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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의 법철학, 자연법이 돌아오다?

법실증주의와 자연법론을 둘러싼 새 지평을 찾아서

(본 글은 인문학 전문학술 논문의 내용을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학문적 정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내용이 원문의 의도나 철학적 해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인문학적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 및 관련 전문가의 저작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 원문 전부는 KCI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I. 전환기와 법담론

- 전환기에 드러나는 법사고의 문제 짚어보기


오늘날 거의 모든 분야가 급변하는 양상 속에서, 저자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이 시점은 법의 한계와 잠재력에 대해서도 재검토해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p.7)라고 강조합니다. 변화가 너무 빠르고 복잡해 “뭔가 구조물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지만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확실한 진단은 어렵다.”(p.8)라고도 말하지요. 법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국가·시장·기술·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문제의식을 다시 법으로 가져올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전환기는 “낡은 체제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새로 탄생한 근대국가는 ‘법의 지배’로 무장한 국가였다.”(p.8) 같은 역사적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대규모 변혁기마다 법담론이 강세를 보였는데, 이는 법이 인간의 현실적 욕구·제도적 질서·윤리적 가치라는 여러 요소를 함께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시기에 “법의 동태학에서 법의 생태학으로 가는 전환시대의 법철학이 ‘제한법학’으로부터 벗어날 때 그 가능성이 열린다.”(p.34)라고 요약합니다.


II. 법동태학에서 법생태학으로

- 법을 둘러싼 확장적 시각으로의 변화 살펴보기


독일 법철학자 한스 켈젠(Hans Kelsen)은 저서 『순수법이론』에서 “‘법은 세계를 보는 독자적인 창을 가진다’는 점을 밝히고자 했다.”(p.12)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관점은 법을 스스로 닫힌 질서로 간주하고 다른 영역과 구분하려는, 이른바 ‘법동태학(Rechtsdynamik)’적 사고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법이 사회·경제·정치·문화의 복잡한 환경 속에서 상호작용한다는 인식이 커졌습니다. 저자는 이를 ‘법생태학’적 접근이라고 부르며, “가령 기후변화로 봄과 가을이 짧아지면 우리 생활양식이 바뀌고, 이것이 근무환경·노사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듯, 법도 사방으로 연결된 사회생태적 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p.12)고 분석합니다.


이처럼 법을 사회생태적 맥락에서 이해하려면, 전통적인 법학이나 법철학의 경계를 넘는 시선이 필요해집니다. 저자는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 규제의 초국가화 내지 탈국가화를 강요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는 가히 모든 규범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p.9)라는 표현까지 쓰며, 국가법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 현상들을 지적합니다.


III. 제한법학에서 확장법학으로

- 법 개념과 법원(法源)의 폭넓은 이해 시도


전통적으로 법학자들은 법을 엄격히 구분하고 스스로를 ‘독자적 이론학문’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했습니다. 저자는 이를 “법적인 것을 명확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법의 최소요건을 찾던 제한법학”(p.13)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이 틀에서 벗어나 확장법학으로 나아가는 흐름이 감지됩니다.


1) 법개념의 확장

- 과거에는 ‘국가가 제정한 법률’을 곧 법으로 이해했지만, 이제는 초국가적인 상인법(lex mercatoria)이나 지역적 관습 같은 ‘비국가법’을 법의 범주에 포함하려는 시도도 늘어납니다. 저자는 이를 “비공식법, 연성법(soft law), 상인법 등과 같은 다양한 출처의 법이 실질적으로 작동한다.”(p.16)라고 설명하며, 국가법 중심주의가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2) 법원(法源)의 확장

- “법률 우위라는 원칙도 상대적이다. … 법률이나 판례 이외에 관습으로서의 법, 조리, 국민법감정, 학설, 여론 등의 법원성이 문제될 때, 이것들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일종의 원자재들이기 때문에 그 법원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가공이 필요하다.”(p.15~16)라고 지적합니다. 곧, 국가 입법만을 유일한 법원으로 보는 시각이 약화되고, 해석과 이론구성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3) 법주제의 확장

- 기본권, 생명윤리, 환경보호, 과학기술 등의 쟁점이 법적으로 다뤄지면서, “개별 실정법학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법원리와 결합해 분석하는 응용법철학”(p.15)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4) 법해석방법론의 다양화

