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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권보호의무,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묻다

독일 헌법이론을 거울삼아 본 우리 헌법의 과제

(본 글은 인문학 전문학술 논문의 내용을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학문적 정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내용이 원문의 의도나 철학적 해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인문학적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 및 관련 전문가의 저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 원문 전부는 KCI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I. 기본권보호의무란 무엇인가

- ‘사인(私人)’의 위협에서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지켜내기


“국가는 제3자(사인)의 위법한 가해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적 법익이 침해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적절하고 효율적인 보호조치를 취해야 하며, 이를 소홀히 할 경우 곧 국가의 부작위가 기본권 침해가 될 수 있다.”(원문 p.37) 이는 전통적인 방어권 논리가 ‘국가가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라는 소극적 요청이었다면, 기본권보호의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국가가 직접 나서서 국민이 제3자에게서 침해당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라는 적극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임을 뜻합니다. 이 문제는 특히 “국가 공권력에 의한 직접 침해가 아니라 사인에 의해 기본권이 해를 입었을 때에도, 국가는 ‘기본권보호의무’를 부담하게 된다”(원문 ‘논문요약’)라는 물음에서 출발합니다. 대표적 사례로 ‘낙태 문제’가 있으며, 임부(사인)의 행위가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할 때, 국가는 형사처벌 규정 등 구체적인 입법 형성으로써 태아를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국가가 사인의 가해를 무제한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해서 모든 영역에 무제한 개입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며, 극히 제한된 영역에서만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정당화된다”(원문 ‘논문요약’)는 점도 함께 강조됩니다.


II. 독일 헌법에서의 기본권보호의무

- 낙태 판결 등 연방헌법재판소의 흐름을 통해 배우기


1) 낙태 판결을 통해 본 보호의무 확립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대표적 사례로, 소위 ‘낙태 1(Abtreibung 1) 판결(BVerfGE 39, 1)’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모(母)에 의한 태아의 생명권 가해 상황에서도, 국가는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원문 p.38 참고) 이는 형법상 낙태죄를 통한 제재나 예외 사유의 제한 등을 통해 국가가 ‘적절하고 효율적인 보호조치’를 취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2) ‘슐라이어 납치 사건’과 입법 형성권의 문제


또 다른 사례인 ‘슐라이어(Schleyer) 납치 사건(BVerfGE 46, 160)’에 따르면, “국민의 생명·신체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특정 법을 무조건 제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상황별로 탄력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시했습니다(원문 p.39). 즉, 헌법에서 도출되는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가 인정되더라도, 개별 사건마다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입법자와 행정부의 광범위한 재량이 허용된다는 취지입니다.


3) 안전과 자유의 균형


독일 학계에서는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통해 자유를 보장한다. 안전이 없으면 자유가 실질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Isensee, 1983, S.19)고도 분석합니다. 그러나 무제한의 국가개입은 다른 자유권을 오히려 저해할 수도 있어, 보호영역을 일정 부분 한정하고 있습니다.


III. 우리 헌법재판소의 보호의무 수용

- ‘과소보호금지원칙’이라는 새로운 심사척도


1)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사건에서의 출발


우리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국민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했는지 여부”(헌재 1997.1.16. 90헌마110 등)를 별도로 심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과소보호금지원칙’이라 불리는 원칙으로, 입법자나 행정부가 너무 미흡한 법적‧행정적 대응을 해서 피해자의 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는 상황을 막자는 취지입니다. 실제로 헌재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신체라는 중대한 법익을 보호해야 할 책무를 충분히 수행했는지, 그 정도가 명백히 불충분하지는 않은지”를 중점적으로 보았습니다. “만약 아무런 보호조치도 없거나, 취한 조치가 명백히 부적합‧불충분한 경우에 한해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보호의무 위반을 확인한다.”(헌재 1997.1.16. 90헌마110 결정, 판례집 9-1, 121-122)


2) 핵심 쟁점: ‘명백성 통제’


이처럼 우리 헌법재판소는 ‘과소보호금지원칙’ 위반을 판단할 때, “입법자의 판단이 현저하게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만 개입하는 즉, ‘명백성 통제(Evidenzkontrolle)’를 주로 사용합니다(헌재 2008.7.31. 2004헌바81 등). 다시 말해, 입법 재량을 폭넓게 인정하되, 완전히 실패한 수준이 아닌 이상 쉽게 위헌이라 단정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IV. 보호법익은 어디까지인가

- 생명과 신체의 자유, 그 외 영역의 한계


1) 기본권보호의무 ‘전 영역’ 적용 가능성?


‘국가는 모든 기본권을 사인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라는 포괄적 견해도 있지만, “기본권보호의무의 보호법익을 무제한적으로 확대하면 국가개입이 지나치게 커져 오히려 다른 자유들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원문 p.35)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정교한 제한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이어집니다.


2) 생명‧신체 영역의 우선적 보호 필요성


독일과 한국 판례 모두, 기본권보호의무가 가장 명확히 인정되는 대상은 “생명과 신체”입니다. 원문에서도 “따라서 기본권보호의무의 보호법익은 일신전속적인 생명 및 신체의 자유에 국한할 필요성이 있다”고 하며(원문 ‘논문요약’), 재산권 등 다른 법익은 일반적 사법절차로 구제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논리가 제시됩니다.


V. 주관적 보호청구권의 인정 여부

- 헌법상 ‘당신은 나를 보호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1) 찬반 양론


일부 학설은 “기본권보호의무는 객관적 국가과제로서 개인에게 직접 ‘보호청구권’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봅니다(원문 p.47 참고). 왜냐하면, 구체적 상황에 대한 판단과 수단 선택은 국가가 넓은 재량으로 결정해야 하므로, 이를 곧장 국민의 권리로 삼기는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다른 견해에 따르면, “극도로 긴급한 위험이 사인에 의해 발생하고 있고, 이를 국가가 방치하면 피해자의 기본권은 실질적으로 보장받기 어렵다”며, 일정 수준의 주관적 보호청구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원문 p.47).


