, p.7)라고 말합니다. 고대 로마 제사장들이 <새의 내장>을 근거 삼아 신탁을 번번이 완벽하게 해석했다고 믿지만, 과연 이집트 상형문자 같은 복잡한 과제를 받았다면 그렇게 자신 있게 굴었을지 반문하는 것입니다.


II. 신적 의도를 함부로 확신하는 태도에 대하여

‐ 고대 로마와 중세 잉글랜드의 사례로 살펴보는 ‘편파적 해석’


트웨인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관련된 예언, 또는 중세 잉글랜드의 혼란스러운 왕위계승 과정을 통해, 인간이 ‘신적 징조’를 얼마나 편리하게 해석해 왔는지 보여줍니다. 예컨대 황제의 어머니가 꾼 꿈을 비롯해, 대주교나 왕의 죽음 시점을 모두 “신의 심판”으로 연결 지으면서도, 실제 벌을 받아야 할 자들이 떳떳하게 살아가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면모를 통해, “It is only when we set out to discover the secret of God that our difficulties disappear. It was always so.”(“우리가 신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할 때만, 모든 난제가 마치 사라지는 듯 보이곤 했습니다. 예로부터 그랬습니다.” ‐ p.9)라고 꼬집으며, 인간이 자기 언어조차 제대로 해독하기 힘들면서도, 신의 의도에 대해서만큼은 ‘금세 알아낸다’고 여기는 태도가 얼마나 아이러니한지를 보여줍니다.


III. 토바코 (Tobacco)에 대한 통찰

‐ 내 취향에 맞으면 그게 최고의 시가가 아닐까요


<Concerning Tobacco>는 분위기가 전환되어, 담배(특히 시가)를 두고 벌어지는 인간의 ‘주관적 평가’를 다룹니다. 트웨인은 “No one can tell me what is a good cigar—for me. I am the only judge.”(“누구도 내게 어떤 시가가 좋은지 말해줄 수 없습니다. 오직 나만이 판단할 수 있지요.” ‐ p.45)라며,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기호를 유쾌하게 부각합니다. 그는 비싼 상표가 붙으면 “맛도 좋을 것”이라 믿는 편견, 혹은 정반대로 싸구려 시가라고 무조건 “최악”이라 깎아내리는 태도를 예로 들며, 심지어 손님들이 자신의 저렴한 시가를 기피하자 일부러 비싼 라벨을 떼어서 속인 뒤 반응을 살피는 일화를 소개하여, 우리는 ‘맛’이 아닌 ‘이름값’에 지배될 때가 많다는 점을 코믹하게 보여줍니다.


IV. 각자 취향의 절대성

‐ 남의 잣대보다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맛이 중요하다는 깨달음


트웨인은 고급이라 소문난 시가가 정작 자기 입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고 하며, 유럽 곳곳의 값싼 시가를 훨씬 선호한다고 당당히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미각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트웨인은 “내게 맞는 시가가 곧 최고의 시가”라고 일축합니다. 이 지점에서, 주관이 극도로 분화되는 영역을 다루면서, 인간이 어떻게 자기만의 기준을 부인하거나 반대로 극화시키는지 들춰내며, 결국 표준이란 남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선택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V. 벌 (Bee)의 세계, 거울을 들여다보다

‐ 여왕벌·일벌·수벌의 구조와 인간사회가 겹쳐 보이는 이유


<The Bee>는 벌집 생태를 기묘하게 인간사회와 연결해 보여주는 장입니다. 여왕벌 한 마리와 소수의 수벌, 그리고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벌(처녀벌)의 역할 분담을 소개하면서, 트웨인은 “Huber, Lubbock, Maeterlinck ... are agreed in denying that the bee is a member of the human family.”(“...그 어떤 권위자도 벌이 인간 종(種)에 속한다고는 주장하지 않습니다.” ‐ p.73)라고 언급합니다. 그러나 정작 벌들은 인간과 놀라울 만큼 유사한 행태를 보이며, 여왕벌이 늙으면 새로운 여왕벌 후보들이 결투를 벌이고, 패자가 도망치면 집단으로 살해당하는 모습은 인간정치의 암투를 연상시킵니다. 또한, 여왕벌에게 주어진 ‘날개’가 자유가 아닌, 밀실에 갇힌 상태에서 알을 낳도록 강제되는 상징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트웨인은 이 상황을 “winged child of the sun... doomed by the splendid accident of her birth”(“태양의 날개 달린 아이였지만, 그 화려한 출생 덕분에 되레 감옥 같은 왕궁에 갇혀버렸다” ‐ p.74)라 표현하며, 체계 속에서 개인이 소외되는 아이러니를 날카롭게 포착합니다.


VI. 인간다움의 역설

‐ 과연 벌이 ‘비인간적’인지, 오히려 ‘너무나 인간적인’ 것인지


트웨인은 벌집 사회를 설명하며, 그곳이 철저한 효율주의와 전문분업으로 운영된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 구체적인 자유와 존엄은 묵살됩니다. 이는 마치 산업화된 인간사회가 효율성에 집착할수록 개인이 소외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듯합니다. 그러면서도 벌들이야말로 “아주 인간적인 바보짓”을 서슴지 않는 존재가 아니겠느냐며 농담 섞인 추론을 곁들여, 과학자들의 단언에 반하는 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VII. 자전거 길들이기 (Taming the Bicycle)의 고군분투

‐ 넘어져야 배우는 법, 인생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Taming the Bicycle>는 1880년대 고바퀴 자전거를 배우던 마크 트웨인의 실전 경험담으로, 몸으로 부딪히며 겪은 시행착오를 솔직하게 풀어냅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매번 “올라타기‐넘어지기‐온몸에 연고 바르기”를 반복했다고 회상합니다. 특히 자전거를 탈 때 오른쪽으로 기울면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려야 한다는 역설적 움직임이 “인간의 본능에 역행해 더 어렵다”는 지적과 함께, “그 어떤 언어를 배울 때도 이렇게 넘어져 가며 배운다면 훨씬 이해가 쉬울 텐데”라는 농담을 덧붙이며, 실패를 통한 학습 메커니즘을 경쾌하게 보여줍니다.


VIII. ‘살아서’ 자전거를 사라

‐ “Get a bicycle. You will not regret it, if you live.”


트웨인은 자전거를 배운 뒤, “get a bicycle. You will not regret it, if you live.”(“자전거를 사세요. 살아남기만 한다면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 p.90)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자전거를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고 다치고 겁먹는 일이 있어도 계속 도전하라는 인생의 은유로 읽힙니다. 자전거를 타며 겪은 두려움, 관성, 그리고 엉뚱한 본능의 저항은 누구나 삶 속에서 마주하는 시행착오임을 상기시키며, 결국 이 과정을 통해 균형을 찾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유쾌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본 글은 [What is man? and other essays, Mark Twain (1906)]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인문학적 개념의 이해와 해석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전문적인 학술 논의를 대체할 수 없으며,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 관련 분야의 다양한 문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학술적·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 신념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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