- 헌법상의 추상적 가치(인간존엄, 평등 등)가 재판에 적용되려면 필연적으로 논증과 가치형량을 거쳐야 합니다. “가령 ‘기본권해석의 전성기’가 도래했다.”(p.17)는 표현처럼, 법관이나 헌법재판기관이 추상 가치와 구체 문제를 연결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5) 법다원주의(legal pluralism)

- “초국가적 기구와 다양한 이해관계에서 파생되는 복수의 법체계가 생겨나면서, 국가법만으로는 포괄하기 어려운 상황이 빈번해진다.”(p.16)고 지적합니다. 이때 법이 여러 층위에서 다원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IV. 새로운 법의 상식을 향한 움직임

- 문화적·시민적 요구와 함께 성장하는 법담론


저자는 “사고방식이나 패러다임의 변화를 예고하는 징후를 알고 싶다면 도서관보다는 현대미술관으로 가라.”(p.18)는 말로부터 착안하여, 법을 문화적 맥락에서 바라보는 움직임에 주목합니다. 실제로 영화나 드라마, 예능 등에서 재판과 법률제도에 관한 이야기가 풍부하게 다뤄지고, 시민들은 ‘상식의 이름’으로 법을 비판하거나 요구를 제시합니다.


이를 통해 법이 소수 전문가만의 폐쇄적 해석이 아니라, “바로 대중문화와 접합되면서 여러 시각을 반영하는 ‘논쟁의 대상’임이 부각”된다고 합니다. 동시에 이런 현상은 “법을 문화적·사회적 환경 속에서 ‘재맥락화’하고, 제도 이상의 문제로 바라보게 만든다.”(p.18)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나아가 “법을 전문지식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과 가치판단이 함께 논의되어야 합니다.”(p.19)라는 점도 강조됩니다. 이는 법해석에 있어 시민의 목소리, 예술적 시선, 일상생활의 관점 등이 더 깊이 개입하게 될 것임을 보여 줍니다.


V. 법실증주의의 확장(?)

- 기존 법실증주의에서 논증이론·법관법으로 넓어지는 궤적


이처럼 법의 지평이 넓어지면서, 전통적 법실증주의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애초 법실증주의는 “‘있느냐’의 문제와 ‘옳으냐’의 문제는 별개”라는 분리테제로 대표되었으나, 오늘날에는 가치판단이 들어가는 헌법·인권 논의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기도 합니다.


1) 헌법실증주의

- “추상적인 기본권 조항이 척도로서 작동하려면, 그 헌법규범에 논증이 실려야 한다.”(p.20)라는 말대로, 헌법적 가치 해석이 활발해지면서 헌법실증주의가 부각됩니다. 예컨대 ‘인간존엄’ 조항은 “선(先)실정적·초(超)실정적 인권 가치”를 헌법규범 안으로 불러들인 것이어서, 필연적으로 가치 형량 과정을 거치게 하지요.


2) 사법실증주의(법관법)

- “입법자가 제정한 실정법이 부족하거나 시행이 늦어질 때, 법관이 독자적으로 법을 형성해 가는 ‘법관법’이 강세를 띠는 시대가 되었다.”(p.21)는 분석도 눈길을 끕니다. 특히 복지·환경·노동·차별금지 등 목표 지향적 입법이 많아지면서, 구체 사안에서 법관이 적극적으로 해석·적용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사례가 늘어났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사법권의 확대는 전지구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p.21)며, 초국가적으로도 재판기관이 많아지고 판사와 법률가들이 국가 경계를 넘어 활동한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결국 법실증주의도 고전적 의미와 달리, “이제 ‘옳으냐’를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법체계가 보존되기조차 어렵다.”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결론을 암시합니다.