2) 현실적 적용 가능성


우리 헌법재판소나 학계는 중도적 태도를 취합니다. “국가가 보호의무 이행을 위해 행사할 조치가 사실상 유일한 대안인데도 그것을 전혀 하지 않는 경우, 피해자는 국가에 ‘그 수단을 쓰라’고 요구할 수 있다”라는 식입니다. 즉, 국가의 부작위가 ‘명백히’ 기본권 침해 상황을 유발하는 경우에는 주관적 청구권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VI. 과잉금지원칙과 과소보호금지원칙의 관계

- 독자적 심사기준인가, 단일 원칙의 두 얼굴인가


1) ‘동일하다’는 시각


일부에서는 “과잉금지원칙이 국가행위의 상한(上限)을, 과소보호금지원칙이 국가행위의 하한(下限)을 설정할 뿐이므로, 결국 하나의 비례성 원칙에 귀결된다”고도 봅니다(원문 p.48).


2) ‘독자적 원칙’이라는 시각


반면 “과잉금지원칙은 국가의 직접적 침해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고, 과소보호금지원칙은 국가의 부작위로 인한 보호 실패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므로, 상호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는 견해도 뚜렷합니다(원문 pp.49~50). 국가침해냐, 국가방치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서, 별개의 심사 기법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3) 헌법재판소의 태도


우리 헌법재판소 역시 두 원칙을 명시적으로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국가행위에 의한 제한이 비례성을 갖추었는지는 과잉금지원칙으로, 기본권보호의무를 등한시한 부작위인지 여부는 과소보호금지원칙으로 심사한다.”(원문 p.36)라는 식으로,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VII. 과소보호금지원칙, 어떻게 심사할 것인가

- ‘명백성 통제’ vs ‘적절성‧효율성‧비례성’ 삼단계 심사


1) 기능법설: 명백성 통제를 강조


기능법설에서는 입법자의 예측판단이 “명백히” 틀린 경우에만 위헌성이 인정된다고 보아, 심사 강도를 완화합니다. 이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정말로 입법자가 사용한 수단이 전혀 효과가 없거나 잘못된 것인지”를 살펴보되, 어느 정도 합리적 설명이 가능하면 인정하는 방식입니다(원문 p.50).


2) 실체법설: 적절성, 효율성, 그리고 협의의 비례성


한편 실체법설은 더욱 세분화된 심사 기준을 제시합니다. 예컨대 “1단계에서 해당 보호조치가 기본권을 보호하기에 적절한가, 2단계에서 더 효율적인 조치가 있는가, 3단계에서 그로 인해 제3자의 권리가 과도하게 침해되지 않는가” 순으로 평가하자는 것입니다(Chr. Calliess, 원문 p.50). 즉 국가가 취한 조치를 하나하나 세밀하게 따져보자는 입장입니다.


3) 시사점


우리 헌법재판소가 현재처럼 명백성 통제만을 고수할 경우, 입법자가 보호조치를 대체로 갖추었다고 주장하면 헌법적으로 문제없다고 보기 쉽습니다. 반면 실체법설처럼 세분화된 심사 기준을 적용한다면, 입법자가 보호조치의 효과성을 더 체계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VIII. 맺음말 – ‘국가’는 어떻게 보호의무를 이행해야 할까

- 생명‧신체의 최우선 보호와 신중한 국가 개입


“안전 없는 자유는 불가능하고, 자유 없는 안전은 무가치하다”(원문 p.40)는 말이 잘 보여주듯이, 국가는 국민의 생명·신체와 같은 핵심 법익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를 무제한적으로 확대하면 자유권을 오히려 위축시키게 되므로,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처럼 ‘중대한 법익’에서만 국가가 강한 개입을 우선 허용한다는 것이 독일과 우리 헌법재판의 공통된 태도입니다. 결국 “기본권보호의무는 헌법상 국가가 담당해야 할 과제이지만, 그 수행 방식은 법률을 통해, 혹은 행정권의 재량을 통해 결정되며, 오직 명백히 부적절하고 비효율적인 경우에만 위헌성이 인정된다.”(원문 p.36, 40)라는 점에서, 우리 역시 앞으로 논의를 거쳐 더욱 체계적인 기준을 마련해갈 것으로 보입니다.


IX. 독자의 평가와 일독을 권하는 이유


이 논문은 ‘국민의 헌법적 권리는 국가가 당연히 보장해야 한다’는 상식적 믿음을, 구체적으로는 ‘사인 간 분쟁에서조차 국가가 어떤 법적 책임을 지는지’를 명쾌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독일과 한국의 다양한 판례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체계적으로 비교해 주어, 판례이론 공부에 깊이 있는 통찰을 안겨줍니다. 특히 “보호의무가 무제한이 될 수 없다”는 현실적 시각과, “그러나 생명‧신체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정신 사이의 균형점을 예리하게 짚어냅니다. 법학도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국가의 의무가 어디서 나오고 어디까지 미치는지를 탐구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본 글은 [이부하, “기본권보호의무의 헌법적 쟁점” <법조> pp.35~58 (2019), KCI 우수등재]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저자와 출판연도는 정확히 기재해야 합니다. 정확한 인문학적 개념의 이해와 해석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논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전문적인 학술 논의를 대체할 수 없으며,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다양한 문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학술적·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 신념과는 무관합니다. 원문 전부는 KCI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https://www.kci.go.kr/kciportal/po/search/poArtiTextSear.kc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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