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확장으로 살펴보는 규범성의 흥미진진한 세계
(본 글은 인문학 전문학술 논문의 내용을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학문적 정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내용이 원문의 의도나 철학적 해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인문학적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 및 관련 전문가의 저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 원문 전부는 KCI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영국 경험론의 거장인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도덕 판단이 “개인의 느낌”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가 말하는 도덕감이란, 특정 행위나 성격을 볼 때 우리가 느끼는 쾌락 혹은 불쾌감에서 비롯되는 승인 혹은 불승인의 감정을 말합니다. 흄은 이 도덕감이 [“첫째, 오직 이성만으로는 어떤 의지 활동의 동기가 될 수 없다. 둘째, 이성은 의지 방향을 결정할 때 결코 정념과 상반될 수 없다.”]고 하면서(Hume (1978), p.413), 궁극적으로 도덕이 [“정념과 감정을 기반으로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이성은 오직 정념의 노예이며 노예이어야만 한다”]는 유명한 언급과도 이어집니다(Hume (1978), p.415). 그렇지만 흄은 단순히 [“자기 이익(self-interest)만으로는 도덕감이 충분치 않다”]고 보았고(원문, p.55), “타인에게서 보이는 행위나 품성에 대한 쾌락·고통의 느낌” 즉 공감이 도덕의 중요한 출발점임을 역설했습니다.
흄에 따르면, 우리는 단순히 자기 이익이나 만족에서 벗어나 [“타인의 감정을 우리 안에 재현해낼 수 있는 강력한 자연적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공감이라 부릅니다(Hume (1978), pp.575-576). 예컨대 흄은 [“다른 사람의 정념 자체가 마음에 직접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의 원인들과 결과들로부터 추론할 뿐이다. 그러나 그 추론이 극히 쉽게 이뤄진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 정념을 자기 것처럼 느낀다.”]고 말합니다(Hume (1978), p.576). 이렇듯 공감은 관념연합과 인상연합(이중연합)을 통해 타인이 느끼는 감정을 우리도 어느 정도 ‘전달’받게 해주는 메커니즘입니다. 하지만 거리에 따라 정도가 달라지거나, ‘나와 밀접한 사람’일수록 더 강하게 작동하는 한계도 있습니다(Hume (1978), p.581). 즉 이른바 ‘제한된 공감(limited sympathy)’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공감이 지나치게 편파적이라면, 멀리 있는 타인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지고 가까운 사람에게만 감정적으로 치우칠 우려가 있습니다. 또한 [“비옥한 토지와 온화한 기후는 지금 황무지라고 해도, 과거에 이롭게 작용했음을 상상함으로써 쾌락을 느끼게 한다.”]는 식으로, 잠재적 상황을 미리 떠올릴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도덕 평가가 가능하다고 흄은 설명합니다(Hume (1978), p.585). 흄은 이 두 가지 문제(‘공감의 편파성’과 ‘실행되지 않은 덕에 대한 평가’)를 극복하기 위해서 [“확고하고 일반적인 관점(steady and general point of view)”]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Hume (1978), p.582). 이를 통해 [“끊임없는 모순을 제거하고, 대상이 주는 보다 안정적인 판단”]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Hume (1978), p.583). 특히 “누더기 속의 덕도 덕(virtue in rags is still virtue)”(Hume (1978), p.584)이라 말할 수 있으려면, 지금 당장 발휘되지 못한다 해도 그 사람의 본성을 반성적·상상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이때 일반적 관점에서 ‘미발현 덕’까지도 인정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일반적 관점을 취할 수 있을까요? 흄은 이를 반성과 상상력을 통해 가능하다고 봅니다(원문, p.59). 예컨대, [“만약 우리가 역사 속 폭군인 네로(Nero)에 대해서도, 그 시대로 들어가 그 폭정을 직접 겪었다고 가정해 본다면, 네로의 성격을 우리 이웃만큼 강력하게 혐오할 수 있다.”]는 식입니다. 이는 실제로 공포를 느끼는 것보다 덜 생생하지만, 그래도 ‘보편적 관점’에 가까워지도록 도움을 준다는 것입니다(Hume (1978), p.584). 이처럼 흄에게 반성이란 “논증적 추론”을 하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대한 2차적 반추능력”], 곧 이미 생겨난 느낌을 한 단계 떨어져 숙고하고 교정해 보는 작용입니다(원문, p.59). 흄은 “이성은 오직 정념의 노예”라고 말했지만(Hume (1978), p.415), 그렇다고 도덕에서 이성이 쓸모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관점의 교정, 감정의 교정 등을 위해 [“반성에 토대를 둔 추론”]이 필요한 것이지, 이성 자체가 도덕의 근본 동기일 수는 없다는 의미입니다(원문, p.74).
