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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천재 작가 마크 트웨인의 인간 본성 대탐구 3편

이기심과 선행의 경계를 파고드는 불후의 통찰

(본 글은 인문학 전문서적의 내용을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학문적 정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내용이 원문의 의도나 철학적 해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인문학적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 및 관련 전문가의 저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


I. <자발적 희생?>, 그 진짜 속내를 묻다

- 우리가 생각하는 ‘희생’이 과연 타인만을 위한 것인지 되돌아보는 시작점입니다.


마크 트웨인은 <우리는 진정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가?>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특히 본문의 “Instances in Point” 장(제3장)에 제시된 여러 사례를 통해, 인간의 행위가 겉보기와 달리 [자신이 먼저 만족을 얻으려는 충동]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합니다. 예컨대 한 인물의 ‘희생’이 정말 타인의 행복만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스스로의 내면적 만족을 충족하기 위한 결정이었는지 되짚어보게 합니다.

본문에서는 “The utterer of a thought always utters a second-hand one. (the utterer of a thought…)” – 『What is Man? and other essays』, “Instances in Point”와 같은 표현을 통해, 인간이 독창적인 생각을 스스로 ‘창조’하기보다는 외부 영향에 반응하고 조합하여 뱉어낼 뿐임을 시사합니다. 트웨인에 따르면, 그 영향이란 단순히 옆 사람의 말부터 문화, 종교, 사회적 기대까지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겉으로는 ‘고귀한 희생’을 표방하더라도, 실제로는 자신의 ‘내면 주인(Interior Monarch)’을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설명입니다.


II. 인간의 <내면 주인(Interior Monarch)>이라는 개념

- 인간의 모든 행동 뒤에 놓여 있는, 우리 안의 ‘진짜 군주’를 만나봅니다.


트웨인은 우리 내면에 [자신만을 우선하는 강력한 주체]가 자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주체는 때로는 양심, 때로는 욕망, 때로는 자긍심 등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근본적으로는 ‘나’를 기쁘게 하려는 충동의 집약체입니다. 이를 두고 원문에서는 “Neither you, nor I, nor any man ever originates a thought in his own head. The utterer… second-hand one.”와 같은 구절로, 인간이란 철저히 외부 요인과 내면의 쾌·불쾌 판단에 따라 움직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희생’은 어떻게 해석될까요? ‘내면 주인’을 만족시키는 가장 빠른 경로가 누군가를 돕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타인을 위한 선행처럼 보이지만, 실은 타인을 도우며 스스로의 자긍심이나 도덕적 충족감을 얻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런 이유로, 트웨인은 [“No man has ever sacrificed himself; there is no instance of it upon record anywhere.”]라며 단언적으로 말합니다(“Instances in Point” 참고). 그러나 이는 이타심을 전면 부정한다기보다, 선행의 진짜 동기가 무엇인지 면밀히 해부해보자는 도전적 메시지로 읽힙니다.


III. <‘희생’의 예시>에 감춰진 의도

- 숲속 설교자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가족과의 관계를 통해 본 진짜 동기입니다.


트웨인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숲속에서 설교자로 일하던 인물을 소개합니다. 이 인물은 수입이 좋은 직장을 포기하고, 뉴욕 빈민가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데 헌신합니다. 겉보기에는 아주 고결한 ‘희생’ 같지만, 트웨인은 그 행위로 인해 가족이 더 큰 희생을 떠안게 되었음을 지적합니다. 예컨대 그는 수익성 좋은 직책을 포기했다... 그는 노쇠한 아버지를 부양하고 있었다. <“He relinquished a lucrative post … He was the support of a superannuated father…”>라는 서술이 이어지면서, 노부모와 동생들의 삶이 동시에 무너진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그는 ‘주님을 위해’라며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인물은 뉴욕의 선교 단체로부터 크게 인정받지 못해 자존심이 상하고, 결국 다시 돌아옵니다. 트웨인은 그가 원래 바랐던 것은 [“distinction, the praise and grateful approval … of his fellow-workers.”]라는 사실을 콕 집어냅니다. 즉, 애초에 타인에게 박수를 받고 싶었던 자기만족이 더 강력한 동기였다는 이야기입니다. 트웨인은 여기서 [“It was bound to expose itself sooner or later. He preached to the East Side rabble a season … ‘hurt to the heart, his pride humbled.’”]라고 덧붙이는데, 이는 결국 ‘희생’의 물리적 대상이 가족이 되었고, 본인은 그 결과로 인한 자존감 상실을 겪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IV. <‘좋은 일’ 뒤에 자리한 나를 위한 만족>

- 선행을 하면서 느끼는 기쁨과 내적 보상이야말로 트웨인이 말하는 핵심 지점입니다.


트웨인은 일상의 작은 예시, 즉 호텔 사용 시의 팁(tip) 문화 역시 같은 논리로 설명합니다. “You are not obliged to do it, therefore its source is compassion…”라는 말을 시작해, 결국 우리는 ‘내가 창피를 당하지 않으려는 마음’, ‘주변 시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팁을 준다고 해석합니다. 누군가에게서 고맙다는 인사를 듣지 못하면 씁쓸해지고, 과도하게 팁을 주면 ‘내가 손해 본 것 아닌가’ 하며 후회한다는 것입니다.