VI. 자연법론의 귀환(?)

- 인간다운 삶과 올바른 법에 대한 물음


그렇다면 전환기를 맞아 자연법론이 다시금 부상하는 것일까요? 저자는 “자연법은 실정법에 대한 비판적 사유양식이자, 법의 한계를 지적해 온 ‘실정법의 양심’으로도 불려 왔다.”(p.21)고 말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질서가 흔들리는 위기 상황에서 자연법이 힘을 발휘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지금의 전환기에 이 논의가 다시 떠오르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자연법의 핵심은 “존재하는 것 일체의 질서가 곧 당위와 연결되며, 특히 인간존재가 의미와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법을 객관화하려는 노력”(p.23)입니다. 예컨대 저자는 “자연법이란 ‘법실증주의가 보여 주지 못하는 초점’, 즉 ‘인간이 법과 어떻게 관계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탐구”(p.20)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다만 자연법론은 시대적 요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왔기에, 자칫 그 내용을 무제한적으로 확장하면 이데올로기로 흐를 수 있습니다. “과거에도 ‘보편타당한 이성법’을 주장하는 이념적 자연법론이 있었지만, 시대와 장소에 따라 법내용은 변하기 마련이라는 비판도 받았다.”(p.23)라는 지적이 대표적입니다. 그럼에도 “법철학의 역사로부터 얻는 교훈은, 법실증주의든 자연법론이든 홀로 설 수 없다는 것이다.”(p.25)라는 결론이 중요합니다.


VII. 이미 주어진 법, 과제로 주어진 법

- 실정법이 맡아야 할 역할, 그리고 미래적 과제


저자는 “법에 있어서는 현실적인 것과 이념적인 것이 함께 간다. … 법은 이미 ‘주어진 것’이면서 동시에 ‘과제로서 주어진 것’이다.”(p.25~27)라고 역설합니다. 법이 현실적인 사실·제도의 성격을 갖는 동시에, 그것을 정당화할 만한 가치·이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1) 법철학의 역사에서 얻는 교훈

- “자연법성과 법의 실정성은 서로 수렴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p.7)는 말처럼, 법철학사에서는 어느 진영도 다른 쪽을 완전히 압도하지 못했습니다. “이 역사에서 그 어느 진영도 완전한 승리를 굳히지는 못했다.”(p.25)는 사실 자체가 법의 본성에 내재된 딜레마를 보여 줍니다.


2) ‘과제로 주어진 법’

- 에리히 페흐너(Erich Fechner)의 견해를 인용하며 “법은 역사적·생물학적·정치권력적·경제적·가치적·종교적 요소가 얽혀 형성된다.”(p.29)고 설명한 뒤, 이는 곧 법이 인간의 창조적이고 해방적인 참여에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고 덧붙입니다. “결국 자연법은 실정법에 위탁된 과제이다. … 그 과제야말로 사회관계의 올바른 형성을 위한 끝없는 투쟁을 정신적 논쟁으로 남도록 하며, 억압이나 파괴로 끝나지 않도록 돌보는 일이다.”(p.34)라는 구절도 인상적입니다.


결국 “법의 동태학에서 법의 생태학으로 가는 전환시대의 법철학이 ‘제한법학’으로부터 벗어날 때 그 가능성이 열린다.”(p.34)는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새로운 과학기술과 세계화, 생명·환경 문제 등 미래적 쟁점이 커질수록, 법은 ‘인간다운 삶’을 재설계해야 할 과제를 떠안게 된다는 것입니다.


[독자의 평가와 일독을 권하는 이유]


이 논문은 현대 사회에서 법이 어떻게 작동하고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폭넓게 조망해 줍니다. “법은 이미 주어진 동시에 과제로 주어진 것”(p.25)이라는 말처럼, 단순히 ‘존재하는 법’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법이 왜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재구성해야 하는지 날카롭게 묻습니다. 법실증주의와 자연법론의 대립구도 속에서 서로가 어떻게 보완 관계를 이루는지, 그리고 오늘날 적용 가능한 ‘확장법학’과 ‘법생태학’적 관점은 독자들에게 큰 통찰을 줄 것입니다. 특히 시대의 전환기마다 부상해 온 자연법론의 역사와, 이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흥미로워, 입법·사법·행정뿐 아니라 시민적 상식의 관점에서도 읽어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본 글은 [박은정, "전환시대의 법철학 ―자연법론의 귀환(?)" <법철학연구> 제20권 제1호, pp.7-34 (2017), KCI 등재]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인문학적 개념의 이해와 해석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논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전문적인 학술 논의를 대체할 수 없으며,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다양한 문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학술적·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 신념과는 무관합니다. 원문 전부는 KCI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https://www.kci.go.kr/kciportal/po/search/poArtiTextSear.kc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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