비슷한 시기, 아담 스미스(Adam Smith)도 “공감이 타인의 기쁨·슬픔을 함께 느끼는 핵심 원리”임을 주장했고, 이를 [“상상에 의한 입장 전환”]으로 설명했습니다(Adam Smith (1976), p.9). 스미스는 관찰자가 불편부당하게 타인의 상황을 상상하며, [“내가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느낄 것인가?”]를 떠올리는 데서 공감이 생긴다고 보았습니다. 스미스가 말하는 [“이상적 관망자”] 개념은 한층 더 객관적인 눈을 지향하지만, 흄은 [“현실에서 완전히 초월적 입장을 취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관습·언어·사회적 효용 등에 기반을 둔 [“일반적 관점”]이 훨씬 실효성이 높다고 말합니다(Hume (1978), p.603). 결국 “충분히 다의적이고 견고하며, 접근 가능한 정보에 기초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관점을 찾으려면, [“상상과 반성으로 공감을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 흄의 결론입니다(원문, p.67).
흄은 덕(virtue)을 “마음이 따르는 느낌”으로, 악덕(vice)을 “마음이 따르지 않는 느낌”으로 정의합니다(원문, p.68). 그리고 덕을 다시 자연적 덕과 인위적 덕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여기서 정의(justice)가 대표적인 인위적 덕으로 등장합니다. 흄은 [“인간은 자신과 가까운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들의 복지에 대해 자연적으로 무관심하기 때문에, 정의와 같은 인위적 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Hume (1978), p.488). 재화의 부족, 이기심과 같은 ‘인간존재의 제약조건’ 때문에, 단지 공감만으로는 부족하며, 이를 교정하기 위해 [“사회의 선을 지향하는 규칙과 관습”]이 구성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충분히 자비롭고 모두가 서로를 우선시한다면, ‘정의’라는 덕은 애초부터 필요치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흄은 덧붙입니다(Hume (1978), p.494). 그러므로 정의 같은 인위적 덕은 [“자기애(탐욕)를 제한해야 한다는 반성적 통찰”]로부터 발달합니다(원문, p.69). 애초에 공감만으로는 보편적 정의를 지키기 어렵지만, 반성을 통해 일정한 “규칙과 관습”을 받아들여 지속적으로 실천하게 될 때, 사회적으로 공감이 확장되며 정의 또한 도덕적 지위를 얻는다는 설명입니다(Hume (1978), p.520-521).
흄은 [“처음엔 사람마다 특유의 관점과 이해관계가 다르기에 도덕적 합의에 이르기 힘들다.”]고 말합니다(Hume (1978), p.582). 하지만 언어·담론을 통해, “서로 반성하고 교정하면서” (Hume (1978), p.583) 점차 [“일반적 효용성에 근거한 규칙”]을 만들고 공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흄에게는 이성 홀로 도덕 판단을 이끌 수 없으나, [“공감과 반성이라는 ‘감성(sentiment)의 교정 장치’가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하면서 인간의 편파성과 무질서를 제어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자연적 덕과 인위적 덕도 단절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반성적 과정을 통해 서로 보완적인 체계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원문, p.79).
공감이 도덕 판단의 첫 출발점이라면, 반성은 그 공감을 교정·확장하여 보편성과 합리성을 부여하는 두 번째 장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흄은 [“단순한 감정의 편향을 넘어서, 사회의 조화와 소통 가능성까지 고려하는 ‘일반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Hume (1978), p.603). 그리고 그러한 관점을 취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다시금 재검토하고 교정하는” 반성적 과정을 필수로 보았습니다. 결국, 흄은 [“이성은 정념의 노예”]라는 말을 통해 “감정이 도덕의 근원”임을 강조하면서도, [“반성과 상상으로 정념을 교정해내는 과정”]이야말로 도덕이 사회적으로 정당화되고 공유될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자연적 덕과 인위적 덕 사이의 간극은 반성적 공감을 통해 보완되고, 개인적 이익과 사회적 효용을 조화시키는 토대가 마련됩니다.
(본 글은 [양선이, "흄의 도덕감정론에 나타난 ‘반성’ 개념의 역할과 도덕감정의 합리성 문제" <철학 제119집> pp.55-87 (2014), KCI 우수등재]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인문학적 개념의 이해와 해석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논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전문적인 학술 논의를 대체할 수 없으며,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다양한 문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학술적·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 신념과는 무관합니다. 원문 전부는 KCI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https://www.kci.go.kr/kciportal/po/search/poArtiTextSear.kci )
이 논문은 전통적인 ‘이성과 감정’의 이분법을 넘어서, 공감과 반성이 어떻게 결합해 도덕적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풀어냅니다. 특히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느끼는 ‘편파성’을 어떻게 극복하고, 타인과 논의하며 사회적 규칙을 형성하는지를 실제적인 심리 기제로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현대 윤리학에서 제기되는 ‘보편 타당성 vs. 상대주의’ 논란을 흄의 시각으로 다시 돌아보게 만들며, 이웃 철학자 아담 스미스와의 비교 논의 또한 풍부한 지적 즐거움을 줍니다. 도덕이론의 감성적 기원을 고민하는 분들께 꼭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