트웨인의 논리는 단순합니다. [희생이나 배려 같은 행동도 결국 자신의 내부적 만족을 위해서입니다.] 그 만족은 때로는 ‘도덕적으로 옳은 일을 했다는 뿌듯함’일 수도 있고, ‘체면을 지켰다’는 안도감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무엇이 되었건 우리의 행동이 완전히 이타적인 목적으로만 이루어진다는 확실한 증거를 찾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V. <‘내면 주인’을 숨기는 기존 도덕 담론에 대한 비판>

- 의무(duty)나 희생을 강조하는 종교·도덕 체계에 대한 트웨인의 새로운 시각을 살핍니다.


원문 후반부에는 군인들의 ‘의무(duty)’ 이행 사례가 제시됩니다. 침몰하는 배에서 여성과 아이들만 탈출시키고, 군인들은 모두 뒤에 남아 죽음을 맞이한 감동적인 서사가 등장합니다(“The Berkeley Castle” 사례). 트웨인조차 이를 매우 용감한 선택이라고 칭송하며, 스스로가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고백합니다. 다만 그는 이 상황마저 ‘훈련(training)’의 소산이라고 봅니다. 군인들이 받을 수 있는 최대의 내적 만족이 [‘군인 정신을 지킨 내 자부심’]이라는 것이며, 이는 기나긴 군사 훈련과 경험 속에서 형성된 ‘내면 주인’의 요구라는 설명입니다.

“They could not content that spirit by shirking a soldier’s duty…”라는 부분에서, 군인들은 오로지 군인으로서의 이상(理想)을 지키는 것만이 내적 만족을 극대화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는 곧, 평범한 사람이 갑자기 영웅적 행위를 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훈련과 환경이 만들어낸 주체]가 우리가 ‘위대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촉발한다는 것이지요.


VI. 환경(association)과 훈련(training)의 힘

- 우리는 타고난 기질과 외부 환경이 결합된 결과물임을 다시 확인합니다.

트웨인은 교육이나 종교 교리만이 ‘훈련’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He is a chameleon; by the law of his nature he takes the color of his place of resort.”]라는 문장을 통해, 인간이 주변 환경의 색을 스스로 흡수하는 특성을 지적합니다. 교회, 학교, 직장, 친구 관계 등 수많은 외부 영향 속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믿게 되는지는, 상당 부분 운이나 우연적 만남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운명론적으로 흐르지는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부정적인 환경에 놓여 있다면, 그곳을 떠나 새로운 ‘연결망(association)’으로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개선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결정마저도 ‘외부의 한마디’가 불씨가 되어야만 한다고 트웨인은 말합니다. 사람은 자력으로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한다고 믿지만, 실상은 작은 책 한 권, 지인의 충고 한마디가 바뀌어가는 계기가 되곤 한다는 것이지요.


VII. <선행의 이유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

- 자기만족의 동기를 파헤치는 일이 우리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끄는가를 검토합니다.

트웨인은, 그러한 내적 동기를 솔직하게 마주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말합니다. [거짓된 ‘이타심’이 아니라, 내가 즐거워서 타인을 돕는다는 사실을 직시하자는 주장]입니다. “If you get that, you get your own approval, and that is the sole and only thing you are after.”라는 원문 구절처럼, 결국 스스로의 ‘인정’이 필요한 존재임을 깨달을수록, 우리가 행하는 선한 행동에는 오히려 일관성과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것이 트웨인의 관점입니다.

나아가 그는 “Diligently train your ideals upward and still upward…”라는 ‘Admonition(훈계)’를 내놓으면서, 이상(理想)을 높이 끌어올리면 결과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이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즉, <나의 이익을 위해 선행을 택하는 훈련>을 발전시킬 때, 그 선행이 내게도, 남에게도 결국 ‘플러스’가 된다는 것입니다.


VIII. 마크 트웨인의 역설: <결국 이기심이 선을 창출한다?>

- 자기만족으로 시작된 선행이 왜 부정되지 않고, 오히려 수용되어야 하는지 결론을 맺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내가 이기적이라서 남을 도왔다는 건가?”라는 의문에 당혹스러워합니다. 그러나 트웨인은 그 이기심이 <고결한 목적과 만나면> 얼마든지 사회적이고 이타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봅니다. [“Whenever you read of a self-sacrificing act or hear of one, ... take it to pieces and look for the real motive.”]라는 요청은, 우리의 선행이 더 ‘정직한’ 기반 위에 서도록 돕습니다.

트웨인의 시선에서, 진정한 ‘선’이란 자기만족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행복하고, 그 행복이 타인에게도 이익이 되는 ‘조건’을 만들도록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윤리적 삶이라는 것이지요. 결국 그는 “자신의 내면이 만족하고, 동시에 타인도 이익을 얻는 길을 끊임없이 훈련하라”라고 조언합니다. 지금도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과 ‘희생’의 장면들이, 사실은 스스로의 만족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조금 더 솔직한 삶에 닿게 된다는 통찰을 전하고 있습니다.


(본 글은 <What is man? and other essays, Mark Twain (1906)>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인문학적 개념의 이해와 해석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전문적인 학술 논의를 대체할 수 없으며,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다양한 문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학술적·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 신념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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